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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눈큰 Mar 20. 2020

옆으로 자라는 사람

글을 쓰면서 생긴 일


열린 공간에 글을 써 올리면서 조회 수나 좋아요 수를 기대하지 않는다면 거짓말이겠지?

글을 올리기 시작한 지 넉 달 정도 된 내 공간은 여전히 ‘조회 수’를 ‘조회’해보는 것조차 민망할 정도로 인적이 드물다. (물론 구독해 주시는 분들이 고맙게도 많이 늘었지만요. ㅎㅎ)


그럼에도 새내기 작가(?)로서 글을 발행하고 난 후의 기대감은 자꾸만 부풀어 오르는 풍선 같아서, 묵직한 돌멩이에 실로 단단히 묶어놓아도 둥실둥실 떠오르려고 했다.


그러다가 풍선이 멋진 ‘폭죽’처럼 빵 터진 적도 두어 번 있었다. 브런치나 다음 메인 어딘가에 내 글이 조그맣게 걸렸을 때다. 대단한 글도 아니었는데 그런 호사를 누리고 보니 솔직히 기분이 좋았, 아니 아주 많이 좋았다. 내 입도 귀에 걸렸다. ‘조회 수가 ~를 돌파했습니다’라는 알림도 처음 받아보았다.


이러려고 시작한 건 아닌데


문제는 그 후였다.

나도 모르게 자꾸 글에 힘이 들어갔다. 남의 눈치도 보았다. 뭣도 아닌 내용에 괜히 의미를 집어넣으려고 했고 실시간으로 알람에 집착하게 되었다. 그뿐인가! 남들은 어떤 글을 써서 올리는지 궁금했다. 어떤 글이 인기가 많은지 보았고, 괜히 흉내 내고 싶어졌다. 내 글은 왜 이것밖에 안 되나 싶어 잔뜩 주눅이 들었다.

그러니 글이 쉽게 써질 리 있나! 어쩌다 써 놓은 글도 쉽게 올리지 못할 수밖에.


문득 뭐 하는 짓인가 싶었다. 혼자 신경 쓰고 있는 내가 웃겼다.

구독자가 천명, 만 명도 아니고, 좋아요가 몇십, 몇백 개 달리는 것도 아니고 뭘 그리 부담을 느끼나 싶었다. 내 글이 대단해서 출판사가 당장 책을 내자고 달려들 것도 아니고….


그러니까 힘을 주는 게 아니라, 힘을 빼야 하는데….

남의 눈치를 보는 게 아니라, 남의 생각과 마음을 봐야 하는데….

거창한 의미를 담을 게 아니라, 진실한 내 이야기를 담아야 하는데….


산책하듯 가볍게


언젠가 텔레비전에서 한 청년 농부의 인터뷰를 본 적이 있다.


“나무는 위로 자란다고 생각했는데 옆으로 자라야 더 많은 열매를 맺더라고요.
 인생도 그래요. 위로만 성장하는 게 전부는 아니죠.”


조회 수가 위로 치솟는다고, 구독자 수가 많아진다고 내 글이 열매를 맺는 것은 분명 아닐 테지.

중년을 살아가고 있는 나. 공자가 아니어서 마흔이 넘어도 ‘불혹’이라는 말이 무색할 정도로 여전히 흔들리고 흔들리는 나. 그런 나의 인생 절반을 차분히 정리해보고 싶어서 무작정 시작한 글쓰기였다. 그러면 남아있는 내 인생 절반을 어떻게 살아야 하는지 답을 얻을 수 있을까 싶어서, 지금의 삶을 좀 더 사랑할 수 있을까 싶어서.


지금이라도 그때의 마음으로 돌아가야겠다.

하늘 높은 줄 모르고 올라가려는 풍선은 손에 꼭 쥔 채, 산책하듯 가볍게 글을 쓰고 읽어야지. 앞이나 위만 보는 게 아니라 뒤나 옆도 보면서 천천히! 언젠가 풍선 대신 작은 열매를 손에 쥔다면 좋겠지만 꼭 그렇지 않더라도 조용히 옆으로 자라나는 사람이 되고 싶다. (물론 몸은 이미 옆으로 충분히 자라고 있습니다만…. ;;)



한 가지 더!

누군가의 충고대로 이곳의 알람을 꺼두었더니, 뜻밖에도 참 좋다.

이제는 바쁜 일 중간중간에 여유가 생기면 이곳에 들어오는데, 그때마다 구독하는 글이나 댓글 등 소식을 한꺼번에 받으니 왠지 선물 받는 기분이 든다. 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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