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김다영 nonie Sep 04. 2018

원하는 일을 선택할 자유가 있는가

디지털 노마드, 일의 형태보다는 본질

지난 5년간 많은 기업에서 강의를 하면서, 지식업 분야에도 거대한 피라미드 구조가 존재한다는 것을 깨닫게 되었다. 일단 강사 업종 피라미드의 80~90%는 반드시 불러주는 '클라이언트'가 있어야 직업이 유지되는, 프리랜스 포지션이 차지한다. 연중 수 십만 건의 이력서가 등록되는 강사인력 포털을 물끄러미 보고 있자면, 이 바닥은 누가 봐도 ‘레드오션’이다. 언젠가 기업 교육에서 만난 강사는 '평소에 (기업) 담당자에게 제안서를 많이 보내요. 그래도 채택되기가 어렵더라고요'라고 내게 토로했다. 물리적인 자유를 가졌다고 해도 언제나 선택되기를 기다려야만 하는 직업이라면, 단지 기업에 고용되지 않고 일하는 불안정한 상태일 뿐이다. 물론 버는 돈으로만 따지자면, 피라미드의 꼭대기에는 어학원의 인기 강사처럼 고소득을 올리는 강사가 있을 것이다. 그러나 자기 시간은 전혀 없거나 건강을 해칠 정도로 노동 강도가 높다면, 그 역시 행복한 직업이라 단정할 수는 없다.


문득 내가 서 있는 포지션을 돌아보면서, 한 가지 특이점을 발견했다. 지금까지 단 한 번도 영업을 해본 적이 없었던 것이다. 그런데도 가장 큰 시장이며 영업이 필수라는 기업 강의를 하고 있으니, 운이 좋은 셈이다. 그렇지만 시장이 나를 먼저 찾는 이유를 더 곰곰히 생각해보니, 가장 큰 요인은 단순히 강사라기 보다는 전문가라고 판단하기 때문이다. 그러니까, 직업인으로서의 강사가 아니라 특정 분야의 지식인/전문가라는 포지션을 사회가 부여했기 때문이다. 보통 이렇게 얘기하면, 많은 수강생이나 독자는 자신의 문제를 한 가지로 수렴시킨다. '아, 나는 전문성이 없는 거구나. 그럼 나만의 전문성을 키우려면 어떻게 해야 하지? 학위가 필요한가? 경력이 더 필요한가?'라고 말이다.


하지만 그렇게 생각하는 순간부터, 이쪽으로 향하는 길은 조금 더 오래 걸리거나 멀어진다고 보면 된다. 지금 사회가 원하는 전문성의 실체는 바로, 당신이 지금까지 걸어온 길, 그 자체이기 때문이다.



My life is my message.
- Mahatma Gandhi


이제 지식업 피라미드의 최상단 영역은, 고소득자보다는 일감 선택의 자유를 가진 '시간의 부자'로 천천히 바뀌고 있다고 본다. 이 곳은 단순 고소득자(ex.인기 강사)와는 달리 일반인의 눈에는 잘 보이지 않는 세상이다. 이들은 극소수이긴 하지만 주도적인 시간 활용성과 일을 선택할 자유를 갖고, 동시에 탄탄한 매출 구조를 만들며 1인 브랜드로 진화한다. 이들에겐 굳이 이력서 등록이나 소개서를 뿌리는 '영업' 행위가 필요없다. 일에 선택당하는 대신 일을 선택할 자유를 가진 이들은, 어떤 비결을 갖고 있을까? 알쓸신잡의 셀럽 지식인처럼 고학력은 기본이고, TV에 얼굴이 알려진 유명인이어야만 되는 걸까? 일단 셀럽도 아니고 석박사 간판도 없는 나의 사례를 돌아보면서, 세상이 '전문성'을 정의하는 방식이 바뀌고 있다는 것을 서서히 피부로 느끼고 있다.


현재 시장이 소비하는 나의 콘텐츠(강의, 책, 블로그, 영상 등)는, 지금까지 내가 살아온 내용 그 자체다. 여행을 다른 관점으로 바라보는 콘텐츠를 10년 이상 세상에 꾸준히 내놓았고, 그 결과가 이제서야 커리어로 이어지는 것이다. 그동안 내가 걸어온 길을 시장이 원하는 시점부터, 내 일은 내가 결정할 수 있다. 반면 세상에 내놓은 자기 콘텐츠가 없다면 끊임없이 남의 얘기를 가져와서 떠들거나, 아니면 남의 얘기를 대신 만들어 주는 일에 만족해야 한다. 이것이 내가 하는 일과 일반적인 프리랜싱/외주 마케터와의 결정적인 차이점이다. 이 차이를 설명하기가 참 어려운데, 사실은 시간이 흐를수록 이 지점에서 거대한 '커리어 장벽' 이 생긴다. 본인이 지식업 시장에서 어떤 위치에 서 있는지는, 현재 받는 돈이 '당신의 이야기를 하기 때문인가, 아니면 누군가(기업)의 일을 대신 해주기 때문인가? 만 보면 된다. 또 다른 측면에서는 이렇게도 생각해볼 수 있다. 당신의 일은 기업의 내부 인력으로도 대체될 수 있는 일인가, 아니면 당신이 아니면 절대 안되는 일인가?


덕분에 나는 일을 할 지의 여부와 조건을 기업이 아닌 내 기준으로 결정한다. 임직원 교육이므로 당연히 주말은 쉬고, 평일도 매일 강의하지 않는다. 강의가 있는 날도 러닝타임은 평균 2~4시간이니 나머지 시간은 온전히 내 것이다. 강의가 없는 날은 가까운 카페나 원하는 공간에서 일하고, 가족과 더 시간을 보낸다. 1년에 2~3회 해외 취재 프로젝트를 준비하기 때문에, 평소에는 외국 업체와 컨택하거나 밀려있던 콘텐츠를 만든다. 가장 좋은 점은 다른 전문가의 교육에 참가하거나 독서(연평균 80~100권) 시간도 충분하기 때문에 자기계발로 인한 끊임없는 커리어 업그레이드가 이루어진다는 점이다. 매출은 어느새 직장인 시절은 물론 작년 대비 2배 이상 뛰어넘은 반면, 소비는 직장인 때의 50% 수준이다. 소위 '시발비용'이 발생하지 않아서인데, 이것은 물리적인 노동시간이 압도적으로 줄어든 데다 누군가의 지시나 비전에 따라 일할 일이 없기 때문이다. 불필요한 인간관계로 인한 비용도 많이 줄어든다.


그런데 수도 없이 눈에 띄는 디지털 노마드 관련 글에서는, 이 부분에 대한 통찰을 찾아볼 수가 없다. 모두가 '워너비' 단계에서 허상을 좇는 글만 보일 뿐, 실제 본인이 성공했다는 사례는 없는 이유 아닐까? 실제 내 주변에서 완벽한 디지털 노마드로 안정적인 매출을 유지하는 진짜 전문가들은, 스스로를 그런 단어 몇 자로 사칭하지 않는다. 그저 조용히, 그들만의 리그에서 적게 일하며 충분히 벌고 행복하게 살아간다.(Top 강사 중에는 이 분이 대표적인 사례다) 그럼에도 보이지 않는 세상을 굳이 언급한 이유는, 누군가는 이 차이점을 직접적으로 짚어줘야 대책 없는 퇴사보다는 좀 더 현실적인 대안도 논의될 거라고 보기 때문이다. 불안정한 매출 구조 & 대체 가능한 낮은 전문성을 가지고 직업사회에 나오면, 그저 '디지털 노마드 흉내'만 내다가 재취업을 하거나 강도 높은 생계형 프리랜싱을 이어가야 한다. 강사 뿐 아니라 그 어떤 직군이라도 마찬가지다.


나만의 직업을 만드는 첫 단계에서 가장 중점적으로 고민해야 할 것은, 일의 형태(디지털 노마드냐 아니냐)가 아니라 일의 본질이다. 만약 외국의 예쁜 카페에서 노트북을 놓고 일하더라도, 남의 일을 몇 개나 동시에 받아서 꾸역꾸역 쳐내도 월급쟁이보다 못 버는 업의 구조를 만든다면 결국 직업의 자유는 멀고 먼 꿈으로 남게 될 것이다.(특히 노년이 되면 어떨지, 생각해 보라) 다양한 일을 받아서 하더라도 그 일의 유기성이 존재하는지, 또한 그 일이 당신을 소모시키는지 혹은 성장시키는 지를 관찰해야 한다. 결국 내 이름 앞에 붙는 타이틀이 디지털 노마드인가 아닌가는 정말이지, 중요하지 않다. 타이틀은 사회가 당신에게 주는 것이지, 내가 다는 것이 아니더라. 그러니 나만의 전문성과 시장이 원하는 기술의 균형점을 찾아가며, 긴 시간동안 꾸준히 인정받는 삶의 궤적을 만들어야 한다. 그 때가 되면, 내 월급은 내가 스스로 만들 수 있다. 단, 세상이 원하는 전문성의 정의가 크게 변화하고 있는데, 이 부분은 다음 글에 좀더 자세히 다뤄보기로.





Who is nonie?

국내) 천상 글쓰기보다 말하기가 좋은, 트래블+엔터테이너를 지향하는 여행강사. 기업 및 공공기관 임직원을 대상으로 '스마트 여행법' 교육 및 최고의 여행지를 선별해 소개합니다. 강사 소개 홈페이지 

해외) 호텔 컬럼니스트. 매년 60일 이상 전 세계 호텔을 여행하고, 함께 일합니다. 2018년 7월, '나는 호텔을 여행한다' 출간. 인스타그램 @nonie21 페이스북 'nonie의 스마트여행법'


이전 04화 플랫폼 노동의 시대, 직업은 어떤 의미를 가질까?
brunch book
$magazine.title

현재 글은 이 브런치북에
소속되어 있습니다.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