메리 스튜어트의 재혼 상대인 헨리 스튜어트 단리는 그녀와 사촌지간이자 3살 연하였다. 갓 20세인 단리의 훤칠한 외모가 그녀로 하여금 불 같은 사랑에 빠지게 하였다. 잉글랜드에서 망명 와 있던 단리는 그러나 겉만 번지르할 뿐 속 깊은 남편감은 아니었다. 향락을 추구하고 우유부단하면서 허영심만 강했다.
메리 여왕이 다른 가톨릭 국가의 군주와 재혼해 다시 해외로 나가 살기를 은근히 기대했던 스코틀랜드 귀족들은 이번 결혼이 못마땅하다. 여왕의 남편 단리가 그동안 자신들이 누려온 권력을 약화시킬 가능성이 커진 것이다. 잉글랜드 여왕 엘리자베스는 다른 이유로 이번 결혼 소식에 몹시 긴장하게 된다. 메리에 이어 남편 단리 역시 잉글랜드 왕위 계승권이 있는 혈통이기에 자신의 왕위가 위협받을 소지가 커지기 때문이다.
그러나 견제파들의 그런 우려는 기우에 불과했다. 멋진 외모에 눈이 멀었던 여왕의 사랑은 결혼과 함께 금세 식어버린 것이다. 철없는 단리 경은 자기에게도 공동 통치권을 달라며 무례하게 여왕에게 떼쓰고 투정을 부렸으나 이미 정나미가 떨어진 메리는 이를 단호하게 거부하면서 부부 사이는 점점 냉랭해진다.
그 와중에 여왕의 임신 사실이 알려졌다. 시중에선 뱃속 아기의 아빠가 단리 경이 아니라, 메리의 비서인 다비드 리치오일 거라고 수군거렸다. 사실이 아닌 이런 괴이한 소문의 온상지는 친 잉글랜드파인 개신교 귀족들이었다. 여왕 부부를 이간질해 국정 주도권을 뺏어오기 위함이다. 그러나 어리석은 단리 경은 질투에 눈이 먼 상태에서 개신교 귀족들의 꼬임에 빠져 비서 리치오를 잔인하게 살해해 버린다. 그것도 아내 메리의 바로 눈앞에서다. 일종의 쿠데타를 일으킨 셈이다.
여왕이지만 무기력한 메리는 곧이어 감금되고, 단리가 개신교 귀족들과 함께 기존 세력을 몰아내며 왕권을 휘두르기 시작한다. 공포에 질려 갇혀 있던 메리는 다행스럽게도 얼마 후 구세주를 만난다. 모친 때부터 충성을 바쳐온 보스웰 백작이 메리를 탈출시킨 것이다. 여왕과 백작은 기존 세력들로 이뤄진 대규모 군사를 동원하여 마침내 에든버러 성에서 개신교 귀족들을 몰아내고 정권을 재탈환하는 데 성공한다. 그리고 메리는 안정된 상태에서 후계자 아들을 출산했으니, 그가 바로 훗날 잉글랜드 스튜어트 왕조의 시조가 되는 제임스 6세다.
이런 과정에서 여왕은 8살 연상인 보스웰 백작의 매력에 끌려 내연 관계를 맺게 된다. 3살 연하인 애송이 남편 단리와는 비할 데 없이 노련하고 믿음직스러웠던 것이다. 여왕과 신하가 은밀한 관계를 이어가던 어느 날, 런던 외곽의 시골에서 병으로 요양 중이던 단리 경이 폭발 사고로 즉사하는 사고가 발생한다. 여왕의 엄연한 남편이자 왕세자의 부친의 급작스런 사고사는 세간의 많은 의혹을 산다. 그리고 3개월 후 여왕은 세 번째 결혼식을 올리며 보스웰 백작을 세 번째 남편으로 맞아들인다.
시중 여론은 들끓기 시작한다. 보스웰 백작이 여왕과 결혼하려고 단리 경을 사고로 가장해 죽였고 여왕도 이 사실을 알고 있다고 사람들은 믿어 의심치 않는 분위기였다. 여왕이 부도덕하다는 평판에 더해 불길한 요부라며 손가락질하는 여론까지 팽배해졌다. 세 번째 결혼으로 메리 여왕의 권위는 이미 바닥까지 떨어졌다. 에든버러 성 안에서조차 여왕을 폐위시켜야 한다는 여론이 들끓는다. 급기야는 호시탐탐 이런 순간을 노려오던 개신교 귀족들이 대거 반란을 일으켜 곳곳에서 여왕의 군대와 내전이 벌어진다.
그러나 대세는 이미 기울어 있었다. 민심을 잃은 여왕의 군대는 패배를 거듭했다. 결국 메리는 반란군에게 백기 투항해 갇히는 몸이 되었고, 남편 보스웰 백작도 싸움에서 패배해 도망치다가 붙잡혀 비참한 최후를 맞는다. 이로서 메리에겐 남편 셋을 연이어 죽게 한 요부라는 불길한 이미지까지 덧씌워졌다. 심지어 메리는 임신하고 있던 백작의 쌍둥이 아기마저 옥중에서 유산되는 비운을 맞는다.
결국 메리는 아들에게 왕위를 물려준다는 양위 각서에 강제로 서명할 수밖에 없었다. 이렇게 재집권에 성공한 반란 세력이 고작 한 살에 불과한 제임스 6세를 즉위시키면서 스코틀랜드는 기존 가톨릭 체제에서 잉글랜드와 유사한 개신교 왕국으로 탈바꿈된다. 태어날 때부터 금수저를 물고 세상에 나온 메리 스튜어트, 갓난 아들에게 왕의 자리를 빼앗기고 거의 25년 만에 여왕의 자리에서 내려왔다. 도저히 자신의 처지와 주변 상황을 인정할 수가 없었다.
유배지에 감금됐던 메리는 끊임없이 재기를 꿈꾸다가 두 번의 시도 끝에 드디어 탈출에 성공한다. 물론 주변의 도움 덕택이다. 옛 시절을 그리워하며 여전히 여왕을 지지하는 가톨릭 세력들이 메리 주변에 모여들어 왕위 탈환을 위해 거병했지만 결국은 실패하고 만다. 1568년 5월 어머니와 아들의 싸움이라 할 수 있는 랭사이드 전투에서 메리의 가톨릭 세력은 아들 제임스 6세의 개신교 군세에 크게 패배하고 결국은 쫓기는 신세가 된다.
이제 스코틀랜드 땅에는 더 이상 메리가 설 자리는 없었다. 결국 메리는 마지막 도피처를 잉글랜드로 결정하곤 망명 요청을 하게 된다. 껄끄럽진 했지만 그래도 엘리자베스 여왕이 집안 혈육인 자신을 무정하게 내치진 않을 거라는 막연한 계산이 있었다.
(마지막 5편에 이어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