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래 빨갱이 잡는 거 방해하는 간나들은 무조건 빨갱이로 간주하갔어.”
박종철 치사 사건을 다룬 영화 ‘1987’에서 박처원 대공처장(김윤식 배우)이 했던 말이다. 80년대 민주화 운동에 참여하다 체포돼 고문당하던 이들에게는 그야말로 저승사자 같은 존재였다. 영화에서는 그가 친일 악덕 지주로 몰린 부모가 죽창에 찔려 살해당하던 모습을 숨어서 훔쳐보아야 했던 당시를 ‘지옥이었다’고 토로하는 장면도 나온다.
이 장면은 제주 4.3 당시 섬 전체를 공포로 몰아넣었던 서북청년단의 근원과도 연결이 된다. 이북에서 월남한 그들이 왜 그렇게 악랄했는지를 설명해주는 단초인 것이다.
제주올레 1코스를 걷는 외지인 여행자들은 대체로 성산일출봉 주변의 아름다움에만 한껏 취하다 지날 뿐이다. 이왕이면 멋진 경관 이면에 깃들어 있는 아픈 역사의 일들도 알고 지나면 좋겠다.
성산포항과 일출봉이 속한 성산리는 80여 년 전만 해도 하나의 외로운 섬이었다. 성산리 북쪽은 1994년 한도교가 준공되어 오조리와 연결되었고, 고성리에서 성산리로 진입하는 터진목은 오랜 세월 모래가 퇴적되면서 1940년대 초에 석축을 쌓아 육지인 고성리와 지금처럼 이어졌다. 올레 코스를 따라 걷다 보면 원래 섬이었음을 눈치채지 못하지만 지도를 펴놓고 도면으로 보다 보면 감이 온다.
고성리와 이어지는 좁은 길목은 ‘터진목’이라 불린다. 매립되기 전 ‘바다끼리 좁게 터진 길목’이라서 붙여진 이름이, 육지로 변한 이후에도 지명은 그대로이다. 성산일출봉을 지나 해안선으로 접어들면 곧바로 터진목이다. 올레 1코스 종점인 광치기해변이 멀리 눈앞에 보이는 지점이다. 제주올레를 걷기 시작하는 첫 코스 종착지에서 제주 4.3의 어두운 역사와 만난다. 일출봉과 해안선이 어우러진 정경이 너무나 아름다운 위치다. 역사는 모른 채하고 자연경관만 보며 지나쳐도 그만이긴 하다.
일제하에서 친일로 영화를 누리던 자들이 해방된 이북에선 부역죄로 처단되거나 재산이 몰수되었다. 남한과는 정반대 상황이었다. 그런 친일분자의 자식들이 38선을 넘어 남쪽으로 탈출해왔다. 남한 정권의 비호 아래 그들은 ‘서북청년단’을 조직했고 ‘빨갱이 잡아 죽인다’는 극렬 우익 집단으로 변했다.
4.3 사건 진압 차 제주로 파견된 서북청년, 서청단원들에게 섬은 한풀이 장터였고, 섬사람들 대부분은 ‘잡아 죽여야 할 빨갱이들’이었다. 당시의 제주에선 ‘西北’이라 쓰인 완장은 곧 저승사자의 징표였다. 완장 찬 육지 사내들이 멀리서 보이기만 해도 섬사람들은 오금이 저렸다. 온몸이 와들와들 떨리다 굳어버리는 무시무시한 존재들이었던 것이다.
이곳 성산리는 당시 서청단원들로 구성된 진압 중대가 주둔하며 학살을 자행했던 곳으로 악명이 높다. 터진목 좁은 길로만 육지와 연결된 섬이나 다름없었기에 소위 폭도 또는 무장대들이 쉽게 공격해올 수 없다는 지리적 여건이 진압대 주둔지로선 최적의 조건이 된 것이다. 마을의 한 초등학교 교실은 잡혀 온 주민들이 처형되기 전까지 감금되었던 유치장이었고 터진목은 그 학살의 현장이었다. 현재 성산리 K마트 뒤에 있는 공터가 그 역사의 현장이다. 카카오지도에는 ‘서북청년회 주둔지·성산동국민학교 옛터’로 표기되어 있다.
이곳에는 일제강점기 때의 주정공장과 원료창고가 4.3 때까지 폐건물로 남아 있었는데 약 100여 명의 서북청년단으로 구성된 서청특별중대가 1년 정도 이곳에 주둔하며 악행을 많이 저질렀다. 그들은 국민학교 건물에서 숙식을 해결하면서 울타리 너머에 있었던 주정공장 감자창고에서 주민들을 취조하고 고문하고 수감하였다.
‘이곳을 기억하는 옛 어른들은 한결같이 혀를 내둘렀습니다. 매일 같이 고문에 못 이겨 질러대는 비명소리를 귀 틀어막으며 들어야 했고, 형장으로 끌려 나가는 주민들이 울부짖는 모습을 일상적으로 봐왔기 때문이죠. 한번 잡혀가면 살아 돌아오기가 어려웠다고 해요. 혹독하게 고문당하다가는 대부분 총살됐는데 그 장소는 성산일출봉 주변의 터진목과 우뭇개동산이었대요.’
성산일출봉에서 세계자연유산해설사로 활동하고 있는 한원택 전 성산리장의 이야기다. 물론 본인의 경험담이 아니고, 어릴 적부터 어른들로부터 귀가 따갑도록 들어온 이야기들이다.
사람이 사람일 수 없었던 그 아수라의 지옥 같은 상황이 몇몇 생존자들 입을 통하여 기록으로 남겨졌다. 올레 1코스를 거의 다 걸어 성산읍 4·3희생자 446인의 이름이 새겨진 위령비 앞에 선 올레꾼들은 잠시 당혹해질 수 있다. 일출봉과 터진목 그리고 광치기해변으로 이어지는 자연의 아름다움과는 너무나 동떨어진 이면(裏面)이기 때문이다.
몸과 마음의 평온을 얻으며 힐링하려고 올레길을 걷고 있는데, 시작부터 어두운 역사와 만난다는 건 편치 않은 일이다. 또 한편으론, 아름다움 이면에 숨겨진 역사의 아픔도 함께 들여다볼 수 있어야 속 깊은 성찰로 이어지는 여행이 될 수 있을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