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DFA 2016에서 만난, <A Greek Winter> 다큐 리뷰
IDFA 영화제의 8일 동안 24편의 다큐멘터리 영화를 보면서 모두 계획해서 보진 못했다.
관람하려 했으나 일찍 매진돼 놓친 영화들도 있었고, 마땅히 무슨 영화를 봐야 될지 몰라 당일이 돼서야 스케줄에 맞는 영화를 찾기도 했다.
<A Greek Winter>는 당일이 돼서야 남는 시간에 맞춰 고른 다큐였다.
어쩌면 그냥 시간이 남아서 보게 된 이 다큐는 그 날 수지맞은 듯한, 생각보다 재밌는 영화였다.
기대치 않았던...
크게 주목하지 않았던 이유는 있었다. 경제위기 이후 그리스인들의 삶이란 시놉시스에 크게 특별함을 느끼지 못했다. IDFA 2016 상영작들을 보면 중동 지역의 전쟁과 같은 엄청난 이슈를 다루거나, 혹은 '냄새를 통한 데이팅 실험', '카자흐스탄 최초의 여성 매 헌터로 트레이닝되는 소녀', '반 고흐의 카피 작품만 20여 년 그리던 중국의 화가가 오리지널 고흐의 작품을 보기 위해 유럽으로 향한다' 등의 듣기만 해도 기발한 아이디어의 다큐들이 심심치 않게 보였기 때문이다.
시간은 남고 일찍 숙소로 들어가긴 아쉽고 해서 선택한 영화였기에, 상영관 한켠에 가볍게 털썩 앉을 수 있었다.
소소하지만 온도가 느껴지는 이야기
영화는 가벼운 음악과 함께 생활 다큐처럼 시작됐다. 얼어붙은 그리스 경제 상황에서 난방 기간 동안 기름 값에도 허덕이는 서민들에게 기름을 공급하는 걸 업으로 하는 Pafralides와 그의 여동생 Evdokia가 주인공이었다.
Pafralides와 Evdokia는 기존의 일로는 먹고살기 힘들어 기름 유통업을 시작했다. 하지만 그들이 상대하는 고객은 줄어든 연금으로 근근이 사는 노인, 일자리를 구하지 못해 제 때 기름 값을 지불하기 힘든 서민들이다. 그들에게 수금하지 못하면 사업이 망하고, 냉정하게 돈을 거두면 그들의 울음을 들으면서 나와야 하는 따가운 감정 노동의 현장인 것이다.
이들의 소소한 이야기를 잉그보그 얀센 감독은 찰기 있게 풀어냈다. 처지지 않으면서도 담담하지만 또한 먹먹하게 이야기를 담아내는 촬영과 편집은 이야기에 생기를 불어넣었다.
항상 거대한 이슈나 기발한 주제를 다룰 수 있는 것도, 다뤄야 하는 것도 아니다. 가까이 있고 흔하게 보일 수 있지만, 충분한 공감의 맛을 지니고 있는 소재들을 지루하지 않게 풀어나가는 방법은 오히려 더 가치 있을 수 있다. 기름차를 따라가며 주인공이 만나는 평범한 이웃들을 보여주는 카메라 워킹은 부담스럽지 않으면서도 흥미로운 시선을 유지했다.
감독의 유려한 진행을 따라가다 보면, 경제 위기 속의 그리스 서민들의 이야기가 전달되어 왔다. 줄어든 연금에도 할 수 있는 일은 없어 집에서 추위에 떠는 노인들, 외국으로 일하러 떠난 젊은이들의 공백으로 썰렁해진 동네, 망하지 않으려면 이웃들에게 냉정히 수금해야 하는 주인공. 그리스의 진짜 모습은 산토리니의 포카리스웨트 빛 풍경에 있는기 아니라, 이 다큐 속에 있었다.
평범한 씬의 힘
유명 다큐멘터리 영화들을 보다 보면 아무래도 거대하거나, 극단적인 이 세계의 모습을 다루곤 한다. 가령 여러 경제 다큐에선 거시 경제를 논하다 보면 큰 숫자가 등장한다. 월스트리트에서 해먹은 돈이나 양극화의 수치를 보여주자니 억, 조 단위가 심심찮다. 이 <A Greek Winter>란 다큐에서 등장하는 숫자들은 9유로, 10유로가 고작이다. 하지만 그 숫자가 주는 싸늘함은 후자가 결코 못지않다. 평범한 씬이 가지는 힘은 그 크기와는 독립적으로 무거울 수 있기 때문이다. 단 화려하지 않은 이야기의 본론으로 가는 길이 지루하지 않으려면, 연출자의 더 정교한 앵글이 필요하다. 평범한 것을 평범하지 않게 찍는 촬영과 편집이 더해진다면 일상의 씬이 훌륭한 옷을 입는다. 그 1례를 다큐 <A Greek Winter>에서 보았다.
사진출처 : IDFA 웹사이트 www.idfa.nl
<A Greek Winter> 트레일러
https://youtu.be/P-X2N3cRq5I?list=PLYOXZzC5LI_zqIVO4cN-KKcATfrZyZce7