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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달리 Apr 28. 2020

인간이 다른 동물과 가장 다른 점

한윤섭, 『해리엇』, 문학동네, 2011

* 쪽수: 156쪽



어린이는 대체로 우화를 좋아합니다. 우화는 동물의 삶을 독자의 눈높이에 맞추어 새롭고 흥미롭게 보여주지요. 그런데 이 책은 의인화된 동물들이 마냥 행복하게 사는 이야기가 아닙니다. 생존이 걸린 동물들의 절박한 관점을 담고 있는 이야기죠.


원숭이 찰리는 숲에서 엄마와 함께 있다가 사람들에게 잡혀 공원 관리소로 오게 됩니다. 숲으로 돌아가고 싶어 하는 찰리를 지켜보던 흰 줄 원숭이는 어차피 그 숲도 사람이 만들어 놓은 공원이었다는 사실을 알려주죠. 그걸 증명이라도 하듯 흰 줄 원숭이는 자신의 목에 인간이 걸어놓은 쇠줄을 스스로 풀었다가 다시 채웁니다. 어떻게 해도 인간의 손에서 벗어날 수 없다면 차라리 그들에게 묶여 보호받는 삶이 더 자유로울 수 있다는 겁니다. 내 것인 줄 알았던 자유가 누군가에 의해 철저히 통제되고 있었다는 불편한 진실을 이야기의 초반에 깨닫게 되는 설정은 우리에게 익숙한 영화 <매트릭스>를 연상시키기도 하죠.


그러다 찰리에게 테드라는 소년의 가족이 찾아옵니다. 찰리를 마음에 들어한 테드는 제 아빠를 설득해 찰리를 집으로 데려가죠. 찰리는 테드의 집에서 1년의 시간을 함께 보내며 인간의 생활패턴에 익숙해집니다. 그렇게 1년이 지나고 테드가 학교로 떠나자 테드의 부모님은 찰리를 동물원에 보냅니다. 동물은 동물들끼리 살아야 한다면서요. 하지만 찰리에게는 이제 원숭이의 동물적 습성이랄 게 별로 남아있지 않죠. 찰리가 동물원 생활에 적응하는 것은 말처럼 쉬운 일이 아닙니다.


그렇게 보내진 동물원에는 한 무리의 개코원숭이들이 있는데, 인간과 함께 자란 찰리를 배신자라 여기며 괴롭힙니다. 특히 우두머리 스미스는 가능한 모든 폭력을 동원해 찰리를 못살게 굴지요. 그리고 그때 해리엇이 나타납니다. 해리엇은 175살 먹은 갈라파고스 거북입니다.


여기까지가 이야기의 1부라고 볼 수 있는데, 읽다 보면 자연스럽게 이런 생각이 들죠. 왜 이 책의 제목은 '찰리'가 아니라 '해리엇'일까. 이야기의 중심에 찰리가 있고 서사의 흐름도 찰리의 감정선을 따라가고 있는데, 그때까지 별 비중도 없는 해리엇이 책의 제목을 차지하는 건 좀 이상하잖아요. 바로 그 지점이 이 책에서 쉬었다 갈 포인트입니다. 잠시 책을 덮고 왜 이 이야기의 제목이 해리엇일지, 해리엇은 어떤 인물일지 나름대로 짐작해보는 겁니다.


해리엇은 동물원의 최고령자입니다. 다른 동물들의 할아버지, 할머니까지도 모두 해리엇의 친구였을 만큼 이 곳에서 긴 시간을 보냈기 때문에 동물원에 대해 누구보다 잘 알죠. 온화한 해리엇은 찰리의 판단과 행동에 묵묵히 지지를 보내며 동물원 생활에 잘 적응할 수 있도록 도움을 줍니다. 해리엇은 좋은 친구, 좋은 부모님, 좋은 선생님의 가장 모범적인 표본이에요. 찰리가 용기를 내어 스스로 어려운 일을 쳐나갈 수 있게 하는 동력은 근본적으로 해리엇에게서 나오죠.


책의 후반부에서는 이제 살 날이 얼마 남지 않은 해리엇이 자신의 이야기를 들려줍니다. 해리엇이 해주는 이야기를 끝까지 따라가 보면, 이 책의 제목이 왜 '해리엇'일 수밖에 없는지 알 수 있어요. 그리고 사람과 다른 동물의 가장 큰 차이점이 무엇인지도 알 수 있죠.


그들은 수영을 못하면서도 바다에 떠 있었고, 빠르지 않으면서도 앞에 가는 동물을 잡을 수 있었고, 자신들보다 크고 힘이 센 동물들을 쉽게 들어 올리고, 한쪽 손에는 늘 무언가를 들고 상대를 위협했다. 그러나 사람이 동물과 가장 달랐던 점은 누군가에게 고통을 주면서도 웃을 수 있다는 사실이었다. (108-109쪽)


사람이 다른 동물들과 가장 다른 점이 뭘까요. 많은 어린이 인간에게 뚜렷한 과학적 성취를 겨준 유전적 우위 요소를 말합니다. 직립보행, 고등사고력, 도구 사용 능력 같은 것들이죠. 그런데 이 책은 위에 인용한 대목에서 알 수 있듯 전혀 다른 관점을 보여줍니다. 인간이 자체적으로 수립한 기준에 의해 우월하다고 검증된 요소들이 정작 동물들의 눈에 얼마나 폭력적으로 보일 수 있는지 깨닫게 해주죠.


갈라파고스 거북은 찰스 다윈이 그 유명한 『종의 기원』을 쓰는 계기를 제공한 동물로 알려져 있습니다. 현대 생물학의 가장 중요한 토대라 할만한 진화론을 체계화한 대작이죠. 1859년 발표 당시에는 폭발적인 논쟁을 불러일으켰지만, 과학계든 종교계든 이제 와서 다윈의 업적을 놓고 다투는 건 별 의미가 없습니다. 각자 제 영역에서 갈 길을 갈 뿐이죠. 『해리엇』도 마찬가지예요. 이 책은 다윈과 비글호에 관한 이야기를 담고 있지만 종차별, 동물학대 등과 같은 문제를 논쟁의 영역으로 끌고 오지는 않습니다. 그저 인간의 빛나는 성취가 다른 동물들에게 재앙으로 여겨질 수 있음을 묵묵히 보여줄 뿐이죠. 이야기 속 해리엇의 온화한 태도는, 사실 이 문제를 다루는 작가의 태도이기도 합니다.


결말부에서 찰리는 죽어가는 해리엇을 바다로 데려다주겠다고 합니다. 가까운 곳에 바다가 있다면서 말이죠. 그 바다가 해리엇을 그리운 고향, 아름다운 갈라파고스로 돌려보내줄 수 있을까요. 읽고 나면 참 먹먹한 감동이 찾아오는 이야기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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