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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달리 Jul 27. 2017

연인, 인연을 선물한 사람

눈이 높았던 게 아니라, 좋은 눈을 가졌던 거겠죠.

제 생각에 연인이란, 가장 친한 친구입니다. 소소한 일상을 공유하며 여러 가지 감정을 솔직하게 교류할 수 있는 사람이죠. 좋은 인연을 맺으려면 좋은 사람을 알아보는 좋은 눈을 가지고 있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어떤 사람들은 우리나라 남자들이, 혹은 여자들이 연인을 고르는 기준이 너무 높다고 말합니다. 흔히 눈이 높다고 하죠. 그런데 사실 이건 조금 이상한 말이에요. 왜 그런지 제 경우를 예로 들어 설명해보겠습니다.


제가 바라보는 관점에서, 저의 여자 친구는 아주 예쁘고 몸매도 좋습니다. 한마디로 외모가 빼어나죠. 좋은 직업을 가졌고, 능력도 있습니다. 직장에서 얼마나 인정을 받는지는 자세히 모르겠습니다만, 제가 볼 때는 직업적 전문성이 탁월하고 소신도 뚜렷해 보입니다. 그리고 무언가를 끊임없이 배우려 하고, 배우는 일을 즐기는 듯 보입니다. 사적인 시간을 주로 게으름 부리는 데에만 써왔던 제가 무언가를 열심히 배우러 다니게 된 것은 여자 친구의 공이 큽니다. 또 유머감각도 뛰어나고, 화술에 능하죠. (화술에 능하다는 것은 말재간을 부린다는 의미라기보다는 대화할 때 기본적인 예의를 지키며 상대를 설득할 줄 안다는 뜻입니다. 저는 사실 '말을 잘한다'는 것이, 말을 막힘없이 하는 능력이라기보다 하지 말아야 할 말을 끝까지 하지 않는 능력이라고 생각합니다. 여기서도 그런 의미로 보시면 될 것 같습니다.)


팔불출이란 소리 들을 것을 각오하고서 여자 친구가 가진 여러 장점들을 봤는데요. 사실 제대로 쓰자면 한참 더 길게 써야 할 테지만 글의 흐름을 유지하는 차원에서 이 정도만 하겠습니다. 이제 앞서 말한, '우리나라 사람들, 연인 고르는 기준이 너무 높은 것 아니냐'는 말이 왜 이상한지 설명해야 하니까요.


제 기준에서는 여자 친구가 가지고 있는 저런 수많은 장점들이, 이제 일종의 고정값이 되었습니다. 만약 제가 저런 기준들을 미리 정해놓고 수많은 연인 후보를 걸러내서 지금의 여자 친구를 선택하게 되었다면 모르겠지만, 저는 그러지 않았거든요. 오랜 기간 마음 깊이 좋아하고, 어렵사리(정말 어렵게) 고백하고, 오케이 사인을 받아내기까지 몇 날 며칠을 마음앓이하는 동안 저는 저런 기준들을 머릿속에 담아본 적이 없습니다. 그저 너무나도 좋아하는 사람이 저런 장점들을 가지고 있었을 뿐이에요.


물론 애초에 저런 장점들을 가지고 있었으니 매력을 느낀 거라고 할 수도 있겠죠. 사실일 겁니다. 그렇다고 해도 제가 여자를 볼 때 결코 양보할 수 없는 어떤 하한선이나 마지노선을 설정해둔 건 아니에요. 여러 기준을 정해놓고 어느 하나라도 엇나가는 것이 있는지 유심히 관찰해본 적도 물론 없습니다. 그런데도 저런 수많은 장점을 가지고 있더군요. 이게 뭘 의미할까요.


결국 좋아하는 게 먼저라는 겁니다. 이상형에 대한 이런저런 기준이나 희망사항들은 사실 큰 의미를 갖지 않는다고 봅니다. 물론 이상형을 가질 수 있고, 사전에 여러 기준을 설정하는 것도 개인의 자유겠죠. 하지만 도저히 저항할 수 없을 정도로 강렬하게 끌리는 사람을 만나면 그 기준들은 완전히 초기화됩니다. 그리고 지금 사랑하는 사람을 기준으로 삼아 다시 설정되죠. 이 과정은 거의 자동으로 진행됩니다. 그래서 어느 날 정신 차리고 보니 '내 여자 친구가 이렇게 많은 장점을 가지고 있었구나', '난 참 행복한 사람이구나'하는 식의 느낌으로 다가오는 거죠. 사랑한다면, 팔불출이 되지 않기란 매우 어렵습니다.


모르긴 몰라도, 여자의 경우도 비슷하지 않을까 짐작해봅니다. 남자를 보는 여러 가지 기준이 있어도, 정말 괜찮은 남자를 만나면 그 사람에게 쏠리는 마음으로 모든 기준이 재설정되는 거죠. 만약 남녀 모두가 이렇다면, '쟤는 눈이 너무 높다'는 말은 다소 허무한 말이 아닐까 싶습니다. 그보다 '아직 마음 깊이 좋아할 만한 사람을 찾지 못했다'고 보는 것이 정확하겠죠. 그리고 그건 본인의 탓이 아닐 겁니다. 우리가 쉽게 '눈을 낮추라'고 충고할 수 없는 이유죠.


그나저나 글을 쓰다 보니, 어느덧 제 여자 친구도 저와 같은 마음이길 바라게 되는 것 같습니다. 저란 사람을 좋은 사람, 믿을 만한 사람의 기준으로 삼아주길 바라는 마음. 역시 더 노력해야겠죠. 좋은 인연을 선물받은 행운을 유지하려면 그만큼의 노력이 필요할 테니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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