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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달리 Jan 25. 2021

졸업증명서를 떼며 생각한 것

대학교 졸업증명서를 발급받기 위해 정부24 민원포털에 접속했다. 간단한 본인인증 절차 후에 증명서를 수령할 기관을 선택하도록 되어 있었다. 수령 가능 기관에 거주 지역 교육지원청이 있어서 선택했다. 집에서 차로 5분 거리였다. 발급 신청을 마치고 교육지원청에 방문했다.


교육지원청 민원실에 가서 신청한 증명서를 발급해달라고 하니 담당자가 '정부24를 통해 신청한 졸업증명서는 발급이 불가능하다'고 한다. 왜냐고 물어보니 시스템이 미비하다고. 아니 그럼 정부24에 교부 기관으로 등록이 되어 있으면 안 되잖아. 시스템 여건 상 발급이 불가능한데 왜 수령 가능 기관에 잡힌 건지 이해할 수가 없어서 멍한 표정으로 물었다. "이게 왜 이렇게 되어 있는 거죠?" 담당자가 아무렇지 않다는 듯이 답한다. "정부24에 저희 교육지원청이 교부 기관으로 나오긴 하는데, 저희 쪽에서는 시스템이 준비가 안 돼 있거든요."


그러니까 알고 있었다는 뜻이다. 구조 어딘가에 하자가 있어서 애꿎은 민원인이 피해를 볼 수 있다는 걸 알고 있었지만 대수롭지 않게 여긴 것이다. 무슨 생각이었을지 얼추 짐작은 간다. 졸업증명 관련 교육청 민원건수 자체가 거의 없으니 별 문제 아니라고 생각하고 내버려 둔 것이다. 정부24 고객센터에 전화해서 사정을 설명했더니 지금까지 이런 문제제기가 처음이었단다. 한숨이 나왔다.


"저희가 해당 기관 요청을 받고 교부 기관으로 등록한 건 맞지만, 아직까지 등록 해지 요청이 없었거든요. 그런데 이걸 저희 쪽에서 임의로 해지해라 마라 할 문제는 또 아니어서... 죄송하지만 급한 일 아니면 다른 기관에서 발급받으시는 게 어떨까요?"

"저야 뭐 다른 기관에서 발급받으면 그만이긴 한데, 시스템 상 문제가 있어서 민원인이 피해를 봤으면 앞으로 어떻게 개선하겠다는 말이라도 있어야 되는 거 아닌가요?"

"근데 이런 증명서 발급 관련 민원이 워낙 적고, 이런 식으로 문제가 제기된 적도 이번이 처음이라서요."


명백히 잘못되어 민원인 피해가 발생했지만, 공공기관 간의 절차와 도리를 지켜야 하기 때문에 해결이 지연된다는 뜻이다. 한두 건의 민원에서 피해가 발생하는 정도는 그리 시급한 문제가 아니기 때문에 일단 이대로 가겠다는 뜻이다. 사소한 문제에 어울리는 무성의한 대응. 하긴, 민원인 입장에서 다른 방법이 없는 것도 아니지 않은가.


이런 안일한 업무처리는 분별없이 절차와 계통만을 떠받드는 공공기관이나 관료조직에서 흔히 보이는데, 그중에서도 자기 업무가 전체적으로 어떤 흐름 위에 있는지 이해하지 못하는 실무자들에게서 더욱 두드러진다. 이들의 일처리에 대한 불신은 결국 '윗사람' 불러오라는 호통으로 이어진다. 나는 이게 고객이나 민원인 입장에서 매우 당연하고 합리적인 요구라고 생각한다.


일은 절대 이런 식으로 하면 안 된다. 잘못이 확실하면 먼저 사과를 해야 하고, 다음에는 개선에 대한 약속이 뒤따라야 한다. 발생한 문제에 대해 잘 모를 경우 알아보고 반드시 조치해야 한다. 문제의 책임 소재가 불분명할 경우 해당 분야 담당자나 전문가를 통해 조치할 것을 약속해야 한다. 그게 상식이다.


마음은 굴뚝같았지만 '윗사람'을 호출하지는 못했다. 참으려고 참은 게 아니라, 너무 비상식적인 대응에 할 말을 잃었기 때문이다. 때때로 예측을 크게 벗어나는 현실은 ―그게 아주 사소한 일상이라고 해도― 정말이지 곤혹스럽기 그지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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