언제나 그렇듯 실험 설계가 중요하다
EIDF 2014에 소개된 '공대생의 연애 공식'이란 다큐멘터리 영화의 원제는 'Love and Engineering'이다.
이를 '공대생의 연애 공식'이라고 번역하신 분이 누구신지는 모르지만 아주 적절한 번역이었다고 생각한다. EIDF 2014 당시 다큐멘터리 모임을 진행 중이었는데 많은 모임원들이 제목만 듣고도 큰 관심을 보였었던 기억이 난다.
어릴 적 PC게임을 하다가도 난이도가 높아서 진행이 안되다 보면, 능력치를 올리기 위한 에디터부터 찾았던 경험은 다들 있을 것이다.
이후의 게임엔 아예 'Show me the money'같은 게임 내 합법적인 치트키를 만들어 놓기도 하고
혹여 능력치 조작까진 아니더라도 공략 모음집 같은 건 미리 한 번씩 보고 하는 게 예의라고 여겨지기도 한다.
이성을 만나는 데에도 그런 공략과 같은 공식은 없을까. 다들 한 번쯤은 생각해봤을 수 있을 질문이다.
이 다큐는 과학적인 연구방법론으로 연애란 주제를 파고들었다.
여러 실험 설계로 이성 간의 호감도와 데이팅 프로세스를 탐구하는데, 미드 '빅뱅이론'에서 보던 익숙한 상황을 다큐 버전으로 볼 수 있다.
공대 출신들도 짝을 찾게 하려는 거죠
이 다큐의 주인공들인 핀란드 공대도 남초현상인 건 마찬가지인 듯하다.
실험 진행을 하는 주인공은 무려 '결혼'까지 성공한 엔지니어로 공대생의 삶에 충실하느라 연애에 대해선 미숙하게 놔둔 이들을 '과학적으로' 돕는다.
알고리즘을 통한 연애 과정 분석, 여러 인자들과 이성간 호감도의 상관관계, 뇌파 측정실험까지 다양한 종류의 실험방법을 동원해 데이터를 뽑고 분석한다. 초반엔 아바타 소개팅과 비슷한 장면도 나온다.(별의별 걸 다 한다.)
그 와중에 보여지는 핀란드 공대생들의 어설픈 화법은 공감을 불러일으키기 위해 충분하다.
여성이 부활절에 뭐했냐고 물을 때, '랜'파티를 했다고 대답하는 장면은 빅뱅이론의 쉘든이 출연한 줄.
여성과 기술에 대한 얘기를 하는 건 피해야겠죠
사실 문제의 본질은 연애에 미숙한 공대생의 스킬에 있다기보단 서로의 공감대에 있는 듯 보인다.
수월한 연애를 위한 솔루션으로 제시되는 미러링 기법이나 특이한 복장등도 약간의 도움이 될 수는 있겠지만,
본질적으로 연애란 활동이 주체와 객체로 나눠진 일방적인 관계가 아니라 주체와 주체 사이의 상호적인 활동임을 생각해본다면
연애 혹은 데이팅을 독립된 객체로 보고 그 상황에 조건 없이 통하는 필살 명령어를 찾는 것이 목적인 실험 설계는 오류가 있다.
실제로 탐구되어야 할 건 연애 당사자 자신과 상대방에 대한 이해일 것이다.
과학적인 연구방법론으로 연애의 아나토미가 밝혀지는 게 불가능이라고 생각하지는 않지만,
그 연구대상은 연애라는 행위가 아니라 연애를 하는 주체들로 설정하는게 더 나은 설계가 아닐까 싶다.
이 다큐멘터리는 무척이나 팬시한 주제에 비해서는 끝이 좀 약한 느낌은 있지만, 많은 평범한 공대생, 엔지니어, 개발자 등이 한 번쯤은 생각해봤을 법 한 내용을 구체화된 영상으로 옮겼다는 점에서 가벼운 마음으로 한번쯤 볼만한 작품이라고 생각한다.
랩 생활을 조금이라도 해보신 분은 익숙한 풍경의 랩에서 무척이나 진지하게 이루어지는 실험과정에 공감할 수도 있을 것이다.
이 다큐멘터리는 EBS에서 운영 중인 다큐멘터리 시청 플랫폼인 DBOX에서도 시청할 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