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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다영 nonie Feb 25. 2017

나만의 커리어 포트폴리오를 만든 계기 feat.여행

책 <스마트>를 읽으며

2017년 처음으로 기획한 여행 커리어 워크숍 3주 과정을 무사히 마무리했다. 일과 삶, 여행에 대한 고민을 통합적으로 설계한 수업을 시도하면서, 오히려 내가 더 많이 배운 시간이었다. 특히 직업에 대한 우리 세대의 관점이 빠르게 변화하고 있음을 새삼 느꼈다. 하지만 프리랜서나 원격 근무 형태로 일하려면 '자신만의 차별화된 업무 영역과 전문기술'이 반드시 필요한데, 앞뒤 맥락도 없이 '퇴사 후 장기여행'이나 노마드 라이프를 권하는 콘텐츠나 책이 요즘 너무 많다. 이에 큰 영향을 받고 직업을 고민하는 이들을 마주하며, 문득 나는 어떤 계기로 직업관을 바꾸게 되었고 본격 준비를 시작했는지 떠올려 보았다. 때는 2010년 7월로 거슬러 올라간다.


상암동 어느 고층빌딩에서 열심히 컴퓨터를 두드리던 시절이었다. 벤처기업의 홍보팀장으로 잦은 외근과 야근을 불사했지만, 신기하게도 매번 회사 운은 좋아서 그 흔한 월요병도 없이 재미나게 일했다. 작은 조직에서 성과를 내는 일은 물론 행복했지만, '혼자 독립을 하더라도 무기가 될' 나만의 강점을 찾기 위한 고민도 막 시작되던 때였다. 1인 미디어 초창기였고 지금처럼 블로그도 많지 않을 때라, 이런저런 행사나 여행에 초대되며 틈틈히 개인적인 영향력을 넓혀가고 있었다. IT잡지에 기고를 할 때는 회사 이름과 직책이 따라붙고, 여행 쪽 행사에 가면 소위 '파워블로거'로 불리던, 정체성(?)의 혼란을 느끼던 시점이기도 했다. 


그러던 어느 날 뜻밖의 기회가 찾아왔으니, 할리우드의 블록버스터 영화 개봉을 앞두고 LA 현지에서 열리는 시사회에 미디어로 참석하게 된 것이다. 여행기자 생활도 했고 이런저런 국제 행사에 불려 다니긴 했지만, 난데없이 영화 시사회라니. 행사 당일엔 대로변에 레드카펫이 깔린다는데 ㄷㄷ이거 원 드레스라도 입고 가야 하나. 



헐리우드의 상징, 리먼 차이니스 시어터 앞. 시사회 당일은 레드카펫이 깔리고 인산인해를 이룬다.


그렇게 여름휴가 대신 할리우드까지 날아가서 만난 안젤리나 졸리(그리고 전 남편)와 영화 시사회가 그저 흔치 않은 인생 이벤트라면, 정작 여행에서 기억에 남는 순간은 시사회 전날 현지 스태프들과 가진 식사 자리였다. 그들과 통성명을 하며 대화를 나누던 도중, 흥미로운 사실을 알게 된 것. 


영화 홍보를 담당하는 에이전시 직원인 마이클이, 자신의 직업은 총 3가지라고 소개했다. 본업이 에이전시에서 영화 마케팅을 하는 일이라면, 개인적으로 독립영화를 제작하는 감독이면서 밴드에 소속된 기타리스트라는 것이다. 나 역시 직장인 밴드 경험이 있어서 좀 더 자세히 물어보니, 마이클의 음악 활동은 단순한 취미 수준이 아니었다. 정규음반도 내고 큰 지역 무대에 서는 준 프로급으로, 말 그대로 '직업'으로서의 수익을 창출하고 있었다. 어떻게 서로 다른 세 가지 일을 한 사람이 다 할 수 있을까? 아니, 애초에 취미 이상의 서브-직업은 갖기 어려운 한국의 현실에서, 이 모든 일을 '직업'으로 소개하는 그의 관점 자체가 신선한 충격이었다. 


할리우드 여행 후, 한 동안 뒤통수를 맞은 듯 멍했던 기억이 난다. 그들과의 대화를 계기로 직업에 대해 많은 것을 다시 생각하게 되었기 때문이다. 어쩌면 직장인으로 내가 속한 회사를 홍보하는 일에 큰 보람을 느끼긴 했지만, 남을 위한 일이 저절로 '내 일이 될 수는 없다'는 것을 어렴풋이 깨달았는지도 모른다. 특히 홍보업에 종사하면서 가졌던 의문은, 내가 만난 많은 기업 홍보 담당자들이 '자기 자신'을 위한 홍보나 브랜딩은 할 줄 모른다는 것이었다. 비슷한 맥락에서, 나와 같은 여행 취재기자 경력자 중에 5~10년 후 여행 쪽 전문성을 살려 돈버는 사람도 극히 드물다. 대부분 다른 매체 혹은 전혀 상관없는 직종으로 이직한다. 평소에 회사와 개인을 분리해서 사고하지 않으면, 회사에서 애써 배운 직업적 스킬을 스스로를 위해 응용하거나 적용할 방법을 찾기 어렵다는 걸 시간이 지나면서 알게 되었다. 




개인적으로 지금의 일을 하는데 큰 영감을 준 작가는 프랑스의 사회학자 프레데릭 마르텔이다. 그의 최근 저서인 <스마트>를 읽는데, 놀랍게도 내가 맞닥뜨렸던 미국에서의 상황이 거의 똑같이 기술되어 있다. 


이곳(샌프란시스코)에서는 다들 각자 여러 직업을 갖고 있는데 하나는 돈을 벌기 위한 '본업'이고, 다른 하나는 스타트업에 돈을 투자하는 일이며, 나머지 하나는 좀 더 예술적 성향이 강한 '부업'이다. 바로 이 부업이 자신이 정말로 좋아하는 일이라서 거기에도 시간을 투자하는 것이다. 차로 한 시간 거리에 있는 사무실 한 곳에서만 일하는 건 샌프란시스코에서는 생각도 할 수 없는 일이다. (<스마트> 중에서) 


내가 평소 커리어 관련 강의와 칼럼에서 항상 하는 얘기가 있다. '꼭 하고 싶은 일이 있다면 취미가 아니라 경력을 쌓고 시장성을 검증받을 것'이다. 할리우드에서 만난 마이클 역시 영화를 전공했고 열정이 있었지만 처음부터 감독이라는 직업에 뛰어들기엔 리스크가 크므로, 일단 주변부에 몸담는 길을 택했다. 그와 동시에 소규모로 영화/음악을 창작해서 시장에서 자신의 재능을 평가받는 일에도 게으르지 않았다. 나 역시 직장생활을 하면서 쌓아둔 10년간의 블로깅과 취재 경력, 창업 등이 합쳐져 직업의 독립을 시작하는 계기가 되었다. 이제는 평생직장이 사라진 한국에서도, 전략적인 커리어 포트폴리오 설계가 꼭 필요하다고 본다. 


이러한 직업의 포트폴리오는 '취미 탐색'과는 본질적으로 다르다. 요즘 디지털 노마드 스타일의 직업관이 부상하면서 이에 관심을 가진 사람들의 글이나 태도를 보면, '타인의 강점'에 너무 쉽게 경도되는 동시에 자신의 약점 보완에만 시간을 쏟으려고 한다. (특히 영어학습이나 예술 창작 같은, 단기간에 해결이 안 되고 특정 재능이 필요한 분야) 또한 수많은 외부적 취미(input)에 반복적으로 '입문'하는 데 귀중한 시간을 소비한다. 30세 이상의 사회인이라면, 무언가를 새로 배우겠다고 결심하기에 앞서, 자신의 강점을 깊게 파악하고 '잘하는 것을 더 잘하는' 것에 시간을 집중적으로 투자해야 한다. 그래야 시행착오를 줄이면서 자신만의 직업세계를 확보할 수 있다. 물론 이게 참, 쉽지 않다. 원래 인간이란 자신이 잘하는 것보다 '남들에 비해' 못하는 것만 보이기 마련이다. 그래서 삶과 커리어를 새로 브랜딩하는 과정이란 참으로 복잡하고 지난하며, 때로는 타인의 '객관적 시선이 필요한' 과정이기도 하다. 





Who is nonie?

천상 글쓰기보다 말하기가 좋은, 트래블+엔터테이너를 지향하는 여행강사. 기업과 공공기관, 직장인 아카데미에 여행영어 및 스마트 여행법 출강으로, 휴일도 없이 싸돌아 다닙니다. 호텔 컬럼니스트. 연간 60일 이상 세계 최고의 호텔을 여행하고, 함께 일도 합니다. 인스타그램 @nonie21 페이스북 'nonie의 스마트여행법'

강의/방송/세미나 요청은 강사 소개 홈페이지 에서 문의해 주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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