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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눈큰 Jan 03. 2021

직업이 취미 같았던 날들을 보내고

2021년을 시작하며


남들 쉬는 새해 연휴에 혼자 일을 하고 있자니 너무…


행복하다. ㅎㅎ

고맙게도 2020년을 2일 남기고 2권의 번역 의뢰가 들어와서 다시 일을 시작했다. 늘 하던 대로 촘촘하게 계획을 세우고 날마다 지워나가면 되겠지.


새해를 맞아 정신을 바짝 차리기 위해 85세 번역가 김욱 님의 <취미를 직업으로 삼다>도 또다시 꺼내 읽었다. 본의 아니게 ‘직업을 취미 삼아’ 뜨문뜨문 일하며(ㅜㅠ) 안일하게 살아왔던 내게 정말 충격을 안겨주었던 번역가의 책, 게다가 나이 한 살 더 먹은 이 시점에서 과연 행복하고 멋진 노년이란 무엇일까에 대해 깊이 생각하게 만드는 책이기도 하니까.


#김욱에세이 #하고싶은일 #아직도하고싶다면 #늦지않았어 #70에쫄딱망함 #울고싶었지만 #일흔에번역시작 #15년동안200권 #어릴적좋아했던명저들 #나만의노하우 #나답게살기 #죽을때까지쭉 #책스타그램
-책표지에서
육십 다섯 나이에 처음부터 번역과 책을 쓸 기회가 주어졌던 것은 아니다. 나 같은 노인네를 얼씨구나 기다렸다는 듯이 불러주는 출판사는 없었다. 입에 풀칠은 해야겠는데 늙은 남편은 책상에 앉아서 꾸벅꾸벅 조는 게 일상이고, 보다 못한 아내는 묘막에 붙은 텃밭을 가래질해 옥수수와 감자, 고추, 배추 등을 심었다. 이거라도 팔아서 먹고살 궁리를 한 것이다.
-‘남자의 케시미어 코트’ 중에서
칠순 나이에 시작해서 건설 회사 사장이 되고 강남에 1200세대 아파트를 짓고 두바이에 댐을 만들기는 어려울지 모른다. 환갑에 수능 만점을 받고 서울대 의대에 수석으로 합격할 가능성도 매우 낮다.
하지만 칸트를 읽고, 사서삼경을 읽고, 성경을 읽고, 가족에게 들려주고 싶은 이야기, 내가 살아온 이야기, 세상에 해주고 싶은 이야기를 글로 쓰는 등의 지적으로 충만한, 내적으로 행복한, 인간적으로 자랑스러운 노년의 지성미 넘치는 최후의 마무리는 누구든지 가능하다. 이것이 고령화의 단계를 거쳐야만 하는 우리에겐 어쩌면 마지막일 수도 있는 기회다.
-‘달과 6펜스’ 중에서
나이 먹고 제일 짜증나는 건 명색이 윗사람이라고 이런 자리에서 먼저 일어났을 때 우르르 따라 일어서는 것이다. 노인네 잘 들어가시라고 배웅해주는 것은 고마우나 비틀대지 않고 신발 잘 챙겨 신고, 허리 꼿꼿하게 세우고 당당하게 술집문을 나서야만 내가 떠난 자리에 뒷말이 남지 않는다. 여기서 잠깐 주춤거리거나 신발을 빨리 못 신거나 문 앞에서 비틀댔다가는 저 형님도 오래 못 가겠다는 뒷담화가 다음 안주 거리로 상에 오른다. 나는 그게 싫어서 벗어놓은 구두를 신을 때부터 야코를 콱 죽여놓을 심산으로 외발로 구두끈을 묶는다.
(중략) 이제와 새삼 그때 일을 생각해본다. 깨달아지는 바가 있다. 나이가 들수록 사람은 자기 자신 앞에서 추레해짐을 느낀다. 젊어서는 타인의 눈을 의식했지만, 늙어갈수록 내 눈치를 보게 된다. 다른 사람 시선에 그만큼 적응이 되었다는 뜻이기도 하고, 삶의 경험이 축적되면서 정작 중요한 건 바깥의 평가가 아닌 나 스스로 내 눈앞에서 당당해져야 한다는 것을 깨닫게 된 것이다.
-‘다시 걷기 위해 외발로 묶는 구두끈’ 중에서


책을 덮고 나서 나도 외발로 구두끈을 바짝 묶는다…가 아니고, 책상 주변과 맥북을 한번 털고 닦아주고, 어수선했던 집도 미리 깨끗이 청소해두고, (내 집중력을 흐리게 만드는) 중요하지 않은 어플이며 알람들도 정리하고, 나름 새 마음 새 뜻으로 전투태세를 갖췄다.


올해도 내 ‘번역작업실’의 문은 활짝 열려 있었으면… 아니, 올해가 아니라 할머니가 되었을 때까지도 닫히지 않았으면 좋겠다. 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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