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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다영 nonie Nov 13. 2017

전 세계 1만5천명이 도전한, 공짜 태국여행?

글로벌 관광업 트렌드 사례 - 태국의 '6 senses' 캠페인


지난 10년간 여행기자와 블로거에서 여행 전문 강사까지 오랜 기간 여행 분야에서 활동하다 보니, 한국을 대표해 전 세계 여러 국가/도시와 다양한 협업을 해 왔다. 덕분에 굴뚝없는 산업을 부흥시키기 위한 관광선진국들의 기발한 아이디어를 조금 일찍 체험하는 '대상'이 된 셈이다. 이것은 책이나 인터넷에서 접하는 관광업 리포트나 이론과는, 차원이 다른 생생한 경험이다.


그 중에서도 지난 8월, 태국정부관광청(TAT) 본청에서 진행한 6 Senses 글로벌 캠페인은 한국의 관광업계에도 시사하는 바가 많아서, 조금 더 자세히 소개해볼까 한다. 이 캠페인을 자세히 들여다보면, 관광선진국이 공통적으로 갖고 있는 고민과, 이를 해결하기 위한 빛나는 인사이트를 엿볼 수 있다. 



태국관광청의 2017 글로벌 여행 캠페인 공식 마이크로 사이트. 


전 세계 1500만명이 주목한 여행 이벤트

지난 여름, 태국관광청 본청(TAT)은 전 세계를 대상으로 글로벌 캠페인을 런칭했다. 기존의 유명 관광지가 아닌, 특별하게 짜여진 태국 북부 여행의 참가자를 뽑는 콘테스트다. 이를 위해 별도의 마이크로 사이트를 런칭했는데, 여기서 소개하는 여행 테마는 '6 senses in Thailand', 즉 6개의 감각 별로 추천하는 태국 여행지를 모아놓은 사이트다. 

예를 들어 청각(Hearing)을 클릭하면 암파와의 전통악기 체험이 소개되고, 후각(Smell)을 클릭하면 치앙마이의 허브 전문 스쿨이 나오는 식이다. 모든 체험은 '태국의 유니크한 전통문화와 라이프스타일 체험'에 촛점이 맞춰져 있다. 이들 체험과 장소를 발굴하는 모니터링 투어와 일정 설계에만 꼬박 2달이 걸렸다고 하니, 얼마나 큰 국가적 프로젝트였는지 짐작할 수 있다.



우승자 6팀이 여행한 전체 코스. 러이->수코타이->치앙마이 근교 등 태국 북부와 중부를 아우르는 독특한 코스다. 


중요한 것은 단지 여행정보만 제공하는 게 아니라, 6개의 감각 중에 하나를 선택하여 "이 감각을 선택한 이유, 그리고 당신이 이 곳을 여행해야 하는 이유"을 서술하여 지원하면, 선발을 통해 8백만원 상당의 여행을 제공한다는 큰 이벤트가 걸려 있었다. 아무 생각없이 하나를 골라서 몇 줄을 쓰고는, 잊어버렸다. 감각이 6개니까 전 세계에서 6명 안에 들어야 한다는 건데, 설마 이런 게 되겠어? 


설마, 이게 되겠어?
로또보다 빡센 확률이다 싶어, 지원한 사실조차 잊고 있었다. 


이 캠페인은 독특한 체험 컨셉트, 파격적인 선발 방식으로 세계적인 주목을 끌었다. 관광청이 최종적으로 발표한 데이터에 따르면, 마이크로 사이트 방문 기록은 총 1,500만 뷰를 기록했으며, 전 세계에서 1만 5천여 명이 유효한 지원서를 접수했다. 그 중에서 랜덤으로 1차 추출을 한 뒤, 접수된 신청 사연을 평가하여 지역 별로 우승자를 선발했다고 한다. 


그리하여 6팀 중에 2팀은 미주(북/남미 각 1팀), 2팀은 유럽(영국/독일), 2팀은 아시아(말레이시아/한국)로 최종 결정되었고, 아시아에서는 놀랍게도 내가 이름을 올리게 되었다. 최종 우승자 6팀의 면면을 보면 단순히 로또같은 천운이 아니라, 뽑힐 만한 사람이 뽑혔더라. Hearing에 선정된 멕시코 여성들은 '사운드 테라피' 전문가였고, Taste에 선정된 영국의 부부는 레스토랑 오너였다. 가장 의외의 우승자는 Smell 부문에 선정된 내가 아닐까?ㅎㅎ아마 신청서보다도, 여행 커리어와 콘텐츠의 전문성에 대해 좋은 평가를 받은 것 같다. 


그렇게 시작된 추석 연휴의 11박 12일은 매 순간이 꿈만 같고, 거짓말처럼 느껴졌다. 총 15편의 여행기는 블로그에서 만나볼 수 있다. 



6 Senses 캠페인의 공식 비디오. 앞으로 태국의 관광 진흥 목적으로 두루 사용된다.


오버-투어리즘을 극복하는 관광선진국의 지혜

여행산업은 일반적으로 돈을 많이 쓰는 여행자 비율이 높아야, 관광으로 파괴되는 각종 손해를 상쇄할 수 있다. 반면에 도시가 수용가능한 여행자의 범위를 초과하면 베니스, 바르셀로나처럼 커다란 사회문제를 겪게 된다. 이를 오버 투어리즘(Over-tourism)이라고 한다. 


태국 정부는 왜 이렇게 큰 비용과 인력을 투자해서 관광 캠페인을 진행했을까?



아시아에서는 저가(배낭)여행자의 비율이 과도하게 높은 여행지가 바로 태국이다. 최근 한 조사에 따르면 수도 방콕은 도시 별 외국인 방문자 수에서 전 세계 1위를 기록했다. 출처 이로 인한 환경오염과 사회적 문제가 점점 심각해지고 있다. 이를 해결하기 위해, 태국관광청은 수 년 전부터 럭셔리와 여성 여행자를 겨냥한 캠페인을 전개하며 이미지 변신을 꾀해 왔다. 하지만 럭셔리 여행산업은 생각보다 간단한 시장이 아니다.


새롭게 부상하는 럭셔리/개별 여행자 계층은 비싼 리조트나 관광상품이 아닌, 다른 경험을 원하고 있다. 많은 글로벌 리포트는 럭셔리 여행산업이 'Expensive'에서 'Exclusive'(나만 할 수 있는 특별한 문화적 경험)로 이미 전환했음을 알리고 있다. 이런 흐름에 맞추어 태국관광청은 진짜 태국의 모습을 담은 'Authentic'한 로컬 체험여행 모델을 임의로 구성한 후, 이 여행의 모델이 될 여행자를 공개 선발로 찾았던 것이다. 



나를 포함한 우승자들이 SNS에 공유한 여행 스토리. 관광청은 이를 모니터링하여 효과 측정에 활용했다.


우리가 경험한 이번 여행을 되돌아 보면, 태국이 다양한 국적의 외국인을 초청해서 '유니크한 태국'을 어떻게 보여주고 싶어 하는 지가 한 눈에 드러난다. 관광객으로 몸살을 앓는 방콕, 파타야, 푸켓 대신, 로컬 커뮤니티와의 협력을 통해서 관광객을 북쪽으로 분산시키기 위한 다양한 체험투어를 발굴했다. 민간과 정부가 협력해서, 농촌과 지방을 살릴 수 있는 미래의 캐시카우로 '체험관광'에 주목하고 투자하는 것이다. 이는 작년에 타계한 푸미폰 국왕이 생전에 강력하게 추진한 지역경제 정책인 '로열 프로젝트'와도 완전히 맞닿아 있다. 이러한 관광전략은 한국의 여행업계에서도 모니터할 부분이 크다고 생각한다. 


또한 태국은 그동안 많은 관광진흥 캠페인을 진행하면서, 작년까지는 소위 '인플루언서, 블로거'와 같은 미디어를 주력으로 초청했다고 하지만 이 역시 변화를 맞고 있다. 인플루언서의 강력한 파급효과에 기대면 홍보는 빨리 될 지 모르지만 지속성도 그만큼 짧다는 걸 경험적으로 학습한 것이다.(인플루언서들은 여러 나라와 일하기 때문에 한 나라만 계속 홍보하지 않는다) 


이번 캠페인은 여행 테마에 맞는 일반인을 선발하되, 그들이 가진 분야별 전문성에 주목했다. 요리를 직업으로 하는 외국인이 로컬 음식을 직접 요리하게 하고, 요가와 명상을 가르치는 전문가에게 불교문화와 전통의식을 체험하도록 하는 것이다. 이를 전문 인력이 모두 촬영해서, 관광청이 의도하는 바 대로 콘텐츠를 만들고 직접 바이럴하고 있다. 인플루언서 마케팅에 크게 의존하고 있는 여행업계가, 새롭게 주목해 볼만한 방식이다. 


개인적으로 이번 여행에서 얻은 건 단지 태국을 새롭게 바라보는 시각만이 아니라, '여행은 왜 하는가?'에 대한 본질적인 질문을 품게 된 것이다. 그 전까지는 스스로에게 그런 질문을 하지 않았다. 당연히 알고 있다고 생각했으니까. 그런데 이번 여행을 하면서 여행자가 로컬 사회에 미치는 영향, 현지 문화를 체험했을 때 여행지를 바라보는 나의 인식이 크게 변화하는 지점을 발견했다. 지극히 수동적인 여행자가 능동적인 여행자로 변해가는 과정이랄까. 


사실 한 개인이 여행을 바라보는 인식과 깊이는, 결정적인 계기가 없다면 죽을 때까지 변하지 않을 수도 있다. 여행은 낯선 경험을 하려고 떠나는 거지만, 아이러니하게도 자신에게 익숙한 폭 안에서만 경험하려는 게 인간의 본성이기 때문이다. 지금까지는 좋은 호텔과 맛있는 음식을 찾아다니며 두 세가지 감각을 충족하는 여행에 그쳤다면, 이번 여행의 테마인 '6 Senses'를 두루 거치면서 오감을 충족하는 여행을 꾸리기 위해서는 어떤 마음가짐과 시각이 필요한 지를 배웠다. 내 여행과 삶의 목적을 한 단계 진화하게 도와준 태국관광청 본청과 수많은 스탭들, 현지 커뮤니티 분들에게 진심으로 감사의 마음을 전하고 싶다. 




Who is nonie?

국내) 천상 글쓰기보다 말하기가 좋은, 트래블+엔터테이너를 지향하는 여행강사. 기업 및 공공기관의 임직원을 대상으로 '스마트 여행법' 교육 및 최고의 여행지를 선별해 소개합니다. 강사 소개 홈페이지 

해외) 호텔여행 전문가. 매년 60일 이상 전 세계 호텔을 여행하고 한국 시장에 알립니다. 또한 한국인의 해외 자유여행 트렌드를 분석하고 강연합니다. 인스타그램 @nonie21 페이스북 'nonie의 스마트여행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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