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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영철 Jun 01. 2024

영국사 숙명의 라이벌, 엘리자베스와 메리 여왕 3편

스코틀랜드 여왕 메리의 운명은 이제 어떻게 될까? 

잉글랜드 왕 헨리 8세를 피해 6살 때 어머니의 친정인 프랑스 왕실로 보내졌다. 10년 만에 유럽 최고의 신붓감으로 성장해 프랑스 왕세자비가 되었고, 이듬해 왕비로 등극했지만 영광은 찰나였다. 가장 든든한 후원자였던 시아버지 앙리 2세가 사고로 죽고, 남편 프랑수아 2세마저 프랑스 왕에 즉위한 지 1년 만에 병으로 사망해 버린 것이다. 


18세 나이에 과부가 된 메리는 더구나 6개월 전 어머니 마리 드 기즈까지 잃은 터였다. 자신을 대신해 고향 스코틀랜드를 통치해 왔던 어머니의 죽음으로 메리는 이제 이곳 프랑스는 물론 고향에서까지도 믿고 의지할 그 누구도 없는, 세상천지 고아가 되었다. 게다가 남편과 아들의 잇단 죽음으로 프랑스 왕실의 최고 권력자가 된 시어머니 카트린 드 메디시스에게 며느리 메리는 예전부터 질투의 대상이요 눈엣가시였다. 


과부가 된 며느리 거처를 궁정이 아닌 파리 외곽으로 옮겨버리고, 메리를 따르던 측근들도 모두 궁정에서 쫓아낸다. 그럼에도 여전히 스코틀랜드의 군주이면서 미녀로 소문난 10대 후반의 어린 과부였기에 유럽 여러 가톨릭 군주들이 결혼 희망을 밝혀 왔지만 시어머니 카트린은 며느리의 재혼을 원천봉쇄해 버렸다. 이렇게 의지할 사람 하나 없이 프랑스에서 정말 고립된 메리는 이듬해 결국은 본국 스코틀랜드로 돌아갈 수밖에 없게 된다. 


에든버러 캐슬
에든버러 캐슬


메리보다 9살 많은 엘리자베스는 당시 잉글랜드 왕에 즉위한 지 2년이 되었지만 왕권은 여전히 불안한 위치였다. 국내외 가톨릭 구교 세력들이 헨리 8세 누나의 손녀인 스코틀랜드 여왕 메리를 잉글랜드 왕위 서열 상위 혈통으로 인정하면서 엘리자베스 여왕을 무시하고 있었기 때문이다. 


프랑스를 떠나 스코틀랜드로 돌아갈 메리는 잉글랜드 해상을 건너야 하기에 엘리자베스 여왕에게 안전을 위한 호송권을 부탁한다. 이에 엘리자베스는 자신을 잉글랜드 적통 왕으로 메리가 인정해 주는 걸 조건으로 내걸지만 메리는 받아들이지 않았기에 호송권 없이 불안한 항해길에 오른다. 이번 일로 엘리자베스 여왕의 머릿속엔 그동안 막연하게 라이벌로만 느껴오던 조카 메리가 현실적으로 매우 신경 쓰이는 존재로 부각이 된다. 


한편 프랑스 북부 칼레항에서 북해 바다를 건너 5일 만에 에든버러에 도착한 메리는 참담한 고국의 현실에 눈물을 쏟았다. 여섯 살 때 떠나 13년 만에 돌아왔으니 어릴 적 기억도 가물가물했지만 화려한 프랑스와 비교해 고국은 너무도 초라했다. 지리적으로도 원래 척박한 땅인데다 그동안 계속돼 온 잉글랜드의 침략으로 워낙 황폐해져 있었고, 에든버러의 문명 수준 또한 최고급 파리와는 너무도 뒤떨어져 있었던 것이다. 


영화 '메리, 퀸 오브 스코틀랜드(2018년)' 속 메리 여왕
영화 '메리, 퀸 오브 스코틀랜드(2018년)' 속 메리 여왕


여왕 메리에겐 그러나 더 큰 난제가 기다리고 있었다. 바로 종교의 문제, 신교와 구교의 대립이었다. 30여 년 전 헨리 8세는 로마 교황청과 결별하여 잉글랜드를 개신교의 나라로 만들었다. 첫 부인 캐서린과 이혼하고 엘리자베스의 모친 엔 불린과 결혼하기 위해서였다. 프랑스와 스페인 등 유럽 주요국이 로마 가톨릭을 신봉했으나, 잉글랜드만은 종교개혁을 통해 구교를 배척하고 신교를 뿌리내려 왔고, 이는 인접국 아일랜드와 스코틀랜드까지 빠르게 파급되어 왔다. 


엘리자베스는 아버지 헨리 8세가 심어 놓은 신교의 뿌리를 더 안정되게 다지려 했고, 잉글랜드에 남아 있는 구교 세력들은 이런 엘리자베스의 왕권을 인정하지 않으려 들었다. 메리가 맞닥트린 고국 스코틀랜드의 상황은 정반대였다. 원래는 구교인 가톨릭이 주류였으나 그동안 강대국 잉글랜드의 영향을 받아 종교개혁이 이뤄졌고 신교 세력이 이미 주류가 되어 있었다. 


신교의 수장 격인 존 녹스는 갓  귀국한 어린 여왕에게 개신교로의 개종을 압박하지만 메리는 가톨릭으로 남겠다고 선언하면서 신교 세력의 집단적 도전에 직면한다. 어릴 적 파리로 보내진 후 온실 속 화초처럼 성장해 프랑스 왕비까지 올랐다가 돌아온 메리이다. 여왕이란 허울뿐이지 스코틀랜드 왕실에 측근이나 세력이라곤 전혀 없어 입지가 매우 약했다. 거기에 10대 여성으로서의 외로움까지 더해지며 재혼을 갈망하게 되었다. 든든한 남편을 두고 함께 대처해 간다면 당연히 왕권도 강화할 수 있을 거라고 생각한 것이다. 


이즈음 런던의 엘리자베스가 우려하는 건 메리가 유럽의 강력한 가톨릭 군주와 재혼하여 스코틀랜드가 다시 구교의 나라로 되돌려지는 상황이었다. 이에 엘리자베스는 자신의 측근인 로버트 더들리를 메리의 남편감으로 적극 추천해 준다. 친족인 메리에 대한 자신의 우애와 관대함을 대외적으로 과시하려는 제스처이기도 했다. 외모도 혈통도 자신보다 메리가 우위라고 수군대는 항간의 소문을  엘리자베스는 민감하게 의식했기에 메리를 자신의 영향권 안에 두는 것이 절실히 필요했다. 


그러나 메리는 이 추천을 매우 불쾌하게 여기며 단칼에 거절한다. 당사자인 로버트 더들리는 엘리자베스 여왕의 옛 연인으로 시중에 소문이 나 있었기 때문이다. 그리곤 메리는 잉글랜드 왕족의 일원인 세 살 연하 헨리 스튜어트 단리를 남편감으로 선택해 재혼에 골인한다. 결국 이 결혼은 스코틀랜드 여왕 메리의 불행이 시작되는 출발점이 되어버렸다. 


(4편에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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