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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누군가의K Sep 20. 2020

무작정에도 작전은 필요해

나홀로 히말라야에(2) Que Sera Sera

사전 지식 없이 무작정 비행기 티켓을 끊어버린 나는 히말라야 트레킹에 대한 정보를 수집하기 시작했다. 젊음의 패기인지 번아웃 직전의 케세라세라 정신 덕분인지는 몰라도 어떻게든 다 잘 될 것만 같은 기분이었다. 네팔 땅을 밟기까지 내게 주어진 시간은 한 달여 남짓, 나는 스스로와 두 가지 약속을 했다.


1. 무엇보다도 안전과 건강이 중요하니 이를 위해 만반의 준비를 할 것

2. 웬만한 문제는 바른 정신과 건강한 몸, 적당한 돈으로 해결할 수 있으니 호연지기의 마음으로 여행할 것


이 약속을 지키기 위해 나는 ① 날짜별 산행 계획 수립, ② 네팔 국내선 비행기 티켓 구매, ③ 현지 가이드 섭외 및 여행자 보험 가입을 했고 ④식단 조절과 더불어 평소보다 높은 강도로 운동을 하기 시작했다.




① 산행 계획 수립하기

네팔에서 보낼 수 있는 시간은 딱 8일. 가장 효율적이고 알찬 산행을 위해 ABC 트레킹 맵과 다양한 코스를 파악했다. 그중에서 가장 직관적으로 코스를 이해할 수 있었던 맵을 저장 해두었는데 아래와 같다.  

시간의 여유가 된다면 가볼 법한 A.B.C 완전정복 코스(좌) / 나의 여건에 맞게 계획한 A.B.C 단기 등반 코스(우)

좌측의 코스처럼 Nayapul에서 시계방향으로 움직여 Poon Hill 전망대를 거친 후 A.B.C를 찍고 Siwai 방면으로 내려오는 것이 ABC 트레킹의 정석 같았다. 이왕이면 나도 이 코스로 다녀오고 싶었지만 시간의 장벽에 부딪혀 Poon Hill을 과감히 포기하기로 했다. 나는 그림판을 열어 왼쪽의 그림을 수정하여 오른쪽의 그림으로 만들었다. 산행 포인트에 비해 단출한 6일간의 산행 일정을 확정하게 된 것이다.


② 네팔 국내선 비행기 티켓 구매하기

히말라야로 가기 위해서는 '포카라'라는 도시로 이동해야 한다는 것을 뒤늦게 알게 되었다. 현지 국내선을 이용하는 것이 가장 이상적인 방법이었으므로 나는 카트만두↔포카라 왕복 항공권을 구매하였다. 일정 상 카트만두 관광은 여의치 않아 보였고 닥터 스트레인지가 헤매던 카트만두 거리를 떠올리며 네팔행 비행기를 끊었던 게 무색해지는 순간이었다. 하지만 나의 목표는 ABC를 등정하는 것이었기 때문에 상심하지 않기로 했다.


③ 현지 가이드 섭외 및 여행자 보험 가입

혼자서 여행을 많이 다녀본 편이었지만, 낯선 땅의 깊은 산속에서 몇 날 며칠을 홀로 무사히 보낼 수 있을지는 미지수였다. 이건 자신감의 문제가 아니었다. 오로지 산행만을 위한 여행이다 보니 여러 가지 요소를 고려해 볼 필요가 있었다. 고산병이나 급격한 날씨 변화에 대한 대처와 컨디션에 따른 일정 조정 등 전문가의 도움이 필요하다는 결론을 내렸다.

나는 한 포털 사이트의 히말라야 트레킹 커뮤니티에 가입을 하고, 그곳에서 얻은 정보를 바탕으로 현지 가이드 전문 여행사에 컨택하여 가이드를 섭외하였다. 짐을 들어주고 길을 안내해주는 풀 패키지 같은 상품도 있었으나, 어쩐지 내 짐은 내가 들어야겠다는 생각이 강하게 들어 길만 안내해주는 상품으로 예약했다. 고산병이나 산행 중 발생할 수 있는 상해 등을 대비하여 국제 여행자 보험도 들었다. 히말라야와 같이 높은 산에서는 산행 도중 고산증세가 심각하게 온 산행객을 헬기를 이용해 저지대로 긴급히 이송한다. 고지대로 갈수록 헬리콥터의 소리를 심심치 않게 들을 수 있다고 했고 나 또한 ABC에서 그 소리를 들었다. 그것도 아주 가까이에서.


④ 식단 조절 & 운동 강도 높이기

평소 웨이트 트레이닝을 즐겨하던 나는 나름대로 체력이 좋은 편이라고 자신하고 있었다. 그렇지만 한 번도 장기 산행을 해 본 경험이 없었기에 무사등반을 위한 체력 보강에 돌입했다. 일반식을 다이어트 식단으로 대체하고, 야근 후에도 짬을 내어 운동을 했다. 평소보다 빠른 속도로, 높은 무게로, 잦은 빈도로 운동을 했고 조금씩 탄탄한 몸이 되는 걸 느낄 수 있었다.

당시 나의 다이어트 식단. 다시 돌아가서 저 식단으로 버티라면 난 못 한다.



일련의 과정을 거친 후 나는 어느 정도 확신에 찼다. 이만하면 떠날 준비가 되었다는 것을.



2020년 9월

3년 전 설렘을 떠올리며 K가 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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