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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눈큰 Apr 07. 2021

잠깐만 몰래 놀고 싶은

주부 번역가의 속내


얼마 전에 번역가 지망생을 대상으로 한 특강에 갔다가 질문을 받았다. “작업 중간에는 어떻게 쉬세요?” 문득 지난날이 주마등처럼 스쳐 지나갔다. 작업 틈틈이 싱크대에 쌓인 그릇을 설거지 하거나, 청소기나 세탁기를 돌리거나, 빨래를 널거나, 학교에서 돌아온 아이 간식을 챙겨주거나, 택배를 받거나, 장을 보거나, 그밖에 자질구레한 집안일을 해치우기 바빠 제대로 쉴 만한 여유가 있었던가? 살림하다 번역하고, 번역하다 살림하면 하루가 끝났다.
 -<번역가 모모 씨의 일일> 중에서 박산호 님 글


오늘로 딱 3일째다. 석 달간 붙잡고 있던 2권의 책 번역을 끝내고 다시 몸도 마음도 한가해진 것이. 그동안 번역한다고 미뤄둔 일들이 꽤 있었던 것 같은데, 생각 안 나고요, 아니, 생각 안 하고 싶고요, 이미 아무것도 안 하고 있지만 더 격렬하게 아무것도 안 하고 싶어서 게으름을 피우고 있다.


게으름 이야기가 나와서 말인데, 언제부턴가 나는 마감일에 최종본 원고를 메일로 보낸 후에도 며칠 정도는 가족들에게 굳이 마감한 티를 내지 않는다. 번역할 때와 마찬가지로 집안일이 끝나면 번역 작업실(=안방 내 책상 ㅎㅎ)에 들어가 문을 닫고 앉아있다는 말이다. 모처럼 한가해진 시간, 아내 혹은 엄마가 필요한 급한 일이 아니라면 당분간 날 귀찮게 굴지 말아줄래? 하는 심정이랄까. 잠깐이라도 몰래 놀고 싶어서다.

그러다가 노트북 앞에 찰싹 달라붙어있어야 할 내가 점점 소파나 침대에 달라붙어있는 시간이 길어지면 가족들이 눈치를 채고 한 마디 던진다. “번역 끝났어요?”

네, 끝났어요. ㅎㅎ


러면 내게 쏟아지는 부러움의 눈길. 365 출근하기 싫은 직장인 남편과 온라인 수업만 했으면 싶은 아이들이 그제야 재택근무 프리랜서인 나의 ~뤼함을 부러워하는 것이다. 그르지 마요, 내가 그동안 집을 오롯이 ‘휴식과 재충전의 공간으로 사용하는 가족들을 얼마나 부러워했는데! 주부 번역가인 나에게집이 ‘번역 작업실아니면 ‘집안일하는 공간  하나인 기분이었으니….


아무튼 다음 번역 일이 하루빨리 들어오기를 바라는 마음과 며칠만 더 있다가 들어오기를 바라는 마음이 정확히 5:5인 지금, 들키기 전에 혼자 잘 놀고 싶은데 뭘하지? 번역 썰을 몇 가지 끄적거리긴 했는데, 써놓고 보니 너무 짧거나 별것 아닌 것 같아서 올릴까 말까 망설여지고 ㅜ, 벚꽃 구경은 진작에 늦은 것 같고. ㅜㅜ n


지난 어느 해 봄날, 벚꽃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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