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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달리 Apr 15. 2022

한 편의 아름다운 위로

세실 메츠게르, 이세진, 『꽃으로 온 너에게』, 웅진주니어, 2022

* 쪽수: 40



유난히 힘든 날, 지친 몸과 마음을 회복하려면 어떤 식으로든 위로가 필요한 법입니다. 가까운 곳에서 나에게 위로를 안겨 주는 것들을 미리 파악해두는 건 그래서 중요하지요. 많은 사람이 가족으로부터 위안을 얻습니다. 가족과의 진솔한 대화는 지친 마음을 어루만지고 치유해줍니다. 가족뿐만 아니라 나를 아끼는 친구, 연인, 동료와의 대화가 다 그렇죠.


가끔은 혼자만의 시간을 위안 삼아야 할 때도 찾아옵니다. 전 혼자 있을 때 무언가를 읽거나 잠을 잡니다. 주말에 반나절 정도를 그렇게 보내고 나면 웬만한 피로나 스트레스는 거의 기억도 나지 않을 만큼 사라져 버립니다. 물론 스트레스 강도에 따라 읽는 결이 조금씩 달라지기는 하지요. 저는 스트레스가 심할수록 아름다운 작품에 의존하는 성향이 있는 것 같습니다.


세실 메츠게르의 『꽃으로 온 너에게』는 그런 제 취향에 완벽하게 들어맞는 작품입니다. 한 권의 책이 이렇게까지 아름다울 수 있는 것은 지구에 얼마 남지 않은 축복 가운데 하나가 아닐까 감히 생각해보게 됩니다. 표지를 장식하고 있는 은은한 파스텔 톤의 색채는 책을 여는 순간부터 포근한 햇살 같은 이야기가 비쳐올 것이라 기대하게 만들지요.


이야기가 시작되면 둥글고 투명한 곰 한 마리가 서 있습니다. 너무 투명해서 사람들 눈에 보이지 않는 곰이 못내 외로워 보입니다. 곰의 머리 위에선 조그만 먹구름이 따라다니며 빗방울을 뿌리고 있습니다. 먹구름 낀 일상이 곰에게는 삶의 기본 조건인 것이죠. 그러던 어느 날 오데트 아주머니가 옆집에 이사를 옵니다. 그리고 곰에게도 곧 변화가 찾아오지요.


오데트 아주머니의 주위에는 언제나 생기가 넘칩니다. 작가는 이 생기를 색 바랜 분홍빛으로 묘사하고 있습니다. 오데트 아주머니 주변의 꽃과 잠자리, 채소, 과일, 음악, 자전거와 머그잔에 봄잎처럼 번져있는 여린 분홍빛은 그가 머무는 공간을 조용한 역동감으로 채워주지요. 처음에 곰은 이웃집에서 복작거리는 생기를 조금 불편해 하지만, 아주머니가 정성껏 가꾸던 꽃이 시들어 좌절했을 때에는 누구보다 먼저 나서서 도와줄 방법을 고민합니다.


흔히 먹구름은 외롭고 울적한 감정의 은유로 쓰이고, 이 작품에서도 그렇습니다. 하지만 여기에서 곰의 먹구름은 그리 부정적인 상징물이 아니죠. 비가 되어 죽어가던 꽃을 살렸으니까요. 그런 점에서 볼 때 두 인물의 개성을 상징하는 소품으로 각각 꽃과 먹구름을 고른 선택은 탁월해 보여요. 한 사람의 삶의 의미는 전적으로 다른 한 사람을 돕는 데에서 나온다는 믿음을 다시 한번 확인시켜주는 것 같죠. 등장인물이 단 둘 뿐인 그림책에서, 그 둘이 서로 기대어 살아가는 모습을 지켜보는 것은 그 자체로 한 편의 아름다운 위로가 됩니다.


정말로 힘들 때는 아름다운 것을 눈에 꾹꾹 눌러 담아보세요. 생각보다 효과가 좋을 겁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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