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청산되지 않은 역사의 책임

조윤민, 『두 얼굴의 조선사』, 2016

by 달리
군자의 얼굴을 한 야만의 오백 년


두 얼굴의 조선사의 부제는 '군자의 얼굴을 한 야만의 오백 년'이다. 부제에서 느껴지는 그대로, 이 책은 조선 왕조 오백 년의 역사를 매우 비판적인 시각에서 풀어낸다.


저자는 한국사 연구자들의 기존 견해에 의문을 제기한다. 우리가 흔히 들어온 대로라면 조선은 인과 의를 숭상하며 예와 도리를 중시했던 선비의 나라다. 물론 국가적 규모의 시련도 수차례 찾아왔지만, 그것은 특정 시점에 불행하게도 관료들의 부패가 임계점을 넘어섰거나 잔혹한 외세가 침탈했기 때문이었다. 조선은 백성과 함께 그 모든 시련을 헤쳐온 의로운 나라였다. 정말일까. 이것이 정말 조선 왕조 오백 년을 관통하는 역사적 판단의 최선인가. 역사를 대하는 태도에서 그것이 틀림없이 과거에 일어난 사실인지 아닌지를 묻는 것이 적절하지 않다고 해도, 최소한 그것이 역사적 진실의 범위에 포함될 수 있는지를 묻는 것은 여전히 중요할 것이다. 조선이 의로운 나라라는 해석은 역사적 진실의 범위에 부합하는가.


이 책은 그렇지 않다고 답한다. 조선의 유학자와 관료들이 한 목소리로 근엄하게 드높였던 의는 그들의 말과 글 속에 명분을 실어주는 유용한 도구였을 뿐이다. 신분제 조선 사회를 떠받들었던 유교 논리는 그들 지배세력(선비, 양반, 사림, 사대부, 사족, 사류, 유림 등 무어라 불러도 본질은 같은)이 공유하는 이익의 토대였다. 다시 말해 조선이라는 나라를 굴러가게 만든 원동력은 '인'과 '의'가 아니었다. 그것은 백성에 대한 '착취'와 '수탈'이었고, 그 모든 악덕을 미덕으로 포장하여 국가적으로 실행하게 만든, 가증스러운 '욕망'의 민낯이다.


이렇게 국가 시스템을 바라보는 큰 틀이 달라지면 세부사항에 대한 해석도 달라질 수밖에 없다. 수차례 찾아온 국가적 규모의 재난은, 특정 시점에 몇 가지 요건이 형성되어 일어난 불행이 아니었다. 그것은 언제라도 일어날 수 있는, 어쩌면 반드시 일어나야만 했던 재난이었다. 국정 과제를 논할 때는 '민심이 천심'이라 해놓고는 사적인 영역에서 마음껏 백성을 유린하는 관료들의 나라. 불행은 만성적이었다. 왕실의 사초 여기저기에 백성들의 고통스러운 삶에 대한 기록이 등장하는 것은 당연했고, 백성들이 살만한 시기는 오히려 찾아보기도 어려울 만큼 짧았다는 것이 이 책의 저자가 내보인 시각이다. 그야말로 야만의 오백 년이었다.


어떻게 이런 나라가 오백 년이나 지속될 수 있었나. 동일 혈통의 왕조국가가 이렇게 오랜 기간 존속한 사례는 찾아보기 어렵다. 그것도 수없이 거듭된 실정에 사실상 아무런 책임도 지지 않으면서 말이다. 이 책은 이 물음에 대한 대답을 신분제, 토지와 경제, 관료제도, 법제도, 사대외교, 학교와 교육, 유교화 등 일곱 가지 범주에서 설득력 있게 서술한다. 물론 이 범주들은 독립적이지 않으며 모든 문제는 중첩되어있다. 대외적으로는 소국 의식과 열등감으로 점철되어 있으며, 대내적으로는 제 나라 백성들을 표적 삼아 억압과 착취 시스템을 대물림하기 위해 무던히도 애쓰던 나라. 작은 땅덩어리보다도 더 작고 초라했던 나라.


이 나라에 대한 저자의 관점이 단순히 과거에 대한 빼어난 통찰로만 여겨지지 않는 이유는, 저자도 밝혔듯이 그것이 우리의 현재까지 이어지며 갈등을 끊임없이 재생산하고 있기 때문이다. 이 땅에서 잘못된 역사를 이끈 책임은 단 한 번도 청산되지 않았다. 청산되지 않은 역사의 책임은 또다시 국민이 지고 있다. 언제나 그래 왔듯이 앞으로도 그렇고 그렇게 흘러갈 것인가. 이 책의 에필로그 일부를 인용하며 글을 맺는다.


'중국, 일본, 러시아 그리고 미국……. 외세의 힘으로 외세를 막아보려던 조선 지배층의 국가 존립 정책은 여지없이 무너졌다. 앨리스 일행이 서울을 떠난 지 두 달이 채 되기 전에 조선은 일본에 외교권을 박탈당하는 을사늑약을 체결한다. 일본은 서울에 통감부를 설치하고 조선의 식민지 시대를 준비했다. 사대에 의지한 조선의 외교 전략은 미국에 대한 일방적인 흠모가 좌절되면서 사실상 끝을 보았다. 외교권 박탈 뒤에도 서구 열강에 조선의 급박한 국운을 내보였지만 힘에 의한 세계 정치의 판세는 이미 굳어진 뒤였다.
대국에 기대어 안보와 안전의 틀을 마련하고 이를 지배정책으로 활용한 조선 지배층의 통치 전략은 마침내 그 효력을 다했다. 이를 알아챈 지배세력 일부는 새로운 사대정책을 과감하게 실행에 옮겼다. 이들은 백성을 버리고 다른 나라에 자신과 가족의 안녕을 구걸했다. 주권을 강대국에 아예 넘겨버리고 그 강국의 세력 안에서 안위를 구하자는 전략이었다. 이어, 조선의 지배층인 양반과 사림의 외피를 벗고 싶어 한 다수의 이들도 나라가 몰락하자 일본이라는 또 다른 세력이 점령한 사회의 특권층으로 재빨리 옮겨 앉았다. 그들의 욕망과 이익은 그러한 사회질서에서도 충분히 보장될 터였다. 이후 식민체제라 불리는 사회 질서가 재빨리 자리를 잡았다. 식민지화는 조선 지배층의 또 다른 통치 방식이자 지배의 전략이었다. 조선이라는 나라의 이름은 지워졌지만 그 나라를 통치한 양반의 자손들은, 조선 사림의 후예들은 그렇게 해서 몰락하지 않고 존속했다.
위계와 특권이 보장되는 나라로서의 조선은 그래서 지금도 그 속내를 거두지 않는다. 단상에서의 외침과 달리 그러한 조선을 속 깊이 품고 있는 양반과 사림 후예들의 통치 방식과 지배 전략도 여전히 힘을 잃지 않고 있다. 그 조선은 아직 끝나지 않았고 그 후예들은 지속되고 있다.'

조윤민, <두 얼굴의 조선사>, 글항아리, 2016, p346-p34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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