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뜩이나 하기 싫은 일인데 회사 내 이해관계자가 너무 많이 달라붙고 보고라인도 많아지면서 프로젝트는 점점 지연이 되어간다.
바짝 치고 나가야 할 시점. 팀장이 말한다.
"잠깐, 우리 저기 팀 검토 좀 받아보자."
또 치고 나가려고 하면 팀장이 다시 브레이크를 건다.
"잠깐, 저쪽이 전문가인 것 같으니까 저기 의견도 물어보자."
막상 검토를 요청하면 지연만 될 뿐, 아무런 응답이 오지 않는다.
그렇게 프로젝트는 계속 지연되고 나는 초조함에 지쳐 무기력해졌다.
협력업체를 통해 이제는 속도를 내야 할 때다.
3개월이면 끝난다던 업체는 3개월이 지나도 20%밖에 끝내지 못했다.
일주일마다 진척사항을 보고하라고 해도 보고는 진행하지도 않고 일은 지지부진이다.
추석이 돌아오고 있다. 이제 곧 긴 연휴다.
나는 업체의 진행상황을 캐묻는다.
"PM님, 추석 전까지 산출물 3개 나오는 거죠?"
"그럼요."
대답은 항상 긍정적이다.
하지만 추석 연휴는 시작이 됐고 산출물이 나오질 않는다.
초조해진 나는 문자를 보낸다.
"추석 연휴가 시작됐습니다. 그런데 PM님, 산출물 오늘은 보내주실 수 있는 건가요?"
PM은 또다시 말한다.
"예, 그럼요. 오전 중으로 보내드릴게요."
오전 중으로 온다던 산출물은 오후 1시가 돼서야 왔다.
나는 파일을 확인하고 조금 안심을 하고 추석 연휴를 보냈다.
추석 연휴가 끝나고, 몇 주 뒤 협력업체의 영업대표가 전화를 했다.
"아이코, 차장님. 추석 잘 보내셨어요? 저는 죽다 살아났어요."
한동안 연락이 없었던 그다.
영업대표는 코로나에 걸렸다가 이제 퇴원했다는 소식을 알렸다.
그러면서 덧붙인다.
"그런데 저희 중도금은..."
중도금은 무슨 중도금, 지금 진척률은 겨우 30% 뿐인데...
중도금은 주지 않았다.
그리고 또 한 달이 넘게 시간이 흘렀다.
이제 진척률은 40% 정도다.
이니, 이게 무슨 애들 장난도 아니고...
이미 몇 개월 전에 끝났어야 할 프로젝트는 아직도 지지부진이다.
이제는 둘을 불러야 할 때다.
"저기요 PM님, 영업대표님, 저희 회의 좀 하시죠. 이대로는 안 되겠습니다."
주요 인물 둘을 회사로 불렀다.
"근데 백신 2차까지 맞으셨나요? 그래야 회사 내부에서 회의를 할 수 있거든요."
둘은 모두 1차까지만 맞았다고 했다. 그래서 회사 바깥에서 회의를 했다.
지연 사항에 대해 영업 대표는 변명뿐이고 PM은 알겠다고만 한다.
회의를 마치고 팀장이 밥을 사주겠다고 해서 함께 저녁을 먹으러 갔다.
영업대표가 운을 뗀다.
"아이코, 코로나 때문에 아주 죽다 살아났습니다. 거의 중환자실까지 갈 뻔했는데 그 직전에 겨우 괜찮아졌어요."
그의 코로나 경험담을 듣는다. 병원에 입원해서 주변 사람들을 보니 거리두기도, 백신도 소용없다고 한다. 다 운이라는 것이다.
술이 들어가고 분위기가 무르익자 영업대표가 말한다.
"우리 PM님도 코로나 걸리고 생활시설에서 일하느라 얼마나 힘들었는지 몰라요."
이건 또 무슨 소리?
PM이 코로나 걸린 건 지금 처음 듣는 얘기다.
PM과 프로젝트 인력들이 코로나에 걸려 모두 PC를 들고 입소해서 일을 했다고 한다.
다행히 무증상이었다고 한다.
아니, 그걸 왜 이제 말하는 거지?
업무 진척이 느릴 때도, 계약 종료일에 연락을 했을 때도, 추석 연휴가 끝났을 때도, 백신 접종했냐는 질문에도 이들은 이들 회사에서 일어났던 전염병 사태를 함구했다. 밥을 먹는 내내 괘씸하기도 하면서, 또 숨기면서 일할 수밖에 없었다는 그들의 상황이 안타깝기도 하고, 그러면서 또 마음속 불안함이 더 커졌다.
위드 코로나가 되어 우리가 식사를 하던 식당의 옆 가게는 영업을 시작했고, 옆 가게에서 문이 열릴 때마다 노랫소리가 흘러나왔다. 옆 가게는 라이브 카페였다. 아까 등산복 차림의 아저씨 아줌마들이 우르르 들어가는 것을 봤다.
그리고 나는 백신 미접종자다.
확진자였던 사람들과 식사하는 것은 이제 뉴노멀이다. 그래서 괜찮다. 하지만 확진자였던 사람들보다 더 무서운 것은 식사할 때 내 주변에 앉아있는 내가 전혀 모르는 사람들이다. 그 모르는 사람들과의 거리는 이제 점점 가까워지고 있고 접촉할 기회가 많다. 그동안 회식에 굶주렸던 사람들은 회식 자리를 점점 더 많이 만들고 있다.
밥을 사 먹여도 여전히 이들의 업무는 지지부진하다. 올해 안에 끝날지 몰라 불안하다. 또 나는 그날 식당에서 밥을 먹은 게 몹시 불안하다. PCR 검사를 받아봐야 할까 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