끼니때 숟가락만 들어도 저절로 죄책감이 따라붙던 시절, 남의 나라 골방에서 시인은 자신이 글로 사치를 누리고 있는 것은 아닌지 끊임없이 의심하고 괴로워했다. 지금 우리는 어떤가. 인생은 여전히 녹록지 않지만, 그렇다고 우리 모두 윤동주의 마음으로 뼈를 깎듯 글을 쓰자고 말할 수는 없다. 세계는 달라졌고 그 안에서 개인이 누리는 가능성의 범위도 극적으로 확장되었다. 우리가 세계에 대해 갖는 죄책감은 윤동주의 그것과 같을 수 없다. 그러니 시인이 자기 세계에 자기의 시를 남겼듯, 우리는 우리의 글을 써야 한다.
거창하게 시작했지만 하려는 이야기는 단순하다. 글은 쉽게 써도 좋다는 것. 여기서 쉽다는 건 읽는 사람이 아니라 쓰는 사람의 관점에서 본 기준이다. 쉽게 쓰인 글에 부끄러움을 느끼던 윤동주에게 감히 반기를 들려는 건 아니지만, 시대가 달라진 만큼 가치관의 역전도 흔한 일이 됐으므로 그리 무리한 시도는 아니다. 요즘처럼 아무나 글을 쓰는 시대에는 일반적으로 글쓰기 행위가 사치의 수단이 되긴 어렵다. 쉽게 쓰인 글에 부러 죄책감을 갖지 않아도 된다는 뜻이다. 그럼 이 시대에 쉽게 쓰인 글은 어떤 의미와 가치를 지닐까.
일단 계속 쓰게 만들어준다. 이게 무슨 시대적 가치를 대변하는 건 아니지만, 누구나 글을 쓸 수 있는 요즘이라 더 의미심장하다. 처음 글을 쓰기 시작할 때 잔뜩 힘을 주고 논리를 과시하는 글들을 쓴 적이 있다. 내 논리의 견고함에 스스로 만족하며 어서 누가 보고 감탄해주기를 기대했다. 지금 봐도 그리 형편없는 글은 아닌데 왠지 읽기가 어색하고 부담스럽다. 다른 사람들에게도 그렇게 느껴졌을 것이다. 아니나 다를까 비슷한 글을 몇 번 쓰다가 내가 먼저 지쳐버렸다. 들이는 노력에 비해 기대한 만큼의 반응이 없었기 때문이다. 지금은 너무 힘주어 쓰지 않으려고 한다. 내가 지치지 않는 것도 중요하지만, 읽는 사람에게도 그 편이 더 자연스럽게 느껴질 것 같다.
물 흐르는 대로, 생각 닿는 대로 술술 쓰다 보니 독자의 반응이 많지 않아도 그저 덤덤하다. 열광적인 반응을 끌어내는 작가들을 보면서 부럽지 않은 건 아니다. 다만 '내 글도 이만큼 훌륭한데 왜 알아보는 사람이 없을까'하는 억울함은 생기지 않는다. 취미로 보낸 시간의 결과물이 내 글 목록의 맨 위에 올라와 있으면 그것으로 충분하다. 시간이 헛되이 흘러가버린 건 아니라는 증거가 적어도 내 눈에는 뚜렷이 보이니까. 글을 쉽게 쓰면 사람이 쉽게 소박해진다.
그렇다고 어렵게 쓰인 글의 가치를 부정할 마음은 없다. 글쓰기의 종류에 따라―특히 직업으로서의 글쓰기에는― 일정량의 고뇌와 스트레스가 더해지는 것이 당연하기 때문이다. 콧노래를 흥얼거리며 술술 써야만 좋은 글이 나온다는 게 아니라 자기 역량보다 더 뛰어난 글을 써내려고 처음부터 쩔쩔맬 이유가 없다는 뜻이다. 가볍고 산뜻한 글이 어울리는 날에는, 고민 없이 그런 글을 써보는 것도 좋은 선택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