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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다영 nonie Jan 04. 2021

2021년 호텔의 생존전략, 경험을 주도하라

독서모임에서 '호텔 패키지'가 탄생한 이유

2018년 <나는 호텔을 여행한다> 출간 전후로 전 세계 200여 호텔을 취재하는 와중에, 호텔이 여행에서 수행하는 역할에 미묘한 변화가 느껴졌다. 여행자의 경험을 주도하는 역할이 호텔에서 에어비앤비와 같은 플랫폼으로 빠르게 이동하고 있었다. 특히 코로나 19 이후에는 많은 호텔이 비용 절감과 효율성을 위해 소프트웨어(인적 서비스) 대비 하드웨어(로봇, 키오스크)를 강화하고, 단체 고객과 연회 시설로서의 기능만 남을 수도 있어 보인다.

관광 종사자를 교육하고 소비자에게는 여행과 호텔 문화를 강의하는 입장에서, 호텔이 이대로 흘러가는 게 늘 안타까웠다. 소비자의 수준은 갈수록 높아지는데, 호텔의 경험 콘텐츠는 부족하다는 생각을 많이 해왔다.



니콜로 호텔의 강연 콘텐츠, 니콜로 렉쳐. 출처 : Niccolo Changsha


호텔은 새로운 경험을 제안할 수 있을까?

에어비앤비는 여행의 문화와 아젠다를 주도하며 사람과 사람을 연결하기 위해, 밋업과 커뮤니티를 조직적으로 관리한다. 이것은 에어비앤비가 경쟁자 없는 글로벌 브랜드로 성장하는데 큰 기반이 되었다. 그래서 2019 상하이 ILTM에서 중국의 니콜로 호텔이 만든 '호텔판 TED', 니콜로 렉쳐를 봤을 때 저거다! 싶었다. (당시 기고한 기사 링크) 우리의 전통적 산업 컨퍼런스는 대부분 종사자 대상으로 폐쇄적인 행사만 존재한다. 호텔을 공간 플랫폼으로 활용해 대중을 연결하고 새로운 경험을 제안하는 콘텐츠가 사실상 전무하다.


서울에서 호텔을 테마로 하는 정기 모임이나 행사가 가능할까? 취재차 가서 호텔을 둘러보면, 외부 대관 외에는 딱히 쓰임새가 없어 놀고 있는 유휴 공간이 많았다. 저런 아까운 공간에서 '콘텐츠'가 유통되는 양질의 모임과 행사가 열린다면 얼마나 좋을까? 언택트로도 충분히 개최 가능하고 말이다. 하지만 막상 일을 벌이려니 호텔 섭외부터가 난항이다. 호텔에 돌아갈 리워드도 마땅치 않고, 모객도 해야 하고, 비용까지.. 고민할 게 너무 많았다. 에버노트에 써둔 두서없는 생각들은, 1년이 넘도록 아이디어로만 남아 있었다.


그런데 전문가 독서모임 '프립소셜클럽' 호스트로 호텔 독서모임 & 강의를 기획하면서, 나의 아이디어는 작게나마 실현되었다. 돌이켜 보니 이 모임 자체가 지금의 호텔과 여행을 둘러싼 변화를 그대로 보여준다는 생각이 든다. 모임 내내 열성적으로 호텔을 탐구하던 참여자들은, 스스로 놀라운 일들을 도모해서 되려 호스트인 나를 크게 놀라게 했다. 철저하게 호텔산업 바깥에서 이루어진 모임에서 어떤 일이 일어났는지, 간단히 소개해 본다.

(모임 1,2회 차 리뷰는 '한국에는 왜 라이프스타일 호텔 브랜드가 없을까? 에 소개했다)



홀리데이인 익스프레스 홍대, 지배인 님과 함께 돌아보는 호텔 룸투어 현장. 2020.11.12


원하는 게 없어서, 직접 만들었어요

아쉽게도 모임 자체를 호텔에서 할 수는 없었지만, 프립 측에서 마련해준 장소가 위치한 홍대 일대는 최근 라이프스타일 호텔의 격전지로 떠오르고 있다. 그래서 마지막 3회차 모임에서는 호텔 측의 안내로 내부시설을 둘러보는 룸투어를 계획하고, 직접 호텔을 섭외했다. 15년 전 여행기자 시절부터 호텔 취재를 셀 수 없이 해온 내게, 룸투어는 너무나 익숙하고 진부한 경험이다.


그러나 모임 참가자들의 관심은 뜨거웠다. 일찍부터 와서 기다리고 퇴근 후 뛰어와서 늦게라도 참여하는 등의 열성을 보여주었다. 호캉스를 늘 즐기는 마니아들이 , 호텔을 '둘러보는' 시간을 좋아했던 걸까? 여행 플랫폼에 재직중인 한 참가자에게 물었다. "저는 이 호텔에서 이미 숙박을 했었거든요. 근데 지배인 님께 호텔의 설명과 비하인드 스토리를 듣는  완전히 다른 경험이네요. 너무 좋았어요"란다. 그리고..



모임이 끝나고 며칠 후, 그는 지배인님을 설득해 룸투어와 숙박을 결합한 '공간 여행'을 개설했다. 평소 프립의 등산 호스트로 활동한다는 그에게, 호텔 룸투어는 '모임상품이 될만한 경험'이었던 것이다. 모임에서 룸투어를 처음 해봤다는 호텔리뷰어 체크인 님 역시, 내돈내산으로 축적한 국내 호텔 리뷰를 이번 브런치북 공모전에 내고 수상자(!!)가 됐다는 소식을 전해왔다. 그 또한 국내에는 마음에 드는 호텔 미디어와 콘텐츠가 없다고 말해왔었다. 고객이 호텔 콘텐츠에 호텔 패키지까지 직접 설계하는 시대다.

사실, 원하는 상품이 없어서 고객이 직접 상품을 만드는 현상은 여행업계 전반에서 이미 벌어지고 있는 일이다. 마이리얼트립, 프립같은 플랫폼에서는 누구나 경험을 판매하는 '호스트'가 될 수 있기 때문이다.



2021년, 고객이 주도하는 경험의 시대

소비자가 여행 경험을 디자인하고 주도하는 시대에, 호텔과 여행업계는 어떤 역할을 해야 할까? 이에 대한 답을 찾는 것이 2021년의 생존전략이자 화두가 될 것이다. 마침 제주도 출장을 앞두고, 오랜만에 제주 호텔의 웹사이트와 숙박상품을 두루 둘러보았다. 내 레이더망에 걸린 소수의 숙박시설, 그러니까 브랜드 전략과 로컬 큐레이션 등 무형의 가치로 여행자의 경험을 리드하는 숙박시설은, 어김없이 기존의 호텔업 바깥에서 생겨난 곳들이었다. 글을 쓰는 현재 기준, 방이 없어서 예약을 못한 유일한 호텔은 우리가 잘 아는 브랜드 호텔이 아니라 F&B 회사를 운영하는 백종원이 '내 맘에 드는 제주 호텔이 없다'며 만든 더본 호텔이다.


작년에는 책 <여행의 미래>를 통해 2030 세대가 여행을 어떻게 변화시켜 왔는지를 추적했다. 올해에는 눈에 보이지 않는 가치들이 어떻게 '팔리는 상품'이 되는지 경험하고 분석해보려 한다. 왜 어떤 호텔은 '브랜드'가 되고 어떤 호텔은 숙박시설로 남는지, 여행지에서의 DIY 클래스는 왜 인기 있는 액티비티가 되는지 등을 경제학 기반의 관점에서 좀 더 자세히 풀어보려 한다.

오는 1월 28일 인사이트 플랫폼과 함께 하는 '2021 관광 트렌드 세미나 : 로컬 관광의 변화를 읽다'에서 준비한 강의도 '미식관광'이라는 특정 분야에 초점을 맞췄다. 미식관광 역시 '맛집 도장깨기'로는 설명할 수 없는 많은 의미가 숨겨져 있다. 곧 브런치 연재를 통해 여러 분야의 사례를 하나하나 소개해 볼 예정이다.





김다영 | nonie 강사 소개 홈페이지 

- 책 <여행의 미래>, <나는 호텔을 여행한다>, <스마트한 여행의 조건> 저자

- 현 여행 교육 회사 '히치하이커' 대표

- 한국과학기술인력개발원 등 100여개 기업 출강, 2019년 Best Teaching Award 수상


지난 10년간 전 세계를 돌며 여행산업의 변화를 여행으로 직접 탐구하고, 가장 나다운 직업을 만들었다. 일반 기업에서는 임직원의 스마트한 여행을 책임지는 강사로, 여행업계에서는 산업 칼럼니스트와 트렌드 분석가로 일한다. 더 많은 사람들이 여행을 통해 자신의 삶과 일을 '나답게' 찾아가는 과정을 돕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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