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shadow Aug 21. 2022

술은 적당히만 드셔 줄래요?

내가 회식을 기피하는 이유

회식은 팀워크를 좋게 하지만 팀워크를 해치기도 한다.

나는 예나 지금이나 회식이 싫다. 




10년 전 회식이 싫었던 이유를 복기하면 다음과 같다.


1. 집에 늦게 간다.

가뜩이나 피곤한데 집에 늦게 가야 하는 것은 짜증이다. 회식은 업무의 연장선상이다. 안 가기도 뭣하고 가면 불편한 그런 것이었다.


2. 노래방에서 노래를 불러야 한다. 

노래방엘 가면 나이가 어리다는 이유 하나만으로 분위기를 띄워야 했다. 마이크를 잡으면 신나는 노래를 부르거나 노래를 엄청 잘 불러서 흥을 돋운다. 마이크를 넘기면 열심히 리액션을 해야 한다. 당시 최신곡만 꿰고 계셨던 어떤 부장님이 있다. 그게 다 윗사람에게 잘 보이기 위해서였던 것을 안 것은 얼마 전이다. 자신보다 10살이 어린 팀장 밑에서 하루하루 버티고 있는 지금의 그는 노래방은커녕 회식 장소에도 나타나지 않는다고 한다. 노래방에서의 활동이 싫다면 술에 취해 널브러져 있거나 사람들의 등에 업혀 택시에 태워져야 하는데 그것이 내가 회식이 싫은 이유 3번이다.


3. 술에 취한 진상들의 모습을 봐야 한다.

술에 취해 곱게 누워있으면 그게 그나마 낫다. 토악질을 하면 민폐다. 평소에는 점잖던 사람이 희롱을 하거나 폭력적으로 변하거나 하면 그 사람에 대한 실망으로 앞으로의 회사생활을 버텨야 한다. 술에 취해 젊은 남자 직원에게 자신의 다리를 만지라는 여자 상사도 보았고, 여자를 안고 빙글빙글 도는 남자 동료도 보았다. 술에 진짜 취했는지 안 취했는지 남자 상사의 양 옆 어깨에 기대어 쉬고 있었던 여자 직원들의 모습도 보았다. 모두 회식 자리에서 일어난 일이다. 진상이다. 추악하다. 


4. 다음날이면 평소와 다름없이 일터로 가야 한다.

밤늦게까지 술 마시고 때로는 못 볼 꼴을 보고 나서도 다음날 어김없이 출근해야 하는 것은 고역이다. 하루 종일 피곤한데 참아야 한다. 귀엽게 봐줄 수 있는 취중 행동은 영원한 놀림감이 된다. 전날 목격했던 추악한 모습들은 다음 회식자리에 또 보거나 모르는 척 덮고 넘어가야 했다. 




지금의 회식이 싫은 이유는 이런 것 같다.



1. 내가 바쁜 것을 모르고 일정을 잡는다.

혼자 업무에 허덕이고 있는데 회식 일정을 잡으면 정말 화가 난다. 배려라는 것이 전혀 느껴지지 않는다. 설령 시간이 있다고 해도 나는 당신들과 술을 마시고 싶지 않고 다른 일을 하고 싶다. 


2. 술을 좋아하는 팀장만 회식을 좋아한다.

지금의 회식을 즐기는 사람은 술을 좋아하거나 연식이 좀 있는 사람들이다. 요즘엔 밤늦게까지 술을 마시거나 하는 일이 없지만, 매번 팀 회식이 있을 때마다 나는 굳이 밤늦게까지 술을 마시고 가장 만취한 팀장의 모습을 보게 된다. 팀장이 취해서 몸을 못 가누는 모습을 보는 것이 내가 가장 기피하고 싶은 요즘 회식의 못 볼 꼴이다. 회식자리도 업무의 연장인 것을 인지하고 팀장답게 적당히 좀 했으면 좋겠다. 


3. 유부남 유부녀의 스킨십을 보게 된다.

내가 10년 전 목격했던 스킨십과도 유사하다. 아는지 모르는지 술에 취한 남자는 술에 취한 여자의 긴 머리를 쓰다듬고 있고 그 여자는 남자의 어깨에 살포시 기댄다. 나는 그 모습을 두 눈으로 목격하면서 어쩌나 싶다. 지난번에는 실수였나 싶은데 이번에 또 그런다. 10년 전에는 미혼의 부하직원과 결혼한 상사와의 그런 모습을 주로 목격했다면, 요즘은 연식 있는, 각기 다른 배우자를 가진 유부남 유부녀가 그러고 있는 모습을 보게 된다. 결혼하면 그렇게 외로운가.


4. 다음날 너무나도 당연한 듯 일을 안 한다.

술에 과도하게 취해서 꽐라가 된 것이 뭐가 자랑인가 싶다. 다음날 업무와 상관없이 휴가를 내거나 대놓고 엎어져 있는 사람들이 있다. 이들의 대부분은 연식이 좀 있으신 분들이며, 10년 전에도 이런 모습으로 있었던 것 같다. 습관이다. 사회 경험이 부족한 신입사원이 수위 조절을 못해 꽐라가 된 것은 한 번쯤 치르는 과정이라 치겠다. 그런데 연식있는 시니어들의 이런 행태는 추태로 보인다. 




이런 이유로 나는 예나 지금이나 회식이 싫다. 그냥 업무시간에 업무를 어떻게 잘하는 것이 좋을지 그것만 생각해주고 지원해줬으면 좋겠다. 맑은 정신에서 객관적으로 논의하고 업무로 우애가 다져지는 것이 직장생활에서의 진정한 팀워크가 아닐까. 물론 업무를 하다가 말다툼이 되고, 서로의 감정을 해치게 되었다면 이를 풀어내는 방법 중 하나가 회식이 될 수 있다고도 생각한다. 하지만 술을 마시고 싶은 욕구를, 놀고 싶은 욕구를 술자리 회식으로 푸는 것. 그것도 상사의 주도로 그러는 것. 이건 좀 아니지 않은가. 

매거진의 이전글 왜 남자 임원은 여자 부하직원과의 동행을 꺼려하는가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