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누군가의K Sep 23. 2020

생마늘의 알싸함이 좋아지는 나이

그렇게 30대가 된다

작년 이맘때쯤이었나. 오랜만에 만난 오랜 친구와 술을 한 잔 하고 집으로 돌아가던 길에 친구가 내게 물어왔다.


(나의 어릴 적 별명을 부르며) 야 OO아, 너는 언제 나이 들었다고 느껴?


순간 갑자기 웬 나이 타령인가 싶었지만 그도 그럴 것이 이 친구는 그해에 서른이 되었던 것이다. 어찌어찌하다 학교에 생짜로 1년 일찍 입학해버린 나는 아직 아홉수였다. 나는 잠시 생각하다 대답했다.


음… 요즘엔 목욕탕에 가면 열탕이 그렇게 시원하더라?


친구는 상상도 못 한 대답이라는 듯 두 눈썹을 추켜올리다 이내 푸스스 웃었던 거 같다. 대충 무슨 말인지 알 것 같다며 본인이 나이듦을 느끼는 순간은 언제인지에 대해 이야기해준 것 같은데 기억이 나지 않는 걸 보니 취기가 올라 귀담아듣지 못했나 보다. 그 친구를 다시 만나면 여전히 일상에서 나이듦을 느끼고 있냐고, 언제 그러냐고 물어봐야겠다.


지난달에는 갑작스레 몸이 안 좋아져 병원에 갔다가 휘뚜루마뚜루 부분마취에 외과적 수술까지 받고 일주일치의 산더미 같은 약을 처방받았다. 건강이라면 자신 있었던 거 같은데 어쩌다 이리되었는가. 항생제와 위장보호제가 가득 담긴 뚱뚱한 약봉투를 물끄러미 바라보다 만 28세라고 적혀있는 내 나이에 시선이 머문다. 스무 살엔 앞에 놓인 터널이 까마득하기만 했는데 어느새 10년이 흘러버렸구나. 이제는 까마득하든 말든 꿋꿋하게 걸어 나갈 뿐이다. 까마득함을 걱정할 시간 따윈 없다. 이런 건가? 나이듦을 느낀다는 게. 지금 이 순간 그 친구가 했던 질문을 다시 받게 된다면 이렇게 대답하겠다.


음… 요즘엔 생마늘이 그렇게 맛있더라.


나이를 먹는다는 건 아무래도 이면(異面)을 발견하는 즐거움이 쌓이는 일인 것 같다. 그게 경험에 의한 통찰력에서 비롯된 것이든, 소 뒷걸음질 치다 쥐 잡은 격이든 말이다. 예전에는 보이지 않았던 것들이 보이고, 들리지 않았던 것들이 들리고, 느끼지 못했던 것들이 느껴지는 순간들이 있다. 사실 이면의 즐거움이고 뭐고 가끔은 이렇게 살아도 되는 건가 싶은 생각이 들기도 한다. 종종 스스로에게 질문한다. 너 이렇게 살아도 되니? 질책은 아니다. 그냥 생각 좀 해보자는 거지.


점심식사 도중 제육볶음을 얹은 청상추에 생마늘 편을 마저 올리며 생각한다. 우리는 끊임없이 질문해야 한다. 왜, 왜, 왜? 도대체 왜? ‘물음표살인마’가  되어도 좋다. 모든 것은 ‘?’에서 시작되므로 물음표는 소멸하지 않는다. 질문하기 위해 태어난 사람인 것처럼 삶의 이유를 끊임없이 궁금해하며 30대를 보내고 싶다. 어쩌면 우리는 그렇게 끝없이 질문하기 위해 태어난 것인지도 모른다. 부디 이 소망이 희미해지지 않기를 바라며 오늘도 질문한다. 나 지금 잘 살고 있는 걸까?



2020년 9월 낮보다 밤이 길어지기 시작한 날

언젠가부터 생마늘이 맛있어진 K가 쓰다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