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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다영 nonie Sep 16. 2019

모든 시작은 기회의 수집에서 온다

청소년 관광지원 사업의 심사를 마치며

행운보다는, '기회'수집가

전 세계 수 천명이 도전한 1만 달러짜리 여행 콘테스트에서 우승자가 된다거나, 할리우드에서 열리는 시사회 레드카펫에 초청된다거나(!), 패션쇼를 보러 하와이에 간다거나, 호화 기차를 타러 인도에 간다거나, 호텔여행을 하러 핀란드에 간다는 등의 이야기는 마치 남의 무용담을 보는 것처럼 비현실적인 사건의 연속이다. 이런 나의 에피소드는 주변인들에겐 종종 '운도 억세게 좋네' 정도로 비치곤 한다.


하지만 이렇게 떠난 수많은 여행은 이보다 10배는 많았던 무수한 실패 끝에 건져올린 작은 기회의 합이다. 이 믿을 수 없는 여행이 모여 몇 권의 책이 되고, 그 책이 모여 사무직 노동자에서 탈출한 일련의 과정은 되려 운으로 설명하기엔 불가능에 가깝다. 이 모든 이야기는 운을 기다리기보다는 기회를 수집하는 일을 습관으로 만들면서 시작되었다. 그 출발점에는 기회를 찾아 다니던, 20대 초반의 내가 있었다.



각종 미디어의 해외탐방 기회에 도전해 선발된 여행들. 모두 견문단 이후 이루어진 일들이다.


나의 해외여행은 2000년대 초반, 교내에서 선발한 해외견문단 프로그램에 참여하면서 시작됐다. 학번이나 전공을 불문하고 무려 500명이라는 인원을 유럽에 파견하는 큰 지원사업이었다. 5명이 1조가 되어 여행 계획은 자유롭게 짜고 항공 비용은 학교에서 지원하되, 학교의 운영 주체인 서울시에 제안할 유럽의 관광 모니터링 보고서를 제출했던 프로그램이다. 1달간의 배낭여행에서 받은 커다란 문화 충격을 통해, 여행은 그 어떤 교육이나 공부보다도 내가 원하는 방향으로 살아가는데 큰 탐색의 역할을 한다는 걸 깨달았다. 어린 시절 우연히 주어진 첫 기회에 뛰어들지 않았더라면, 진짜 원하는 진로를 찾는 데 훨씬 많은 시간이 걸렸을지도 모르겠다.




8월에 있었던 청소년 관광지원 사업의 사전 캠프 현장.


청소년 관광지원 사업 심사를 마치며

지난 달, 경상북도의 산속 깊숙이 자리한 관광호텔로 향했다. 서울에서 대구로, 다시 시외버스로 강의장까지 도착하는데 무려 4시간이 걸렸다. 총 왕복 8시간 +교육 4시간의 진 빠지는 일정이라, 솔직히 처음 교육 제의를 받았을 땐 맡고 싶지 않았다. 하지만 기나긴 여정의 엄청난 피로가, 뜻밖에도 그곳에 모여있는 이들을 만나는 순간 싸그리 달아났다. 그곳에는 어쩌면 인생의 첫 기회를 수집하려는, 50명의 '19살의 나'가 앉아 있었다. 두 눈을 반짝반짝하면서 말이다.  


한 지자체에서 실시한 청소년 관광지원 사업은, 내가 경험한 해외견문단과 너무나도 흡사했다. 해당 지역의 고교생 5인이 한 조가 되어 자유롭게 해외여행 계획을 짜고, 프레젠테이션을 통해 최종 우승한 조가 자신들이 짠 계획으로 실제 여행을 하게 된다.(지도자 1인 동반) 다녀온 후에는 해당 지역에 기여할 수 있는 관광 아이디어를 제출하게 된다. 아이들에게도 좋은 기회고, 지자체에서는 청소년 교육 복지와 관광 진흥의 명분을 만족시킬 수 있는 사업이었다. 단지 예산 문제로 딱 1조에게만 혜택이 돌아간다는 게 아쉬웠다. 게다가 현장에 가보니 사업 시행이 거의 처음이라 심사의 기준이 아직 없었다. 그래서 내가 만든 심사 기준은 다음과 같다.


1. 여행 계획의 타당성  - 일정 흐름 및 예산 분배

2. 여행 테마의 전문성 및 차별성 - 개인별 강점과 연계되도록 테마를 구체화할 것

3. 여행 미션(여행에서 수행할 활동 내역)의 구체성 및 독창성

4. 지자체 관광산업 기여 가능성 - 여행 테마와 관광산업이 연계되어 있는가?


이 중에서 더 가중치를 둔 항목은 2번이었다. 1, 3, 4번은 기술이라 내가 가르치면 되지만 2번은 원래부터 가진 개인의 '오리지널리티'로, 내가 아이들에게 새롭게 요구한 심사 항목이다. 아이들이 기존에 짜놓은 명소 위주의 일정 말고, '커서 무언가를 해보고 싶다'는 내면의 열망과 이 여행의 주제 사이에 접점이 있기를 바랐다. 예를 들면 여행사에 취직하고 싶은 아이는 '관광 서비스 사례'를 찾는 여행, 축구를 좋아하는 아이는 응원하는 팀의 구장에 가보는 투어, 사회복지사가 되고 싶다는 아이는 공공시설에 방문해보는 계획이 '접점'이다. 자꾸만 '저는 꿈이 없는데요'라며 볼멘소리를 해오는 아이들에겐, '그런 꿈 말고, 했을 때 재미를 느끼는 거'라고 분명히 말해 주었다. 가뜩이나 입시 준비도 짜증날텐데, 장래희망까지 강요당하는 일은 얼마나 많을 것인가.  


잘 와닿지도 않는 '지역에 기여하라'는 목적보다 자신의 희망과 연계된 여행 계획을 스스로 짜는 과정은 참여한 모든 아이들에게 엄청난 공부가 된다. 그리고 해당 지자체에도 더 생산적이고 구체적인 관광 기여 콘텐츠가 나올 수 있다고 봤다. 여기서 한 팀은 우승할테지만, 나머지 45명은 여행을 못간다. 나는 이 아이들을 위해 지도를 해야겠다고 생각했다. '지금 짜는 여행이 콘테스트 경쟁만을 위한 게 아니라, 1~2년 후 대학에 갔을 때 실제로 갈 여행을 미리 만드는 거다'라고 독려했다. 입시를 준비하는 귀한 시간을 쪼개어 캠프에 온 이들의 결심이, 커다란 '기회'에 한 발짝 다가서는 것임을 나중에라도 깨달을 수 있기를 바랐다. 4시간의 긴 교육이 끝날 즈음, 아이들은 되려 처음보다 훨씬 잘하려는 의욕으로 가득 차 있었다. 맡기를 정말 잘했다고 느낀 교육, 오랜만이다.



다같이 수집합시다, 기회

몇 년 전 호텔여행을 시작해야겠다고 마음먹었을 때, 불가능에 가까운 꿈이라는 걸 알면서도 가장 먼저 했던 행동은 옛날 인연이 있던 분들에게 뜬금없는 메일을 보낸 것이다. 여행기자 시절뿐 아니라 블로거로서 수년간 취재하며 맺은 업계 네트워크를 총동원해 메일을 보냈지만, 원하는 섭외나 컨택은 이루어지지 않았다. 거절당하는 것에 크게 개의치 않고, Give & Take을 확실하게 할 수 있는 회사로 컨택 범위를 점점 좁혀 나갔다.


그러던 중 기회는 의외의 순간에 찾아왔다. 내 제안을 받은 한 담당자가 해외 본사로 이를 전달했고, 현지에 있는 한국인(!) 직원이 허투루 넘기지 않고 회신을 보내온 것이다. 어렵게 잡은 단 한 번의 기회를 놓칠 수 없었다. 나는 '줄 수 있는' 항목에 온 신경을 기울여 답을 보냈고, 결국 협업은 성사됐다. 심지어 그 직원이 퇴사하고 다른 분에게 인수인계가 된 뒤에도 몇 년간 긴밀하게 컨택하며 많은 협업을 할 수 있었다. 책 <나는 호텔을 여행한다>는 그 지점에서 탄생했다.


어디선가 그런 이야기를 읽었다. 세상의 거의 모든 고민은 '실행을 하지 않는 것'에서 생겨난다고 말이다. 회사 생활이 너무 힘들었던 이유는 내가 가진 재능과 업이 너무 멀리 분리되어 돈 버는 일 따로, 좋아하는 일은 따로 해야 하는 현실 때문이었다. 하지만 이 문제로 끙끙 앓던 시절엔 그저 고민이 지속될 뿐 답이 저절로 어딘가에서 생겨나지는 않았다. 답답했던 시절에 유일하게 내가 했던 일은 '나에겐 지금 도움이 필요하고, 나도 이런 걸 해줄 수 있다'라고 계속해서 나를 알리고 손을 뻗는 일이었다. 지금 혹시 같은 답답함을 마음속에 품고 있다면 지금부터라도, 기회 수집가가 되어보는 건 어떨까.




https://youtu.be/VqPVj7Zb8eA



Who is nonie?

국내) 천상 글쓰기보다 말하기가 좋은, 트래블+엔터테이너를 지향하는 여행강사. 기업 및 공공기관, 여행업계 임직원을 대상으로 스마트한 여행기술 교육 및 최고의 여행지를 선별해 소개합니다. 강사 소개 홈페이지 

해외) 호텔 컬럼니스트, 여행 인플루언서. 매년 60일 이상 전 세계 호텔을 여행하고, 전 세계 여행산업 행사를 취재합니다. 2018년 '나는 호텔을 여행한다' 출간. 인스타그램 @nonie21 페이스북 'nonie의 스마트여행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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