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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눈큰 May 27. 2021

친구 찬스


나는 학교를 다닐 때도 워낙 친구가 없었고, 통번역대학원이나 번역 스쿨 같은 곳도 다니지 않았으며, 20년 가까이 번역하면서 집순이로만 보내다 보니, 인맥이랄 게 딱히 없다. 그런데 가끔 번역을 하다가 사전이나 인터넷 검색으로는 도저히 해결되지 않는 원문에 부딪칠 때면 그런 걸 물어볼 사람이 있으면 참 좋겠다는 생각이 많이 든다.


그런 나에게 한 줄기 빛 같은 사람이 있었으니, 같은 과 동기로 통번역대학원까지 졸업하고 지금은 내로라하는 중국 대기업에서 근무하는 친구 되시겠다. 한달이 멀다 하고 외국 출장을 다니며(물론 코로나 이전 이야기) 글로벌하게 일하는 모습이 정말 대단해 보였던 친구. 나는 그 친구에게 여태까지 몇 번 SOS를 보냈었다. 그러면 친구는 바쁜 와중에도 기꺼이 내게 답을 보내왔다. 심지어 자신이 잘 모르겠으면 옆에 있는 사무실 직원들(그녀의 사무실에는 중국은 물론 대만, 홍콩, 미국, 일본 사람들이 다 같이 일하고 있다)에게 물어봐 주었다는. 친구 찬스란 바로 이런 것! 그 친구의 존재만으로 나는 얼마나 든든한지 모른다.


여기서 한 가지 웃긴 일은…

한번은 대만 작가가 쓴 책을 번역하던 중에 무슨 말인지 도무지 이해되지 않는 농담이 하나 나왔는데, 한동안 머리를 쥐어뜯던 나는 마감을 코앞에 두고 도저히 안되겠다 싶어 그 친구에게 SOS를 보냈다. 그런데 그걸 그 사무실의 대만 직원들조차 무슨 말인지 몰라했다는 사실. 자국민조차 이해하지 못하는 작가의 말장난을 번역해야 한다니…. ㅠ 그래도 그걸 기어코 우리말로 옮기고 있는 나를 보며 친구가 한마디 했다. “야, 내 눈엔 네가 더 대단해 보인다. 어쩜 이런 걸 번역하고 있냐. 나 같으면 절대 못했다.”


아무튼 친구 찬스도 좋지만, 제발 그런 어려운 원문만은 꿈에서도 만나지 않길 바란다. n


© PublicDomainPictures, 출처 Pixaba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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