브런치에서 “수고했어, 올해도!” 하면서 브런치 작가들에게 작가 카드를 준단다. 실물은 아니지만 꼭 명함처럼 생겼고 모바일 카카오톡 지갑에 넣을 수 있는 카드란다. 사실 나는 여태껏 명함을 가져본 적이 없고 ‘작가님 작가님’하며 브런치에서 작가 대접받는 것도 좋아서 헤벌쭉하는 사람인지라 이런 작은 이벤트가 재밌다.
그나저나 나는 이렇게 명함도 없이 스무 해 가까이 번역 일을 하고 있는데, 다른 번역가분들은 명함을 가지고 다니실까들? 번역가들의 책이나 블로그, 번역가 카페에 ‘명함’이라는 말이 거의 등장하지 않는 걸 보면 역시 번역가들은 명함 따윈 안 만드는군 싶다가도, 어떤 방식으로든 자신의 존재감을 드러내는 요즘 시대엔 명함을 가진 번역가도 왠지 많을 듯싶다.
사실 번역가들은 ‘역서 = 명함’이라고 한다. 게다가 번역 의뢰든 원고 제출이든 모두 온라인으로 이루어지는 마당에 어디 마땅히 뿌릴 때도 없는 명함 거 뭣하러!
하지만 말쑥하게 각 잡힌 종이에 현재의 삶을 응집해서 박아놓은 명함은 자신의 정체성을 상징하면서도 자부심, 감성 같은 것이 분명 들어있다. 일본 만화영화 <짱구는 못말려> 극장판 중에는 짱구 가족이 나쁜 놈 부하들에게 쫓기는 상황에서 하필 짱구 아빠가 중요한 거래처 사람들을 만났는데 도망도 미루고 명함을 주고받으며 인사하는 장면이 나온다. 그 순간엔 악당 두목 할머니도 부하들을 말리며 “영업사원들끼리 명함을 주고받는 순간은 ‘신성한 의식’이야.”라고 말한다. 아 글쎄 그렇다니까요.
아무튼 그래서 나는 늘 종이로 된 내 명함을 꿈꾸었다만… 정말 꿈만 꾸었다. 당장 급할 게 없는 일이라 자꾸 미루게 되네. 그래도 명함 디자인은 나름 생각해 두었다. 명함 앞면에는 ‘번역하고 글 쓰는 눈큰입니다’라는 말만 심플하게 박아놓고, 뒷면에는 번역가라는 타이틀과 내 이름, 그리고 전화번호, 이메일 주소, 블로그 주소 요렇게 딱 다섯 줄만 박는 거다. (작가가 되면 작가 타이틀도 추가해서 ㅎㅎ)
뭐 요즘은 명함 만드는 건 일도 아니다. 검색해 보면 정말 괜찮은 품질과 저렴한 가격에, 부담스럽게 100장씩 찍을 필요도 없이 소량 주문할 수 있는 명함 제작 사이트가 많다.
20년간 한 직장을 다닌 남편에게는 회사에서 근속기념패 같은 것도 만들어주던데, 내년이면 어쨌든 20년간 번역 일을 한 셈 되는 나에게는 근속기념패 대신 명함 하나 만들어주면 어떨까? 비록 어쩌다 번역 의뢰가 들어오는 ㅜ 짠 내 나는 번역가이지만, 앞으로도 쭉 번역가로 살고 싶다는 염원을 담아 못을 박듯 ‘번. 역. 가’가 박힌 명함을 만들어주는 거다. 그래, 내년엔 꼭! n