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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눈큰 Jan 19. 2020

몽땅 다 내 잘못이다

몽당연필


photo by 눈큰 / Nikon D90


아이들이 썼던 연필들을 이만큼 모아두고 있다.

더 이상 잡고 쓰기 힘들 만큼 짧은 것들부터

아직 쓸만한데도 아이들이 싫증을 내서 한동안 여기저기 굴러다니던 것들까지….


‘연필 깎기의 정석’이란 책을 눈물 나도록(?) 감명 깊게 읽을 정도로

연필을 좋아했던 나였기에

나중에 쓸 요량으로 하나둘씩 상자에 모아둔 건데, 그게 저렇게나 많다.

아이들이 초등학교 때 여기저기서 선물 받은,

아직 깎지도 않은 새 연필도 한가득 남아있는데 말이다.


나는 몽당연필을 상자에 넣기 전에 항상

의식을 치르듯

몽톡해진 심을 일부러 날카롭게 깎아 넣었다.

비록 현역에서 은퇴하더라도 삶에 무뎌지지 말라고….

자신을 뾰족하게 갈고 기다리면

언젠간 연필깍지를 달고 멋진 제2의 삶을 살 거라고….



photo by 눈큰 / Nikon D90



그런데 이제 저걸 다 어쩐다?


아이들은 이제 더 이상 연필을 쓰지 않는다. 샤프를 사용한다.

공부나 메모, 번역을 할 때마다 꼬박꼬박 연필을 사용했던 나도 이제는 그럴 일이 없다.

PDF 파일을 보며 모니터에 연필을 그어댈 수도 없고….


세상이 이렇게 바뀔 줄,

내가 이렇게 변할 줄 알았다면,

몽당연필에게 그런 헛된 희망을 주지 않았을 텐데….


몽땅 다 내 잘못이다.


photo by 눈큰 / Nikon D90


+

‘몽땅연필’은 ‘몽당연필’의 경북 방언으로 표준어가 아니더라.

‘물건의 끝이 닳아서 몽톡하게 몽그라지거나 몽그라지게 하는 모양’이란 뜻의 ‘몽당’과 ‘연필’이 합쳐진 말. 발음도 ‘몽당년필’이 맞다고 한다.

하지만 나는 몽당연필이라고 말하면 왠지

짜장면을 자장면, 싸나이를 사나이라고 말하는 것처럼 맛이 없다. 김이 샌다.

(경상도 사람인지라... ㅎ)


연필 촉에서 흑연을 제외한 부분은 '깃(collar)',

연필 촉과 지우개를 연결하는 우글쭈글한 금속조각은 '쇠테'라 한다.

몽당연필의 키를 조금 늘여주거나 뚜껑으로 쓰는 건 '연필캡',

키를 길게 늘려주는 건 '연필깍지'다.

연필 홀더, 펜슬 홀더, 펜슬 익스텐더 등 부르는 이름도 많지만

나는 연필깍지라는 말이 예뻐서 늘 그렇게 부른다.

옛날 옛적엔 모나미 볼펜대가 최고의 연필깍지였다. 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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