7년 전에 작업한 적 있는 출판사에서 번역 의뢰 메일이 왔다. 반갑게 수락하고 그때보다 500원 오른 번역료를 말했다. 계약합시다, 해놓고 번역료는? 어, 안 맞네, 이러면 서로 민망하니 미리 말해두는 게 좋다. 답장이 없기에 번역료가 맞지 않아서 하지 않나 보다 하고 넘어갔다. 무소식이 NO소식이어서 답장이 없는 것도 답장이다. 그러다 잊고 있을 즈음 메일이 왔다.
‘이사님이 7년 전보다 번역료가 올랐는데 번역료 상승과 관련하여 다른 이유가 있는지 확인해달라고 하십니다.’
어머, 7년 전보다 짜장면값도 오르고 교통비도 오르고 빵값도 오르고 다 올랐는데, 번역료는 오르면 안 되는 ‘다른 이유’라도 있는지 되레 반문하고 싶었다. 세상에서 제일 오르지 않는 게 번역료 아닌가. 정부에서, 혹은 협회에서 때 되면 돈 올려주는 업계는 정말 행복한 것이다. 번역하는 사람은 아무도 관심을 갖지 않는다. 본인이 알아서 소심하게 몇 년에 한 번쯤 500원(원고지 장당) 올려달라고 말을 꺼내서 올려주면 올라가는 것이고, “단군 이래 최대 불황이어서요” 하고 출판사에서 죽는 소리하면 “아, 그렇죠” 하고 물러서는 것이다. 출판사에서 먼저 “몇 년째 번역료가 그대로이신데 올려드릴게요” 이러는 곳은 절대 없다.
-권남희 님 <혼자여서 좋은 직업> 중에서
스무 해 가까이 번역하는 동안 내 번역 단가는 딱 두 번 올랐다. 대리번역 딱지를 떼고 정식 번역을 하게 되었을 때 한번, 그리고 번역한 지 10년쯤 되던 해에 또 한 번. 그때 나는 역서도 어느 정도 되고 강산도 변할 만큼 세월이 흘렀다 싶어서, 번역 의뢰 전화를 받은 어느 날 용기 내어(수화기 너머로 충분히 쭈뼛쭈뼛함을 느낄 수 있을 정도의 말투로;;) 번역료 인상 이야기를 먼저 꺼냈더랬다.
권남희 님의 책 <혼자여서 좋은 직업>에서 ‘번역료’에 관한 글을 읽다 말고 갑자기 당시 내 상황이 어떠했는지 기억이 가물가물해서 그때 받은 메일을 한번 찾아보았다. 팀장님께 물어보겠다고 대답하고 전화를 끊었던 에이전시 담당자가 얼마 후 보내온 메일 내용은 다음과 같았다.
“그리고... 번역료는 유선상 말씀드렸듯이...
워낙 출판 시장이 불황이라 이번에는 인상이 힘들 것 같습니다.
출판사에서도 네고를 요청한 건이라.. 결재를 올렸는데.. 컨펌이 안났어요...
역자님 경력도 많으시고 실력도 좋으시니..
대신 다음 권 번역 들어가실 때는 상향조정한 단가로 들어가기로 결재 받았습니다.”
ㅎㅎ 나도 작가나 번역가들이라면 반드시 듣게 된다는 ‘출판 시장이 불황’이라는 말을 들어봤구나 하며 한참을 웃었네. 아무튼 그 메일을 받고 나서 나는 기존 단가에서 (A4지 장당) 천 원을 더 올려 받는 데 어쨌든 성공했다.
그런데 그게 벌써 10여 년 전 이야기. 또 한 번 강산이 변했다.
10년 전 그때 번역료를 어렵게 올려 받으면서, 에효, 남한테 돈 이야기 절대 못 하는 나는 또 10년 뒤에나 이런 이야기를 다시 꺼낼 수 있겠구나 싶어 한숨 지었는데, 그게 벌써 지금이라니.
하지만 번역 의뢰조차 뜸한 지금, 뜬금없이 전화해 번역 단가를 올려달라고 하기도 뭣하고… 참으로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하게 되었다. 이럴 줄 알았으면 물 좀 들어올 때 노를 확 젓는 건데….
이렇게 잘나가는 번역가들도 번역 단가 올리는 게 쉽지 않다는 걸 책에서 보면서, 또 번역 검토서 단가가 10년 전이나 지금이나 똑같다는 이야기를 번역가 카페에서 들으면서 위안을 삼아야 하는, 어흑, 슬프다. n