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색의 영역으로 돌아간 예술
사카모토 류이치는 2023년 3월 28일 세상을 떠났다. 살아 있는 동안 수많은 곡을 쓰고 다양한 활동을 한 것은 알고 있었지만 그의 책을 읽으며 그 모든 게 새삼스러웠다. <나는 앞으로 몇 번의 보름달을 볼 수 있을까>는 사카모토 류이치가 세상을 떠나기 전 연재한 글들과 일기를 묶은 책이다.
제목의 유래는 아래와 같다.
사카모토 류이치는 생전에 많은 영화음악을 만들었다. 마지막 황제로 베르나르도 베르톨루치와 우정을 쌓게 된 사카모토 류이치는 그 이후로도 BB의 영화 음악을 자주 맡았다. 그중의 하나가 마지막 사랑(원제 The sheltering sky)이다.
영화 마지막 사랑은 미국의 작가 폴 볼스의 소설을 원작으로 한다.
영화의 마지막에 원작자 폴 볼스가 등장해 나지막이 이런 말을 합니다. "인간은 자신의 죽음을 예측하지 못하고, 인생을 마르지 않는 샘이라고 생각한다. 하지만 세상 모든 일은 고작 몇 차례 일어날까 말까다. 자신의 삶을 좌우했다고 생각할 정도로 소중한 어린 시절의 기억조차 앞으로 몇 번이나 떠올릴 수 있을지 모른다. 많아야 네다섯번 정도겠지. 앞으로 몇 번이나 더 보름달을 바라볼 수 있을까? 기껏해야 스무 번 정도 아닐까. 그러나 사람들은 기회가 무한하다고 여긴다."
사카모토 류이치는 암 재발 진단을 받고 병원에 입원 중 섬망증세를 겪는다. 그 와중에 폴 볼스의 글 중 일부를 되뇌었다고 한다- "나는 앞으로 몇 번의 보름달을 볼 수 있을까"
이 책을 알게 된 계기는 인스타 피드에서 사카모토 류이치의 글과 함께 올라온 낡은 피아노 사진 때문이었다. 사카모토 류이치는 낡디 낡은, 나무로 제작된 피아노를 그의 집 마당에 두고 피아노가 비를 맞고 바람을 맞고 햇빛을 받으며 자연으로 돌아가는 걸 느끼고 있었다.
피아노를 바라보며 그는 생각했을 것이다. 본인의 고통보다도 주변의 고통이 더 클 것이라고. 그래서 입 밖으로 낼 수 없었지만 하루하루 쇠약해지는 자신을 바래져가는 피아노에 투영하며 자연으로 돌아간다는 것의 의미를 찾아보려 했을 것이라 생각한다. 이 에피소드는 이 책의 일부다.
책을 읽는 중에는 별생각 없었다. 이렇게도 생각하는구나, 이런 사람이구나, 병 중에 힘들었겠다 - 이런 생각들을 하며 책을 읽었다. 하지만 이상하게도 페이지를 넘기면 넘길수록 그가 하고자 한 말과 그가 하고자 했던 것, 그가 이루어낸 것들, 이루고자 했던 것들을 나지막이 적어낸 그의 글은 슬픔이나 감동으로 정의하기 어려운 아주 미묘한 여운이 남았다.
이 책을 읽으며 예술에 대해 생각했다. 모두가 남발하는, 모두에 의해서 남발되는 예술이란 단어.
그 정의는 아래와 같다.
독특한 표현 양식에 의하여 의식적으로 아름다움을 창조해 내는 활동이라는 뜻으로, 인간의 정신적. 육체적 활동을 빛깔, 모양, 소리, 글 등에 의하여 아름답게 표현하는 일
다른 언어로도 그 정의가 크게 다르지는 않다.
4월에 들어서면서는 'incomplete'라는 프로젝트를 시작했습니다. 브렉퍼스트 클럽의 멤버인 로리 앤더슨, 아르투 린제이를 포함해 총 열한 팀의 뮤지션에게 연락을 해 각각의 팀들과 음악을 만들었습니다. 그 곡을 담은 영상을 유튜브에서 순차적으로 공개했죠. 코로나 사태 초기에는 모두가 지금껏 경험하지 못한 기묘한 시간 감각을 맛보았을 것입니다. 그때까지 쉴 새 없이 움직이던 사회가 갑자기 멈춰버린 셈이니까요. 하지만 분명 그 감각은 사람마다 조금씩 달랐겠죠. 그렇듯 미묘한 차이가 있는 개개인의 감각을 끌고 와 음악으로 기록하고 싶다는 생각이었습니다. 과연 이 생활의 종착지가 어디인지, 언제까지 계속될지 알 수 없는 상황. 이 시간은 컴플리트(완료)되지 않는다는 생각을 담아 프로젝트명을 지었습니다. 코로나가 전 세계 공통으로 일어난 현상인 만큼 최대한 다양한 지역의 뮤지션이 참여하길 바랐고, 중국의 고금 연주자 우나와 이라크의 우드(아랍권에서 사용되는 현악기) 연주자 키얌 알라미 등도 함께해 주었습니다.
사카모토 류이치는 예술 그 자체로 봐도 될 것 같다. 마치 예술을 지니고 태어난 사람 같다 - 그가 투병 중에 했던 활동을 단조롭게 얘기한 것에 지나지 않는 몇 개의 문장으로 이루어진 문단을 읽다가 든 생각이다.
그 시대와 사회가 가장 필요로 하는 것을 여러 형태로 가공하여 그때를 함께 살아가는 사람들과 공명하기 위한 것 - 결국 예술과 예술가의 역할은 그러할 것이다. 그렇다고 지나치게 공명을 추구하다가는 느끼해지거나 작위적이 되겠지만.
사카모토 류이치는 살 날이 얼마 안 남았을 인지하고 그의 장례식에서 쓸 서른세 곡을 직접 골라 목록을 만들었다. 그가 "듣고" 싶었던 음악들 또는 "들려주고" 싶었던 음악들. 목록을 읽다 보면 그의 음악이 보이는 듯하다. 그가 보이는 듯하다.
사카모토 류이치의 장례식을 위한 서른세 곡의 플레이리스트를 반복해서 들었다. 첫 곡은 그가 함께 활동하기도 한 Alva noto의 Haliod Xerrox Copy3이다. 단조로운 전자음의 짧은 파동 사이로 매미 소리가 들리는 듯하기도 하고 바람 소리가 들리는 것 같기도 하다. 서른세 번째 곡은 Laurel Halo의 Breath다. 첫곡과 끝곡은 그 파동의 운韻이 잘 맞는다.
그는 서른세 곡의 많은 부분을 그가 존경했던 드뷔시와 라벨, 그리고 바흐의 소리로 채웠다.
빛을 포개고 또 포개다 보면 무색을 향하게 되는 것처럼 사카모토 류이치가 그의 삶에서 소리를 포개고 포갬으로써 추구하던 것은 결국 무색의 삶이었는가- 생각해 보게 된다.
+ 사실은 <나는 앞으로 몇 번의 보름달을 볼 수 있을까>라는 책의 제목이 마음에 걸렸다. 달을 자주 바라보는 편인데 그때마다 온갖 생각을 하곤 한다. 그 생각들이 불러오는 감정들을 돌처럼 딱딱하게 만든 마음속 한 구석에 감춰놓곤 했는데, 책의 제목을 처음 봤을 때 그 돌의 일부가 깨진 것 같았다.
+ 마지막 사랑 The sheltering sky는 영화도, 원작도 아직 보지 못했지만 꼭 보고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