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홀로 히말라야에(3) ABC 트레킹 Day1
인천공항에서 비행기를 탑승 후 짧지도 길지도 않은 시간이 흐른 끝에 카트만두에 도착했다는 기장의 안내방송이 흘러나왔다. 착륙 전 고도를 낮추는 비행기 창 너머로 유려한 산맥을 물들인 노을을 바라볼 수 있었다. 입국심사에 USIM 구매, 환전까지 마치니 생각보다 밤이 깊어져 있었다. 다음날 바로 포카라로 떠나야 했으므로 공항과 가까운 에어포트 호텔에 짐을 간단히 풀고 근처 식당에서 요기를 했다. 늦은 시간 혼밥을 하러 온 허여멀건 동북아인이 낯설었는지 식사를 하던 현지인들이 나를 흘끔흘끔 쳐다보는 게 느껴졌다. 아, 정말 낯선 땅에 왔구나. 무슨 맛인지 모를 흩날리는 쌀알의 볶음밥으로 적당히 배를 채우고 숙소로 돌아와 축구를 본다. 네팔에서도 프리미어 리그는 꿀잼이군. 영국 현지해설로 나오니 더 좋네… 혼잣말을 하다 잠에 든다.
대망의 트레킹 시작 날이다. 새벽같이 일어나 포카라행 국내선 비행기를 타러 간다. 다들 산행용 배낭을 들쳐 매고 있는 걸 보니 트레킹을 가려는 여행객이 대부분인 듯했다. 탑승 안내를 음성방송 위주로 하고 있었기 때문에 비행기를 놓치지 않기 위해 귀를 쫑긋 세우고 있어야 했다. 초조한 기다림 끝에 비행기를 탑승했다. 살면서 이렇게 작은 비행기는 처음 보는데… 왼쪽으로는 1열, 오른쪽으로는 2열로 늘어선 좌석은 우리나라 시외 고속버스 우등석보다 좁아 보였다. 승무원은 한 명. 커피, 사탕과 함께 웬 솜뭉치를 나누어 준다. 손가락 두 마디 정도 길이의 작은 솜뭉치 두 개. 이 솜뭉치는 무엇이냐는 눈빛으로 승무원을 바라보니 친절한 미소와 함께 두 귀에 꽂는 시늉을 한다. 아… 이게 귀마개라고요? 근데 이걸 왜 주시는..? 비행기의 엔진이 가열차게 돌기 시작하자마자 난 깨달았다. 이 솜뭉치가 꼭 필요하다는 사실을. 무사히 포카라에 갈 수 있을까? 폭신폭신한 솜을 귓구멍에 쑤셔 넣으며 프로펠러의 엄청난 소음을 조금이라도 줄여본다.
짧지만 다이나믹했던 비행 끝에 포카라에 도착했다. 내 신발이 땅에 닿아 마찰력을 만들어 내는 게 고마울 지경이었다. 겁이 많은 편은 아닌데 비행기를 타며 무서워하다니 확실히 새로운 경험이었다. 공항으로 나를 픽업하러 온 가이드와 함께 여행사로 향했다. 그곳에서 산행에 필요한 짐만 따로 꾸린 후 지프를 타고 트레킹 초입으로 이동한다. 길가에 거미줄처럼 얽히고설킨 전력선들이 시선에 스친다. 공중선 정비하려면 애 좀 먹겠는걸? 낯선 땅에 혼자 있자니 오지랖이 고개를 들기도 한다. 비포장도로의 꿀렁임을 느끼며 예상보다 긴 시간을 이동하니 멀미가 날 것만 같다. 현기증이 일 때쯤 트레킹 시작점인 Siwai에 도착했다. 금강산도 식후경이니 히말라야에서도 예외는 없다. 산행 초입의 식당에서 정체를 알 수 없는 소스의 스파게티를 먹으며 에너지원을 확보한다.
첫날이니 무리하지 말자는 가이드의 말에 고개를 세차게 끄덕인다. 생각보다 특별할 것 없는 산길을 천천히 올라가기 시작했다. 트레킹 내내 Slow, Slow를 강조하던 가이드는 적당한 케어와 적당한 무심함으로 나의 트레킹에 큰 도움을 주었다. 지금 생각해보면 참 운이 좋았던 것 같다. 듬직한 가이드와 일정한 거리를 둔 채로 잘 닦여있는 흙길과 계단을 오르며 산행이 시작되었음을 실감한다. 느린 걸음으로 다섯 시간쯤 걸었을까, 첫째 날 묵기로 한 숙소인 Jhinu danda 롯지에 도착했다. 높은 곳으로 올라가면 따뜻한 물이 귀하다는 이야기에 헐레벌떡 뜨거운 물로 샤워를 한다.
말끔하게 씻고 나와 달달한 커피와 함께 네팔 음식인 달밧을 먹는다. 아무래도 산 속이라 그런지 입맛을 돋우는 맛은 아니었지만 몸이 고단하니 음식이 달다. 아직은 저지대라 희미하게나마 와이파이가 잡히기도 한다. 한국으로 사진을 몇 장 보내며 무사함을 알린다. 사진 한 장 보내는 데 몇 분씩 걸렸지만 나는 휴가 중이고 남는 건 시간이다. 여유롭게 사진을 다 보내고는 침낭 속으로 몸을 구겨 넣는다. 내일은 어떤 일들이 날 기다리고 있을까. 내일이 기대되는 기분은 참 오랜만이었다. 여기 오길 잘한 것 같다는 생각을 하며 잠에 든다.
2020년 9월 조금 들뜬 금요일
낯선 땅으로 등산을 가고픈 K가 쓰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