모텔은 가성비, 호텔은 럭셔리? 같은 숙박시설인데 왜 다르게 불릴까?
비가 억수같이 쏟아지는 밤이었다.
지방 어딘가에 화보 촬영 답사를 갔다가 정신을 차리고 보니 밤 9시가 넘었다.
금방 끝날 줄 알았는데, 더 좋은 곳을 찾느라 해가 떨어지는 줄도 몰랐다.
나참, 촬영에 이렇게 진심이라니. 어떤 일이든 허투루 하는 법이 없다.
숙소를 예약해두지 않은 게 화근이었다. 비가 쏟아져 길을 헤매다 더 늦어졌고, 피곤함은 눈꺼풀을 무겁게 만들었다. 어떻게 할까? 서울로 갈까? 어차피 늦었으니, 여기서 자고 바로 출근을 할까? 와이퍼가 쉴 새 없이 창을 훔쳤다. 절로 한숨이 나왔다.
그러던 차에 도로 옆으로 커다란 네온사인이 보였다. ‘퀸즈 모텔’이라는 붉은빛 글자가 빗속에서 희미하게 흔들리고 있었다. 그 옆에는 “그냥 저기서 잘까?” 조수석에 앉아 있던 영상 감독이자 친구가 말했다. 바로 옆에는 ‘호텔 Q’라는 간판이 보였다. 뭐지. 아무리 봐도 모텔처럼 생겼는데. 저건 모텔일까. 호텔일까. 호텔의 탈을 쓴 모텔일까?
잠시 고민했다. 모텔? 뭔가 낯설었다. 남자 둘이 모텔을? 비에 젖은 남자 둘이서 문을 열면, 사장님이 이상하게 생각하지는 않을까? 홍콩영화 누아르 느낌이 나려나. 주윤발처럼 성냥을 입에 물어야 하나. 음, 고급 호텔이라면 좀 다를까? 근데 생각해 보면 그 차이를 분명하게 설명할 수도 없었다. “근데 말이야. 호텔이랑 모텔, 뭐가 다르지?” 나는 핸들을 잡은 채 중얼거렸다. 친구는 피식 웃으며 대답했다.
“호텔은 로비가 있잖아.”
“그게 다야?”
“뭐… 좀 더 고급지고?”
“모텔도 요즘은 깔끔한 데 많던데?”
우리는 한동안 침묵했다. 사실 호텔과 모텔의 차이를 설명하려면 단순한 ‘비싼 곳 vs 싼 곳’ 이상의 이야기가 필요했다. 왜 어떤 곳은 호텔이라고 부르고, 어떤 곳은 모텔이라고 부를까? 그리고 요즘 모텔들은 왜 호텔을 닮아가고 있을까?
우리는 결국 ‘퀸즈 모텔’로 차를 돌렸다. ‘호텔 Q’는 왠지 더 비쌀 것 같았거든. 문을 열고 들어가 보니, 생각보다 아늑한 공간이었다. 나는 문득 궁금해졌다. 이곳은 왜 ‘호텔’이 아니라 ‘모텔’일까?
우리 주변에도 호텔과 모텔의 차이를 정확히 아는 사람은 많지 않다.
호텔은 고급스럽고, 모텔은 저렴한 이미지라는 정도?
하지만 시대가 바뀌면서 모텔도 호텔 못지않은 시설을 갖추고, 호텔도 다양한 등급이 생겨
그 경계가 점점 모호해지고 있다.
그렇다면, 호텔과 모텔은 정확히 무엇이 다를까?
호텔은 쉬는 곳이고 모텔은 하는 곳이라는 인식은 틀렸다.
단순한 가격 차이뿐 아니라, 역사적 배경과 서비스 방식, 그리고 목적까지 깊이 들어가 보면 재미있는 이야기들이 숨어 있다.
호텔 별의 의미
1829년, 미국 보스턴에서 객실 안에 화장실, 도어록, 프런트 데스크 호출기가 있고 코스 음식을 제공하는 최초의 호텔이 문을 열었다. 이후 산업혁명과 함께 증기선과 증기기관차를 타고 여행하는 사람이 늘면서 호텔은 본격적으로 발전했다. 우리나라의 호텔은 문화체육관광부 관광진흥법을 따른다. 등급은 별의 개수로 나뉜다. 최고 등급은 5성급으로 2022년 기준 한국의 5성급 호텔은 총 56개가 있다.
모텔의 시작
모텔은 미국의 여행자용 숙소 모터리스트 호텔(Motorist Hotel)에서 시작했다. 땅이 넓은 미국은 도시 간 이동에 며칠이 걸리기 때문에 휴게소 개념의 숙소를 따로 만든 것이다. 한국의 모텔은 여관이 이름을 바꾸는 과정에서 생겼다. 호텔과 달리 모텔은 보건복지부 공중위생관리법을 적용한다. 객실별로 샤워실과 환기를 위한 창문이 있어야 하고 침구류와 수건은 사용할 때마다 세탁한다는 최소한의 위생 규칙이 따른다. 공중위생관리법에서는 모텔과 여관 등 숙박업소 등급을 따로 나누지 않고 모두 숙박업으로 친다.
호텔의 로비
호텔은 로비가 크고 넓다. 직원이 프런트에 나와 있고 투숙객이 로비에 앉아 쉬기도 한다. 모텔의 프런트에서 볼 수 있는 건 카드를 받기 위해 내민 직원의 손 정도. 그마저도 없는 무인텔도 있다. 모텔에는 로비라 부를 공간이 없어 쉬고 있는 사람도 보기 어렵다.
모텔의 어메니티
어메니티라 하면 호텔을 먼저 떠올리겠지만, 종류는 모텔이 더 많다. 세면도구, 입욕제, 음료수는 물론이고 여성 세정제, 러브젤, 콘돔도 무료로 쓸 수 있다. 요즘 모텔은 인터넷이 연결된 PC, 케이블 TV, OTT 서비스, 휴대폰 충전기까지 기본으로 갖춰져 있다. 숙박 앱의 카테고리를 살펴보면 더 많은 모텔의 시설을 알 수 있다. 3D TV, 스타일러, 홈시어터, 플레이스테이션, 당구대, 스팀 사우나, 안마 의자 등. 무엇보다 모텔에는 조명과 온도를 비롯한 모든 기기를 한 손으로 조종할 수 있는 올인원 리모컨이 있다.
호텔의 부대시설
별이 많은 호텔일수록 부대시설이 다양하다. 5성급 호텔은 30실 이상의 객실, 외국어 사용 가능 직원, 대형 연회 시설, 24시간 룸서비스, 비즈니스센터, 국제회의장, 피트니스센터, 보육 시설, 수영장을 갖춘다. 직영과 임대를 포함한 세 개의 레스토랑, 바, 카페가 필수이며 여기에 대지면적의 20%는 꼭 조경을 해야 한다.
모텔의 테마
호텔에 비해 모텔은 제약이 별로 없다. 각자가 마음껏 상상력을 펼치고 개성을 자랑한다. 모텔의 테마에 따라 사방이 거울이기도 하고 유리 천장을 통해 하늘이 보이기도 한다. 방에 노천탕, 스크린 골프, 노래방이 있을 수도 있고 공주 방이나 교실로 꾸며 놓은 곳도 있다.
대실로 모텔 활용도 높이기
호텔과 모텔의 가장 큰 차이점 중 하나는 바로 대실이다. 대실은 숙박을 하지 않고 낮 서너 시간 동안만 방을 빌리는 시스템이다. 효율적으로 모텔 대실을 하려면 숙박 앱의 ‘무한대실’에 주목할 것. 무한대실은 대실과 비슷한 가격에 최대 12시간까지 공간을 사용할 수 있다. 무한대실 가능 여부는 ‘야놀자’, ‘여기 어때’, ‘데일리호텔’ 같은 앱의 이벤트 탭과 업체 설명에서 확인할 수 있다. 좋은 방을 차지하려면 대실이 열리는 오전 10시에 바로 예약하는 게 좋다. 모텔에도 호텔과 같은 모닝콜 서비스가 있다. 원치 않는 추가요금을 피할 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