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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눈큰 Dec 30. 2020

편집자를 생각함

이런 나는 편집자에게 어떤 번역가일까


교정지로 볼 땐 정말 없었다. CTP 파일에서도 없었다. 그런데 왜 출간된 책을 펼치면 떡하니 오타부터 눈에 보이는 걸까. 세기의 미스터리다.
나는 믿는다. ‘오타 자연발생설’을. 오타는 어디선가 저절로 생기는 게 틀림없다. 활자 틈바구니를 뚫고 스스로 돋아나는 거다. 그렇지 않고서야 컴퓨터로 한번 본 원고를 종이로 뽑아서 1교, 2교, 3교를 보고 크로스교도 모자라 화면교까지 봤는데 왜 오타가 있겠는가. 정말 말도 안 되는 일이다. 혹시 내가 까칠하게 굴어서 인쇄소 기장님이 몰래 집어넣는 걸까.
세상에 오타 없는 책은 없다고 누군가 말했다.  
-<책갈피의 기분> ‘오타의 요정’ 중에서


작은 출판사에서 일하는 편집자가 쓴 책을 읽다가 문득 나의 편집자들에 대해서 생각해 본다. 나는 독자 말고 출판사 편집자에게는 어떤 번역가일까….


내가 시리즈로 번역한 아동서의 출판사는 항상 인쇄에 들어가기 직전의 최종 인쇄본 pdf 파일을 내게 보내어 마지막 검토를 부탁한다. 출판사에서 독자인 아이들 눈높이에 맞춰 본문 내용이나 부록에 실릴 퀴즈 등을 조금씩 수정하는데 그게 혹시라도 원서 내용과 어긋나지는 않은지, 그리고 혹시라도 다른 잘못된 부분은 없는지 한 번 더 검토해달라는 것이다. 대개 출판사로 넘어간 원고들은 어지간해서는 다시 번역가에게 되돌아오지 않지만, 그 아동서 시리즈는 늘 그렇게 확인 작업을 했다.


물론 내가 (눈큰답게) 눈 크게 뜨고 열심히 검토해도 편집자가 꼼꼼하게 마무리한 최종 인쇄본에는 특별히 잘못된 부분이 없다. 오히려 원서에 충실하느라 나도 모르게 조금 어렵게 옮긴 단어나 문장을 아이들이 쉽게 이해하도록 기똥차게 수정해 놓은 것을 보면 감탄이 절로 나오기도 한다. 뭐 그렇게 내가 또 한 수 배울 수 있어 좋긴 한데, 아, 오타라도 하나 발견하면 내가 열심히 검토했다는 거 생색이라도 낼 텐데 하는 심정. (이런 마음, 아시는 분은 아시죠? ㅎㅎ)


© webandi, 출처 Pixabay


그런데 얼마 전 검토한 책은 평소와 달리 잘못된 부분이 꽤 있었다.

높임말이어야 할 등장인물의 대사 하나가 반말로 되어 있었고, 오타와 띄어쓰기 오류도 두세 개 발견되었다. 그 외에 사전에 출판사에 문의해서 결정한 변경사항 등도 아직 바뀌지않고 그대로 남아있었다. 나는 그것들을 조목조목 적어 검토 결과를 보냈다. 편집자가 보내온 답장에는 ‘놓쳤습니다. 수정하겠습니다.’라는 대답이 똑같이 조목조목 적혀있었다.


그런데 막상 그런 답장을 받고 나니, 왜 갑자기 그런 생각이 들었는지 모르겠는데, 괜히 미안했다. 내 못난 원고를 읽고 또 읽으며 깔끔하게 편집했을 편집자에게 자신의 실수를 야무지게 들춰낸 번역가의 정성과 열정이 고맙고 힘이 되었을까? 혹여 곤란하거나 힘빠지게 만들진 않았을까?? 궁금….

아무튼 그 답장 속에서는 둘 중 어떤 감정도 느낄 수 없었다. ㅜ


지난번 글에 썼던 것처럼 에이전시 담당자의 얼굴도 모르는 내가 한 다리 건너 소통하는 출판사의 편집자와 개인적으로 연락할 일은 더더구나 없다. 이 글도 그 편집자가 알고 찾아와 읽을 리는 만무하겠지. 하지만 이것만 말하고 싶군요. 우찌 되었든 저는 제 모든 편집자님들 편입니다! 그러니 오늘도 파이팅! 일당백 정신으로 어렵게 책 한 권을 만들어내도 정작 책 표지에는 이름 한 줄 실리지 않는 세상 모든 편집자에게 짝사랑 같은 응원을 조용히 보낸다. 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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