다큐 상영에서 스토리를 입은 음악이 라이브로 관객에게 선사되다.
다큐멘터리란 장르에 매력을 느끼는 요인 중 하나는, 플랫한 스크린 위에서 실제 혹은 실제와 같은, 살아있는 이야기를 펼쳐내기 때문일 것이다.
기술적으로는, 좀 더 실제의 체험을 재현하기 위해 특수 안경을 배부하기도 하고, 의자에 진동을 달기도하며, ATMOS니 SOUNDX니 하는 음향 시스템을 도입하기도 한다.
현실의 이야기를 다루기에 조금은 LIVE한, 다큐멘터리 영화의 엔딩 크레디트가 올라간 후, 그 영화의 실제가 스크린 앞에서 재현된다면 어떨까?
고도의 영상 기술 없이도, 다큐멘터리를 생으로 재현해내는 것이 '음악 다큐'에서는 가능하다. 상영 후 LIVE 공연 이벤트로.
음악 다큐멘터리의 매력
음악 다큐멘터리는 스토리 이상의 매력이 있다. 영화에서 음악이 가지는 중요성이야 두말할 필요 없지만, 그 음악의 실제 스토리를 담아내면서 관객의 귀를 만족시킬 수 있는 음악 다큐는, 특별한 매력이 있다.
그런 음악 다큐 중에서도 '역대급' 리스트에 들어가는, <Sound City>(2013) 는 한 번 본 이후 여러 번 다시 보곤 했다. 아무 다큐나 추천해달라는 얘기를 들으면 한 번쯤 떠올리곤 한다.
개인적으로 여행 예능 중에 손에 꼽는 '꽃보다 청춘 페루 편'을 보다가 이적, 유희열, 윤상의 대화 중에 자막도 없이 지나간 대화 중에 제목을 듣고 알게 됐을 땐, 예능에서 웬 보석을 건진 느낌이었다.
사실 <Sound City>의 러닝 타임 중 많은 부분은 인터뷰 씬이다. 밴드 너바나나 다큐의 주 캐릭터인 데이브 그롤에 대해 특별한 추억이 있지 않은 분에겐 지루할 수도 있지만, 다큐 중반 이후부터 두어 번 펼쳐지는 실제 연주 씬은 아날로그 음악 씬의 힘을 느낄 수 있다고 할까, 꼭 한번 보라고 권유하곤 한다.
http://www.imdb.com/title/tt2306745/
모든 음악 다큐가 <Sound City>는 아니겠지만, 기본적인 기대치가 있는 장르이기에, IDFA 2016 상영작 중에서도 음악 다큐라면 일단 즐겨찾기해 놓았었다.
그와중에 이벤트 리스트를 보다 발견한 건, '음악 다큐 상영 후 라이브 공연'이라니!
'어머 이건 꼭 봐야 해'라고 외치며 매진되기전에 거칠게 예매했다.
스케줄에 맞춰 고른 두 다큐는 <Unknow Brood>와 <Chasing Trane> 두 편이었다.
<Unknow Brood>는 네덜란드에서 예전에 꽤 유명했던 추억의 록스타인 Herman Brood의 후일담을 다룬 다큐였고, <Chasing Trane>은 미국 재즈 역사의 전설적인 색소폰 뮤지션인 John Coltrane의 음악과 일대기에 대한 다큐였다.
다소 다른 색깔의 두 뮤지션을 들여다볼 수 있는 기회에, 라이브 음악까지 즐길 수 있는 이벤트라니.
EIDF 다큐멘터리 영화제에서의 Q&A나 마스터클래스 같은 토크 위주의 이벤트 정도에나 익숙했던 나로서는 매우 반가울 따름이었다.
Unknow Brood
사실 Herman Brood는 처음 들어보는 이름이었다. 일찍 로큰롤로 큰 성공을 거둔 뮤지션이었는데, 이후의 행보는 특이하다. 마약과 여러 스캔들에 단골로 등장하기도 했고, 노후엔 그림을 그리기도 하며 네덜란드 사람들에게 '괴짜'로 기억되는, 그를 얘기하면 웃음부터 터지는 그런 독특한 캐릭터였다.
<Unknown Brood>를 관람하며 그의 생전의 모습이 나올 때마다 관객석에서 웃음이 곳곳에서 터져 나왔다. 그를 모르는 나는 영화도 영화지만 그 네덜란드 사람들의 반응을 보는 게 더 재밌었다. 우리나라로 치면 7080 추억의 스타 중에 굉장히 독특한 캐릭터의 생전 알려지지 않은 모습을 다시 보는 느낌일까. 국내의 누구로 유추하기엔 장르도, 스캔들의 강도(?)도 달라서 쉽지 않지만 노후엔 머리에 앵무새를 얹고 여러 토크쇼에 출연하는 그는 하여튼 재밌는 인물이었다.
다큐 상영이 끝나자 네덜란드 개그맨 혹은 MC로 유추되는 사람이 짧은 토크를 진행했다.
다큐 영화 내에서 Herman Broodd의 옛 여자 친구, 전 와이프, 자녀들까지 모두 등장해 인터뷰하는데, 상영 후 이 모든 이들이 무대로 나와 관객들에게 인사하는 건 다소 생소한 광경이었다. 우리나라 같으면 다소 불편한 상황일 텐데.. 물론 그들도 적잖이 어색해 보이긴 했다.
잠시 토크를 하는 뒤쪽으로 신속하게 밴드 공연이 준비되고 라이브 공연이 시작됐다. Herman Brood의 생전 히트곡들이 대중적인 록음악이라, 편하게 즐길 수 있는 공연이었다.
관객석의 네덜란드 사람들은 공연도 공연이지만 '추억 돋는' 시간을 즐기는 듯 반응이 좋았다. 난 마치 한국의 90년대 음악이 나오는 감성주점에 온 외국인처럼 무대와 관객석을 번갈아보면서 내 나름대로 공연을 즐겼다.
공연은 3곡 정도로 간단했다. 하지만 음악 다큐와 연계하는 라이브 공연은 정말 매력적인 포맷이었다. 이후 EIDF 같은 다큐멘터리 영화제에서도 기대해보고 싶지만, 이런 기획이 가능한 극장 인프라가 어떨지 모르겠다.
<Unknown Brood>는 암스테르담의 공연한 'Carre'에서 상영됐는데, 2층석도 모자라 3층석까지 오페라 극장을 연상케 하는 규모와 함께 영화 상영은 물론, 여러 형태의 공연을 모두 커버할 수 있는 훌륭한 극장이었다. 이런 극장을 흔하게 찾을 수 있는 암스테르담의 공연 인프라는 참 언제나 부러웠다.
Chasing Trane
John William Coltrane 미국 재즈 씬의 한 페이지를 장식하는 색소폰 뮤지션이다. 재즈 좀 안다고 하는 이에겐 몇 손가락 안에 꼽아야 하는 전설적인 연주자이자 작곡가인데, 그의 대한 다큐 영화라니, 기대하지 않을 수 없었다.
'Melkeg'란 극장에서 상영되었는데, 옛 건물과 현대적인 시설이 같이 있는 또 하나의 부러운 극장이었다. 암스테르담 한 도시에 이런 좋은 극장만 몇 군데가 있는 건지...
<Chasing Trane>의 영화 구성은 수준이 높았다. 단지 John Coltrane이란 캐릭터의 스토리에만 의지하는 영화가 아니었다. 아름다운 아트 애니메이션과, 관계된 주변 인물들을 활용한 적극적인 구성이 지루해지기 쉬운 이야기를 더 다채롭게 그려냈다.
중간중간 그림을 그리는 과정처럼 만들어낸 애니메이션은 매우 아름다우면서, 영화의 구성에 유연하게 연결해주는 역할을 했다. 영화가 지루해지는 듯하면 맛깔나게 등장하는 조연들은 영화의 예술성을 늘어지지 않게 하는 조미료 역할이었다.
그리고 John Coltrane의 음악이 매우 아름다웠다.
그의 음악을 스피커로도, 헤드폰으로도 들을 수 있겠지만, 그의 일대기를 그린 영상과 함께 극장에서 보는 건 확실히 나은 선택일 것이다.
만약 John Coltrane의 팬이었다면 이 다큐는 놓치면 후회할 영화이다.
다큐를 재밌게 봐서 그런지, 상영 후 라이브 공연에 대한 기대감이 올라갔다.
'재즈알못'이긴 하지만 음악에 대한 부족한 소양에 비해선 즐길 줄 안다고 자평한다.
라이브 공연은, 자체로도 멋졌지만, 마지막에 John Coltrane을 음악을 기리는 듯한 태도로. 화면의 악보와 함께 엄숙하게 연주된 멜로디가 인상깊었다. <Chasing Trane>이란 다큐의 의미와 부합하는 느낌이었다.
IDFA의 라이브 이벤트 기획의 의미를 십분 살려낸 <Chasing Trane>을 놓치지 않고 본 건 행운이었다.
다큐멘터리 + LIVE, 국내에서도 가능할까?
두 번의 다큐멘터리 상영과 라이브 공연을 함께하는 이벤트를 본 후, 국내에서도 이런 기획이 대중화됐으면 하는 바람이 생겼다. 하지만 그게 가능할까.
영화 상영과 밴드 공연을 같이할 수 있는 시설이 일단 필요하고, 그런 기획에 대한 수요가 확인되는 게 두 번째 문제일 것이다. 다년간 EIDF 다큐멘터리 영화제를 보며 야외상영과 같은 좋은 기획의 이벤트의 경우 많은 이들이 만족했던 것을 보았기에, 늦지 않은 시일에 가능하지 않을까 기대해본다.
모든 사진 by 논픽션라이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