딸기적금 들던 그 버릇 어디 안 가지
원래는 '겨울이야, 소주를 먹자'의 제목으로 시작하는 글을 쓰고 싶었다. 초록빛의 소주 병목에 엠보싱이 자글자글한 싸구려 냅킨을 둘러 목도리를 만들어주고 뜨끈한 국물 앞에서 겨울을 기념하고 싶었달까. 종착지가 아니라 과정이 되는 목표를 세우고 차근차근 하나씩 통과하는 삶을 살자고 다짐을 해보아도 한 고비 넘기면 늘 이런 식이다. 헤맬 여지가 없는 이정표와 이정표 사이에 홀로 서서 고장 난 로봇처럼 좌향좌, 우향우를 반복하고 있는 기분이다. 실로 오랜만에 느껴보는 불안이다.
결국 '겨울이야, 딸기를 먹자'의 제목으로 글을 시작해버렸으니 딸기 이야기를 해봐야겠다. 빨간 바탕의 노란 씨앗 땡땡이를 한 입 깨물면 그 속에 드러나는 가지런한 하얀 과육의 속살. 차갑고 달큼하고 새콤한 딸기는 겨우내 작지만 아주 확실한 행복이다. 학생 때는 이 작은 행복을 사수하기 위해 '딸기적금'을 들기도 했었다. 실제로 적금통장을 개설한 것은 아니고, 용돈을 조금씩 아껴 예금통장에 딸기를 구입하기 위한 가용예산을 확보하는 행위를 스스로 그렇게 불렀다. 참 이렇게 목적지향적인 인간인 주제에 목표를 그저 과정처럼 여기고 싶어 하는 아이러니에 빠져있다.
지금의 이 불안과 아이러니 속에서 그 사람을 떠올린다. 주체할 수 없이 이는 마음의 소용돌이를 더 이상 내 힘으로는 다스릴 수 없다는 걸 깨닫는다. 그 사람을 어릴 적 '딸기적금'처럼 마음속에 하나씩 담다 보니 어느새 가슴속이 온통 그 사람으로 가득하다. 이제 공들여 쌓아 온 마음을 조심스럽게 꺼내 보이고 싶다. 그 사람의 상태메시지처럼 조금씩, 천천히 그리고 무엇보다도 잘 해내고 싶다. 할 수 있다는 자신감 뒤로 의구심의 그림자가 때때로 드리워지는 것은 나의 부족함이겠지. 부족함을 끌어안은 채로 당신의 손을 잡고 같은 방향으로 걸어가고 싶은 건 나의 욕심일까?
당신에게 SF소설 속 매듭 묶기와 사랑의 알고리즘을 이야기하고 점심으로 나온 팥죽에 설탕을 뿌리다 당신을 생각했음을 말한다. 된장을 끓이다 냄비를 태울 뻔했다는 이야기를 하면서도 그 이유가 당신 생각을 하느라 상념에 잠겨서였다고는 말하지 못 한다. 당신에게 브루노 메이저와 FKJ와 9와 숫자들을 보내면서도 이소라와 디어클라우드와 심규선은 보내지 못 한다. 못 할 말도, 못 보낼 음악도 없는 사이가 되고 싶은 이 마음을 당신은 알까? 몰라도 괜찮다. 내가 이제 용기를 낼 참이니까.
2020년 크리스마스 주간에
당신과 한없이 가까워지고 싶은 K가 쓰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