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플루언서가 본 관광업의 진짜 문제는 이것
얼마전 포털 메인을 장식했던, 흔치 않은 관광 분야 뉴스가 있다. 태국 인플루언서가 ‘한국은 한번이면 충분, 일본은 볼 게 많아’라고 언급한 인터뷰를 두고, 많은 이들이 한국의 관광 콘텐츠 부재에 대한 개탄을 쏟아냈다.
이 기사를 언뜻 보면 한국 관광정책의 미흡이나 관광 콘텐츠 부재를 지적하는 것처럼 보인다. 하지만 그녀와 같은 입장에서 세계의 관광기관과 협업하는 한국의 인플루언서로서 바라본 이 기사의 핵심은, '볼 것 없다'는 단순한 지점이 아니다. 볼 것(관광 콘텐츠)에 접근하지 못하게 만드는, 혹은 그 '볼 것'에 대한 이해도가 너무 낮은 관광상품에 핵심이 있다. 나아가 이러한 상품을 개발하고 판매하는 ‘여행사’라는 비즈니스 모델에 대해, 인바운드든 아웃바운드든 다시 정의를 내릴 시대가 왔다고 본다.
나는 태국 인플루언서가 클룩과의 협업을 위해 한국에 방문했다는 사실에 먼저 주목했다. 클룩은 무엇인가? 홍콩 기반의 자유여행 개별투어 플랫폼으로, 일전에 ‘여행경험 플랫폼, 여행업의 미래가 될 수 있을까’로 브런치에 소개한 바가 있다. 이 기사에 등장한 태국의 에리카를 포함한 많은 글로벌 인플루언서들이, 여행의 자유도를 보장해 주는 투어 플랫폼과 우선적으로 일한다는 건 이 바닥의 공공연한 현실이다. 타국 정부기관의 이익을 대변하는 식상한 단체 취재여행은 이제 ‘공짜라도 싫다’는 것이다. 이것이 지금의 달라진 글로벌 여행업계의 현주소다. 이 인터뷰를 잘 읽어보면, 그녀가 지적한 한국 관광의 문제점은 자유여행이 아니라 '핵노잼' 코스로만 짜여진 패키지 여행이라는 정확한 타겟을 겨누고 있다. 이것이 한국만의 문제일까? 그렇지 않다.
뷰티 인플루언서인 그녀는, 기존에 한국이 제시하는 한국관광 패턴에는 애초부터 관심이 없다. ‘한국 관광상품에는 덕수궁, 경복궁 등이 대부분. 그러나 왕궁과 절은 태국이 더 많다’라는 말과 함께 아주 중요한 이야기를 했다. ‘스스로 서울의 지도를 만든다는 생각으로 다닌다’는 것이다. 밀레니얼 세대의 관광은, 관광지와 내가 얼마나 개인적인 인터랙션을 깊게 맺을 수 있는가가 만족도의 핵심이다. 스스로 '발견'할 여지를 반드시 주어야 한다는 것이다. 그런데 한국 뿐 아니라 많은 관광선진국이 이 점을 외면한 채, 공급자의 눈높이에서 관광지를 배열한다. 자신들이 보여주고 싶은 중요도에 맞춰서 외국인에게 일정을 강요한다는 말이다. 그렇다면, ‘볼거리는 우리가 더 많다’는 태국은 과연 이 부분을 잘 이해하고 있을까?
작년에 태국이 정부 차원에서 진행했던 글로벌 관광 프로젝트 ‘태국, 6개의 감각’에 무려 전 세계 15,000명의 지원자를 뚫고 선발되어 태국에 갔지만(관련 포스팅), 10일 넘는 기간동안 불교사원 방문이나 종교 관련 체험을 거의 매일 거쳐야 했다. 불교국가로서의 태국이 아니라 ‘라이프스타일 체험’에 방점을 둔 모델여행인데도, 종교적인 의미를 가진 체험의 비중이 더 높았던 것이다. 한두 번이면 몰라도 열흘이 넘는 일정에서는, 반복되는 역사유적이나 종교 체험은 금새 형식적이고 진부해진다. 이렇게 정부 차원의 관광사업은, 항상 틀을 짜놓고 자신들이 보여주고 싶은(그 해의 관광 캠페인 슬로건과 정확히 부합하는) 여행지로만 비추어 지기를 원한다. 하물며 이러한 정책에 직접적인 영향을 받는 업계 전반과 개별 여행사 상품은, 말할 필요도 없을 것이다.
얼마 전 인도 정부의 초청으로 참석한 초호화 기차여행에서도, 한국의 대형 여행사 패키지와 거의 같은, 소위 ‘골든 트라이앵글’ 코스에 맞춰 천편일률적인 사원과 궁전같은 역사유적을 다수 방문했다. (어쩐지 기착지 관광지를 갈 때마다 하*투어 버스를 매번 마주쳤...;;) 그러나 이번 캠페인에 선발된 세계적인 여행 인플루언서들은 자유여행 경험이 풍부하며 수동적 관광에 대한 만족도가 매우 낮았다. 이들은 그 나라가 무엇을 보여주고 싶어하는지는 큰 관심이 없는데, 대체로 모든 나라는 자국의 ‘타임라인’(역사적 순서와 중요도)’에 따라 관광지를 나열하고, 지루한 가이드투어로 대부분의 시간을 때운다. 이것이 지금의 2030세대에게는 전혀 어필하지 않는다는 점을, 이 기사는 지적하는 것이다. 이것을 단순히 ‘한국은 볼 게 없다’ 정도로만 해석하면 곤란하다. 이러한 변화는 ‘여행사’라는 수동적 관광업 모델의 종말과도 깊게 연관되어 있다고, 개인적으로 오랫동안 생각해왔다.
지금의 밀레니얼 세대는 자신의 세분화된 관심사와 취향에 맞추어 여행을 스스로 디자인할 수 있는 도구(스마트기기, 정보력)가 주어진 첫 세대다. 따라서 전 세계의 모든 나라가 관광 진흥 캠페인을 진행할 때는, 밀레니얼 소비자를 선도하는 인플루언서들이 ‘각자의 지도를 그리는' 여행 전문가라는 점을 반드시 염두에 두어야 한다. 그런데 많은 나라의 관광청은 큰 비용을 들여 이들을 초청해 놓고도, ‘자, 우리가 그려놓은 지도로 다니자!’ 식으로만 일을 진행한다. 이 틀을 깨고 지금 세대의 니즈를 정확하게 읽어낸 관광 캠페인은 없을까? 있다. 잘하는 나라들의 케이스를 직접 경험해 보니, 무엇이 문제인지 더 선명하게 보인다. 이 부분을 잘 이해하는 나라들의 공통점은, '우리는 많이 준비했는데, 선택은 네가 해'로 출발한다. 이 부분은 따로 케이스 분석을 해보기로 하고.
마침 말레이시아의 유명 뷰티 인플루언서인 내 친구가, 이 달 말에 방한한다. 만약 그녀가 K-Beauty 테마를 조명하고자 한다면, 나는 그녀에게 식상한 면세점이나 찜질방 대신에 한방 화장품 만들기와 스파 체험, 한방 테마 호텔, 제주산 녹차를 테마로 한 애프터눈 티 등 전국에 숨어있는 뷰티 콘텐츠를 알려줄 것이다. 한국은 관광 콘텐츠가 부족한 게 아니라, 업계가 콘텐츠를 콘텐츠로 인식하지 못하는 지점이 더 큰 문제라고 본다. 물론, 오래된 골목과 로컬 카페를 찾아다니는 밀레니얼의 자기주도적 여행 패턴이, 기존의 여행업계가 상품화하기(통제해서 이익을 취하기) 어렵기 때문이기도 할 것이다.
문제는, 한국의 밀레니얼 세대 역시 식상한 수백만원짜리 단체여행 코스에 내 시간과 돈을 맡길 이유를 점점 더 찾지 못한다는 것이다. 대형 여행사 상품의 일정표는, 2006년 해외여행 취재기자 시절에 지면에 소개하던 그것과 전혀 달라진 게 없어서 소름이 돋을 정도다. 여행 니즈에 대한 상상력이 이토록 빈곤한데, 인바운드라고 다를까? 한국의 외국인 관광 인프라(하드웨어)는, 타국 대비 상위 수준에 도달했다고 생각한다. 오히려 전 세계의 여행자가 원하는 여행경험의 실체를, 우리의 여행업계는 제대로 이해하고 있는지를 되묻고 싶다. '부족한 볼거리'만 많이 만들기 전에 말이다. '여행=볼거리'인 시대는 이제, 끝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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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내) 천상 글쓰기보다 말하기가 좋은, 트래블+엔터테이너를 지향하는 여행강사. 기업 및 공공기관 임직원을 대상으로 '스마트 여행법' 교육 및 최고의 여행지를 선별해 소개합니다. 강사 소개 홈페이지
해외) 호텔 컬럼니스트. 매년 60일 이상 전 세계 호텔을 여행하고, 함께 일합니다. 2018년 6월 호텔여행서 신간 출간 예정. 인스타그램 @nonie21 페이스북 'nonie의 스마트여행법'