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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다영 nonie Aug 28. 2019

기업이 여행 서비스에 갖는 흔한 환상

콘텐츠만 모으면 사람은 저절로 모이겠지.

그동안 내가 관찰해온 글로벌 여행업계는 항공과 호텔업을 중심으로 한 여행소비의 변화에 방점이 있지만, 국내 여행 소비의 경우 유통이나 금융 등 다양한 업종과도 이해관계를 맺고 있다. 그런데 국내 소비시장은 바야흐로 커머스의 격변기가 도래했다. 오프라인 고객은 눈에 띄게 줄어들고 온라인에 상품만 늘어놔도 팔리던 시절이 지나니 이제 콘텐츠로 먼저 팬을 모아야 커머스가 된단다. 그럼 일단 이쁜 콘텐츠를 끌어 모아서 쫙 깔아놓으면 기존 고객들이 자연스럽게 찾아와서 '좋아요'도 찍어주고 리뷰랑 일정도 팍팍 올려주지 않을까? 인스타에 기꺼이 콘텐츠를 올려주듯이, 혹은 트리플이나 트립 어드바이저에 기꺼이 후기를 공유하듯이?? 초기에 콘텐츠 만드는 애들 몇 명 깔아놓으면 볼만한 정보는 꽤나 쌓일 거고, 사람들은 그 정보로 여행을 준비하면서 예약도 하고 우리 상품도 사가겠지?(...) 정말이지 너무나도 손쉽게 대박이 나겠다.


여행 스타트업 창업자들 대상으로 관련 강의를 하기 훨씬 전부터, 많은 여행 분야 창업 준비자들과 이야기도 나누어보고 서비스 컨설팅도 해봤다. 이 과정에서 대다수의 창업자들이 여행 콘텐츠 기반 서비스에 접근하는 일차적인 아이디어가 ‘사람들에게 콘텐츠를 받아서 어떻게 해보겠다’는 것이다. 이를테면 ‘(우리 서비스에) 여행 일정 짜고 공개해봐’, 아니면 ‘여행기 기록해봐’ 같은 부류 말이다. 이런 서비스가 2010년대 초중반에, 기억도 못할 만큼 많이 나왔었더랬다. 론칭까지는 못했어도 유사 서비스를 준비하는 곳은 더 많았다. 이들의 공통점은 한결같았다. '당연히 양질의 생산자들이 우리 서비스에 몰려와서 콘텐츠를 알아서 채워줄 거야.'라는, (주로 개발자들의) 근거 없는 확신이었다. 내가 아는 한 이 난제를 해결한 서비스는 적어도, 국내에는 없었다.


그런데 한 물도 아니고 세 물 쯤 지나간 서비스 모델에 여행 콘텐츠 좀 내놓으라며 동시다발적, 지속적으로 보내오는 여러 제안을 보다 보니 이제는 한숨이 나온다. 여행자가 어디까지 진화했는지 감조차 못 잡는 타 업종들이 여행 서비스에 뛰어들면 얼마나 나태한 접근이 가능해지는지, 이쪽 일을 한다는 이유로 굳이 알고 싶지도 않은 미래를 미리 지켜봐야만 한다니. 자, 2019년 이 시점에 콘텐츠 기반의 서비스가 이런 식으로 접근하면 왜 망할 수밖에 없는지(...) 지겹지만 다시 알아보기로 하자.



첫째, 20~39세 밀레니얼 세대에게 여행 콘텐츠는 '전혀' 희소가치를 지닌 정보가 아니다. 이전처럼 사람들의 눈을 휘어잡는 대단하고 차별화된 카테고리가 아니란 말이다. 당신은 곧 해외여행을 떠날 예정이다. 그렇다고 해서 특정 서비스 한 곳에서만 정보를 얻어야 하나? 왜? 정보의 속성은 more is better다. 가이드북 수준의 기초 정보는 트리플이나 포털 검색에서 몇 분 만에 얻어낼 수 있고, 유튜브나 인스타 태그 검색을 통해 좀 더 세부적인 취향으로 나와 주파수를 맞춘 여행자, 혹은 여행정보도 쉽게 찾아낼 수 있다. 구글 지도에 가고 싶은 곳들을 모아서 분류/저장해 두면, 나만의 위시리스트와 위치정보는 순식간에 결합되어 타지에서 여행자를 안내한다.

 

사실 여행정보 자체도 철 지난 개념이다. 사람들이 여행에서 요구하는 편의성이 ‘정보(콘텐츠)’이던 시절은 지나갔다는 거다. 마이리얼트립이나 에어비앤비에서 도시 이름만 검색해도 여행에서 시간이 남을 때 '누구'를 만나 '무엇'을 해야 할지를, 다양한 투어 상품이 촘촘히 제시해주는 세상이다. 특정한 곳에 모여있는 한정된 여행정보로 우리의 여행을 풀케어해주는 ‘배타적이고 유일한’ 서비스는 2019년의 여행자에게는 필요하지 않다. 차라리 60~70대 시니어 세대를 위한 실버 서비스라면 말이 되겠지만.


둘째, 많은 기업은 콘텐츠를 활발히 생산하는 최상위 주체, 블로거나 크리에이터의 마음을 움직이는 법을 전혀 모른다. 지금은 망하고 없어진 N포털 모바일 플랫폼과의 미팅 일화가 문득 생각난다. 그들은 자기네 서비스에 우선적으로 콘텐츠를 ‘많이’ ‘공짜로’ 올려주고 메인 채널로 활용할 것을 요구했다. 그때 내세운 대단하신 보상이 뭔 줄 아는가? ‘열심히 해주시면, 저희가 홍보 많이 해드릴게요. 저희 메인 광고, 몇천만 원짜리인 건 아시죠? 잘만 하시면 그거 무료로 해드린다는 거예요. 물론 더 열심히 하시면 여행비도 지원해 드리고요’.... 이 서비스 왜 망했는지 알아보.... 그만 알아보기로 하자.


이들에게 동기를 부여하는 트리거는 단순히 돈이나 보상이 아니다. 12년 차 여행 블로거이자 전 세계의 많은 인플루언서 트립에 한국 타이틀을 달고 참여해온 사람으로 감히 충고하자면, 콘텐츠 크리에이터는 외주 전문이 아닌 이상 자신의 둥지(플랫폼, 미디어)를 알리기 위해 일하지, 둥지를 바꾸거나 양립하지 않는다. 기업이 만든 정체불명의 신규 서비스에 자기 콘텐츠를 퍼주지도 않고, 해당 서비스로 옮겨가거나 독점적인 콘텐츠를 내주지도 않는다. 특히 이름을 걸고 미디어를 운영하는, 나처럼 업이 걸린 이들이라면 자기 둥지를 잘 지키는 일이 얼마나 힘들고도 중요한지 잘 안다.


1. 에어비앤비가 한국에 들어왔던 초기에, 많은 인플루언서들이 왜 그들의 팬이 되어 적극적으로 도왔을까?(물론 초창기 시절 얘기)

2. 한 때 이름 날리던 여행 블로거 몇몇이 왜 트립 어드바이저의 탑 리뷰어에 이름을 올리며 수백~수천 개의 리뷰 콘텐츠를 양산하고 있을까?

3. 왜 20대 젊은이들이 페이스북 네임드 커뮤니티에 자기 돈 주고 간 여행의 비싼 인생샷을 노출해달라며 앞다투어 제보하는 걸까?

4. 여행 콘텐츠는 크리에이터 타이틀을 단 이들만 생산하는 특별한 전유물인가? 좀 더 본질적으로, 지금 시점에서 여행 콘텐츠의 정의는 무엇인가? 콘텐츠가 전달하려는 정보의 주체는 과연 여행지일까?

5. 나처럼 티스토리에 10년 이상 블로그를 하던 사람은 왜 브런치에 콘텐츠를 올리는 걸까? 이전에 블로그라는 매체는 쳐다보지도 않던, 직업으로 글을 쓰던 전문가들도 브런치에는 상당수가 글을 쓰는 걸로 알고 있다. 이유가 뭘까?


이런 질문 이면에 숨어있는 진짜 답을 치열하게 찾아내지 못한다면 ‘양질의 콘텐츠로 커머스를 노려보자’는 원대한 목표는 안타깝지만 빠른 시일 내에 정리되리라고 본다. 이미 너무나도 많이 봐왔다. 그렇게 사그라져간 서비스들을.



p.s 위 질문에 대한 내 나름의 답은, 지금 열심히 쓰는 중인 다음 책에 차근차근 소개하기로.




Who is nonie?

국내) 천상 글쓰기보다 말하기가 좋은, 트래블+엔터테이너를 지향하는 여행강사. 기업 및 공공기관, 여행업계 임직원을 대상으로 스마트한 여행기술 교육 및 최고의 여행지를 선별해 소개합니다. 강사 소개 홈페이지 

해외) 호텔 컬럼니스트, 여행 인플루언서. 매년 60일 이상 전 세계 호텔을 여행하고, 전 세계 여행산업 행사를 취재합니다. 2018년 '나는 호텔을 여행한다' 출간. 인스타그램 @nonie21 페이스북 'nonie의 스마트여행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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