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김다영 nonie Sep 01. 2020

업을 찾는 과정은, 나를 알아가는 과정

<비커밍> vs. 한국의 에세이

나를 알아가는 과정, 우리에게도 가능할까

어제 넷플릭스 <비커밍 Becoming>를 보았다. 미셸 오바마가 자서전을 낸 후 미 전역을 다니며 북투어를 하는 과정을 담은 다큐멘터리다. 물론 영상물로서도 훌륭했지만, 개인적으로 인상 깊었던 포인트는 미셸이 퍼스트레이디로 보낸 8년을 전체 삶에서 아주 짧은 순간으로 본다는 것이었다. 그녀는 과거의 영광에 머무르거나 이전의 삶으로 돌아가려는 것이 아니라, 계속해서 '무엇을 하고 싶다'는 에너지로 충만해 있었다.


다시 이전의 삶으로 돌아가는 것이 아니라 So it's not getting back on track, 
새로운 길을 개척하는 거죠 but it's creating my next track.


새로운 나를 알아가는 과정을 스스로 즐기는, 미셸의 자기 확신을 선명하게 보여주는 지점은 또 있다. 북투어 토크쇼 중에 '90살이 되어서도 이런 잔소리 하고 다니는 할머니가 되고 싶어요'라는 대목이다. 

그녀가 '잔소리'를 빌어 전달하려는 메시지는 '세상이 당신에게 절대 안 될 거라고 말해도, 외부 환경이 너를 바꾸도록 내버려 두지 말라'는 것이다. 결국 나를 만들어내는 것은 내 안에 있다. 남의 시선으로 나를 재단할 것인지, 나의 시선으로 나를 바꾸어갈 것인지는 결국 내 선택에 달려있다. 우리가 하는 '일' 역시, 정확히 그러하다. 


'직업'의 관점에서 그녀의 메시지를 다시 곱씹어 본다. 나 역시 80, 90살이 되어서도 나의 지식과 인사이트를 세상에 교류하며 평생 현직으로, 진화하는 업을 가진 전문가로 살고 싶기 때문이다. 그런데 일에서 의미를 찾고 내게 맞는 업을 만들고 싶다는 나의 생각이, 요즘 시대엔 얼마나 설득력이 있을까 하는 의문이 때때로 든다.




일본인 트위터 @maikana에 올라온, 한국 서점의 에세이 코너. 


이 시대에, 일의 의미는 왜 중요할까

트위터에서 위와 같은 게시물을 우연히 보았다. 외부자인 일본인의 시선에서 본 한국 서점의 에세이 코너는 '왜 이렇게 사람들이 죄다 자고 있지??'라는 의문을 갖게 한다. 한국인들은 친절하게도 '이건 자는 게 아니라 지쳐있는 것'이라고 알려준다.(...) 그렇다. 우리는 모두 지쳐 있다. 왜 우리는 지칠까. 일에 대한 의미를 도저히 찾기 어려운 노동 환경이 대부분인 현실 때문일 것이다. 


되고 싶은 직업? 초등학생 때 그림으로 몇 번 그려보고 잊은 지 오래다. 우리가 가는 곳은 직장이고, 직장은 돈을 버는 수단이지 직'업'은 아니다. 그러니 나를 찾으려면 일단, '퇴근'을 해야 한다. 그런데 퇴근하고 나면 정확히 위의 그림과 같은 상태가 되어 나를 찾을 에너지가 남아있지 않다는 것이 문제다. 그나마 약간의 에너지가 남아 서점으로 오는 직장인을 위해, 출판 시장은 친절하게도 내 마음을 읽은 듯한 에세이를 눈앞에 깔아 놓는다. 최근 나타나는 투잡 열풍이나 '파이어족(조기은퇴족)', 재테크 정보에 중독되는 현상 역시 일 자체에서 큰 의미를 찾지 못하는 현상의 이면이라고 생각한다.    


결국 닭이 먼저냐, 달걀이 먼저냐의 문제다. 미뤄도 언젠가는 찾아야 하는 답이, 세상엔 있기 마련이다. 끊임없는 자기 위로 속에서 세상에 소진되는 상황에 계속 끌려갈 것인지, 아니면 내게 '의미가 있는 일'을 결국 찾아내고 굴레에서 벗어나 나의 '트랙'을 만들 것인지. 의미를 찾을 수 없는 일을 계속하면, 우리는 계속 일에서 벗어나려고만 한다.  



이제부터는 직업적 롤모델을 찾기가 더 어려워지는 세상이 된다. 
과거의 많은 직업이 미래에는 더 이상 유효하지 않거나 사라지고 있기 때문이다. 


세상이 아닌, 내가 나를 규정할 시간

'롤모델이 없는 길을 간다는 것'에 썼던, 롤모델에 대한 내 생각을 다시 되돌아본다. 책 <여행의 미래>를 내고 나서 북 토크 현장에서 많은 독자들과 만났다. 어떻게 해야 좋아하는 일로 직업적인 전문성을 갖출 수 있는지, 지금의 직업을 만들기 위해 어떤 노력을 했는지 질문하는 이들이 많았다. 


"나는 어떤 사람인가. 어떤 일을 할 때 즐거운가. 나의 일은 세상의 어떤 문제를 해결할 수 있는가"에 답할 수 있는 일을 할 때, 우리는 일에서 의미를 찾을 수 있다. 그런데 지금처럼 누구도 준비되지 않은 세상이 갑자기 오면, 학문적 성취나 업계 이력만 활용해서는 도저히 해결할  없는 새로운 문제가 생겨난다 

급변하는 시대의 새로운 전문가들은 좁고 깊은 분야에 파고드는 열정과 재능을 기반으로 세상의 문제를 실용적으로 해결해 나간다. 미셸은 이제 누구의 아내로 불리지 않고, '사회활동가'라는 업의 타이틀을 달았다. 자신과 국가에게 의미 있는 일을 찾아서 하나씩 성취해 가는 일련의 일을, 어떤 '직업'으로 정의 내리기란 매우 어렵다. 


관광 전공자도 종사자도 아닌 나 역시, 책 <여행의 미래>에서 짚었던 변화의 흐름이 급속도로 몰려오는 바람에, 관광 분야의 다양한 일을 맡게 됐다. 요즘 진행 중인 '여행산업 트렌드' 강의는 관광업계의 최고경영자 과정부터 실무자, 협회, 심지어 관광해설사 교육까지 들어가 있다. 어떤 날은 강의가 끝나면 관광재단이 주관하는 자문위원 회의에 참석해 뉴 노멀 시대의 여행지 기준을 만들고 선정하는 일에 참여한다. 또 어떤 날은 업계 미디어에 긴 글을 기고하거나 토론회에 참석한다. 책에서 제기했던 문제를, 현실 세계에서 해결하는 과정에 관여하게 된 것이다. 끊임없이 스스로의 일을 정의하고, 문제를 정의해온 결과라고 생각한다. 


특히 최근 공공 업무를 하며 깨달은 건, (기업은 물론) 정부기관에서도 특정 전문성을 요하는 일은 외부 전문가를 위촉하거나 수주를 준다는 사실이다. 따라서 업을 보유한 이들은 공공과 영리적 기업을 넘나들며 일할 수 있다. 올 상반기 내내 이 일을 하면서 만난 심사위원이나 컨설턴트들도, 대기업이나 기관을 빠져나와 자신의 업을 스스로 정의내리고 특정 문제를 해결하는 능력을 갖춘 독립적인 분들이 많았다. 이들의 공통점은, 주어진 일을 무척 즐기고 있다는 것이다. 일해서 남 주는 일 말고, '나' 주는 일을 하기 때문이다. 일을 하면 할 수록 직업적 가치가 쌓이는 일이기에, 힘들어도 지칠 새가 없다. 돈이 아닌 일에서 의미를 찾는 이들의 특징이다.


지금보다 더 많은 이들이, 변화하는 세상의 틈새에서 자신에게 의미 있는 일을 훨씬 더 많이 찾아낼 수 있다고 생각한다. 그러니, 더 늦기 전에 세상의 기준이 아니라 내가 나를, 나의 일을 새롭게 정의해 볼 시간이다. 










김다영 | nonie 강사 소개 홈페이지 

- 책 <여행의 미래>, <나는 호텔을 여행한다>, <스마트한 여행의 조건> 저자

- 현 여행 교육 회사 '히치하이커' 대표

- 한국과학기술인력개발원 등 100여개 기업 출강, 2019년 Best Teaching Award 수상


지난 10년간 전 세계를 돌며 여행산업의 변화를 여행으로 직접 탐구하고, 가장 나다운 직업을 만들었다. 국내에서는 기업 임직원의 스마트한 여행을 책임지는 강사로, 여행업계에서는 호텔 칼럼니스트와 여행 트렌드 분석가로 일한다. 더 많은 사람들이 여행을 통해 자신의 삶과 일을 좀더 '나답게' 찾아가는 과정을 돕고 싶다.


블로그 

인스타그램 @nonie21 

무료 뉴스레터 (이전 뉴스레터도 읽어 보세요!)

이전 02화 35세 이전에 내 업을 찾고 싶다면
brunch book
$magazine.title

현재 글은 이 브런치북에
소속되어 있습니다.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