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달리 Aug 31. 2023

머나먼 옆집의 이웃을 생각하며

이선주, 『태구는 이웃들이 궁금하다』, 주니어RHK, 2023

* 쪽수: 132쪽



오늘 소개할 책, 『태구는 이웃들이 궁금하다』는 겉으로 보았을 때는 마냥 가볍게 읽기 좋은 동화책으로 보이지만, 다 읽고 났을 때 묵직한 여운과 함께 유의미한 고민거리를 남기는 작품입니다. 그러면서도 곳곳에서 독자의 웃음을 유발하는 포인트를 놓치지 않는 재치가 돋보이지요. 읽는 내내 작가의 센스가 굉장하다는 생각을 했습니다.


주인공 '나'는 열두 살이고, 복도식 아파트에 삽니다. 제목에서 알 수 있듯 '나'의 이름은 '태구'이지만, 정작 태구에게 본인의 이름이나 성별 같은 건 별로 중요하지 않습니다. 주인공이 '복도식 아파트에 사는 어린이'라는, 어떻게 보면 단편적으로 처리될 수 있는 정보가 여기에서는 오히려 더 중요하게 취급되죠. 그건 작가가 이 작품을 통해 전하고자 하는 메시지와도 밀접한 관련이 있습니다. 이야기의 프롤로그는 그 점을 매우 명료하게 암시하고 있지요.


홍보 카피에서 '옴니버스 동화'라는 표현이 눈에 띄는데, 사실 이 작품을 읽으며 옴니버스 구성을 떠올리는 독자는 많지 않을 것 같아요. 책은 기본적으로 하나의 챕터에 하나의 독립된 에피소드를 배정하는, 익숙하고 평이한 형식으로 짜여 있습니다. 각 에피소드에서 일어난 사건들이 서로 충돌하거나 간섭할 여지가 거의 없다는 점에서 옴니버스라고 한 것 같은데, 그래도 순차적으로 읽었을 때 모든 플롯이 하나의 시간선 안에서 매끄럽게 흘러가기는 해서요. 이 작품의 형식적, 구성적 측면은 저에게 아주 특징적으로 느껴지지는 않았습니다.


기본 설정은 이렇습니다. 태구는 어느 소도시에 위치한 아파트 808호에서 할머니, 아빠와 함께 삽니다. 아파트는 15층까지 있고 한 층에 열 가구가 삽니다. 태구는 그곳에서 평소 이웃들의 사소한 생활 패턴에 많은 관심을 기울이며 살아가지요. 그런 점에서 태구는 『우주로 가는 계단』(2019)의 주인공 '지수'와도 결이 비슷해 보이네요.


첫 에피소드의 중심 소재는 층간소음입니다. 태구네 아래층에 사는 '708호 아줌마'는 잊을 만하면 올라와서 발소리를 줄여달라고 하소연합니다. 그럴 때면 태구 할머니는 '또 지랄한다'는 식으로 응수하는데, 다행히 둘은 십 년째 한 교회에 다니는 사이라 그 이상 큰일이 일어나지는 않습니다. 어쨌거나 층간소음 문제는 태구가 이 이야기에서 처음으로 해결해야 할 과제입니다. 태구가 문제 해결의 실마리를 찾아가는 과정을 통해 독자는 태구가 평소 어떤 생각과 태도를 가지고 살아가는 인물인지 알게 되지요.


두 번째 챕터부터는 소재가 한층 무거워집니다. 늘 바쁘게 사시던 810호 할아버지가 며칠 전부터 태구의 눈에 안 보이기 시작한 것이죠. 그로써 이야기는 독거노인의 삶과 그를 대하는 이웃들의 자세를 돌아보게 합니다. 평소 할아버지와 이웃들 사이가 어땠는지는 자세히 나와있지 않지만, 적어도 노인이 혼자 사는 집 현관문 안쪽에 매일 어떤 풍경이 펼쳐지는지에 관심을 갖고 사는 이웃은 아무도 없었던 것 같지요. 810호의 닫힌 문 앞에서 오래된 된장찌개 냄새를 맡는 태구를 보며 독자는 이웃이라는 말에 담긴 어떤 역설적인 의미를 되새겨보게 됩니다. 문에서 문까지 불과 몇 걸음 떨어져 있을 뿐인 우리는, 실은 그 어느 때보다도 이웃의 삶과 동떨어진 시기를 살고 있는 것이죠.


그 밖에도 이 책은 실직한 부모를 바라보는 어린이의 시선, 휴가 한 번 떠나본 적 없는 어느 가족의 서툰 여름휴가와 같은 에피소드를 통해 이웃과 가족에 관한 여러 이야기를 흥미롭게 풀어내고 있습니다. 가장 인상적인 것은, 열두 살 어린이의 목소리로 쓰인 이 이야기가 결국은 모두의 공감대를 불러일으키기에 조금도 부족함 없을 정도로 밀도 있게 사람 사는 이야기를 들려주고 있다는 점입니다. 그러면서도 모든 플롯의 초점이 어린이독자의 생활경험과 눈높이에 맞추어져 있다는 것 역시 이 작품이 갖는 중요한 미덕의 하나라고 할 수 있습니다.


척박한 현대를 살아가는 사람들에게 정말 필요한 것은 어쩌면 타인에 대한 걱정과 관심인지도 모릅니다. 비록 태구 할머니의 걱정은 그저 이웃에 대한 추레한 험담 정도로 비추어질 때가 많았지만, 적어도 그 걱정 아닌 걱정이 이어지는 동안에 누군가는 소소한 안정감을 누릴 수 있었겠죠. 태구 역시 마찬가지예요. 이웃을 향한 태구의 호기심 어린 시선은 그 이웃의 삶이 조각나 날아가버리지 않도록 우리 곁에 붙잡아주는 안전장치와도 같습니다. 책의 마지막 에피소드에서는 태구도 그러한 애정 어린 시선을 다른 누군가로부터 받게 되는데요. 이처럼 책이 보내는 따뜻한 시선을 이어받아 우리도 주변 이웃들에게 한 번 더 작은 관심을 보일 수 있게 되기를 바라봅니다.

매거진의 이전글 은폐된 진실을 드러내는 힘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