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홀로 히말라야에(2) Que Sera Sera
사전 지식 없이 무작정 비행기 티켓을 끊어버린 나는 히말라야 트레킹에 대한 정보를 수집하기 시작했다. 젊음의 패기인지 번아웃 직전의 케세라세라 정신 덕분인지는 몰라도 어떻게든 다 잘 될 것만 같은 기분이었다. 네팔 땅을 밟기까지 내게 주어진 시간은 한 달여 남짓, 나는 스스로와 두 가지 약속을 했다.
1. 무엇보다도 안전과 건강이 중요하니 이를 위해 만반의 준비를 할 것
2. 웬만한 문제는 바른 정신과 건강한 몸, 적당한 돈으로 해결할 수 있으니 호연지기의 마음으로 여행할 것
이 약속을 지키기 위해 나는 ① 날짜별 산행 계획 수립, ② 네팔 국내선 비행기 티켓 구매, ③ 현지 가이드 섭외 및 여행자 보험 가입을 했고 ④식단 조절과 더불어 평소보다 높은 강도로 운동을 하기 시작했다.
① 산행 계획 수립하기
네팔에서 보낼 수 있는 시간은 딱 8일. 가장 효율적이고 알찬 산행을 위해 ABC 트레킹 맵과 다양한 코스를 파악했다. 그중에서 가장 직관적으로 코스를 이해할 수 있었던 맵을 저장 해두었는데 아래와 같다.
좌측의 코스처럼 Nayapul에서 시계방향으로 움직여 Poon Hill 전망대를 거친 후 A.B.C를 찍고 Siwai 방면으로 내려오는 것이 ABC 트레킹의 정석 같았다. 이왕이면 나도 이 코스로 다녀오고 싶었지만 시간의 장벽에 부딪혀 Poon Hill을 과감히 포기하기로 했다. 나는 그림판을 열어 왼쪽의 그림을 수정하여 오른쪽의 그림으로 만들었다. 산행 포인트에 비해 단출한 6일간의 산행 일정을 확정하게 된 것이다.
② 네팔 국내선 비행기 티켓 구매하기
히말라야로 가기 위해서는 '포카라'라는 도시로 이동해야 한다는 것을 뒤늦게 알게 되었다. 현지 국내선을 이용하는 것이 가장 이상적인 방법이었으므로 나는 카트만두↔포카라 왕복 항공권을 구매하였다. 일정 상 카트만두 관광은 여의치 않아 보였고 닥터 스트레인지가 헤매던 카트만두 거리를 떠올리며 네팔행 비행기를 끊었던 게 무색해지는 순간이었다. 하지만 나의 목표는 ABC를 등정하는 것이었기 때문에 상심하지 않기로 했다.
③ 현지 가이드 섭외 및 여행자 보험 가입
혼자서 여행을 많이 다녀본 편이었지만, 낯선 땅의 깊은 산속에서 몇 날 며칠을 홀로 무사히 보낼 수 있을지는 미지수였다. 이건 자신감의 문제가 아니었다. 오로지 산행만을 위한 여행이다 보니 여러 가지 요소를 고려해 볼 필요가 있었다. 고산병이나 급격한 날씨 변화에 대한 대처와 컨디션에 따른 일정 조정 등 전문가의 도움이 필요하다는 결론을 내렸다.
나는 한 포털 사이트의 히말라야 트레킹 커뮤니티에 가입을 하고, 그곳에서 얻은 정보를 바탕으로 현지 가이드 전문 여행사에 컨택하여 가이드를 섭외하였다. 짐을 들어주고 길을 안내해주는 풀 패키지 같은 상품도 있었으나, 어쩐지 내 짐은 내가 들어야겠다는 생각이 강하게 들어 길만 안내해주는 상품으로 예약했다. 고산병이나 산행 중 발생할 수 있는 상해 등을 대비하여 국제 여행자 보험도 들었다. 히말라야와 같이 높은 산에서는 산행 도중 고산증세가 심각하게 온 산행객을 헬기를 이용해 저지대로 긴급히 이송한다. 고지대로 갈수록 헬리콥터의 소리를 심심치 않게 들을 수 있다고 했고 나 또한 ABC에서 그 소리를 들었다. 그것도 아주 가까이에서.
④ 식단 조절 & 운동 강도 높이기
평소 웨이트 트레이닝을 즐겨하던 나는 나름대로 체력이 좋은 편이라고 자신하고 있었다. 그렇지만 한 번도 장기 산행을 해 본 경험이 없었기에 무사등반을 위한 체력 보강에 돌입했다. 일반식을 다이어트 식단으로 대체하고, 야근 후에도 짬을 내어 운동을 했다. 평소보다 빠른 속도로, 높은 무게로, 잦은 빈도로 운동을 했고 조금씩 탄탄한 몸이 되는 걸 느낄 수 있었다.
일련의 과정을 거친 후 나는 어느 정도 확신에 찼다. 이만하면 떠날 준비가 되었다는 것을.
2020년 9월
3년 전 설렘을 떠올리며 K가 쓰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