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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눈큰 Dec 29. 2021

여기 보시오


마감을 끝낸 지 얼마 안 된 요즘. 늘 해왔던 대로 번역 오답 노트도 정리하고, 우리말도 공부하고, 책도 읽으면서 다음 번역 일을 다소곳이(?) 기다리고 있다. 이번엔 또 얼마나 백수로 지내려나? ㅎㅎ


그건 그렇고 이런 마감 루틴 외에, 해마다 이맘때면 내가 잊지 않고 하는 일이 있다.

바로 네이버 사전 블로그에서 연말이면 발표하는 ‘올해의 단어, 신조어’를 꼼꼼히 살펴보는 것이다.

한 해 동안 사람들이 과연 어떤 단어들을 가장 많이 찾아봤는지 궁금하기도 하거니와 나도 몰랐던 신조어를 알게 되는 재미가 쏠쏠하니까.


https://m.blog.naver.com/dic_master/222599877041


올해도 어김없이 그 결과를 재미있게 읽으면서 번역 노트에 정리할 만한 것은 옮겨와 정리를 했는데, 그 많고 쟁쟁한 단어들 중에서(심지어 파릇파릇 반짝이는 신조어들을 모두 제치고) 내 마음에 가장 와닿은 단어가 하나 있었으니, 바로 92위를 차지한 ‘여보’라는 단어였다.


여보 : (어원) 여보 : 부부간에 서로를 부루는 호칭.'여기 보시오'가 줄어서 된 말이다. 처음에는 그다지 친하지 않거나 서먹한 사이에 있는 사람을 부를 때 사용하였으며 , 지금도 흔히 '여보'.'여보 쇼'와 같이 쓰이고 있다. 지금은 부부간에 스스럼없이 이름을 부르기도 하고 호칭도 다양해졌지만 옛날에는 부부 사이가 지금처럼 허물없이 대하기 어려웠고 지켜야 할 도리도 많았다. 그런 이유로 서로를 부르는 호칭도 마땅치가 않아서 낯선 사람 부르듯 이 '여보'하던 것이 그대로 일반적인 호칭이 되었다. 여보와 함께 일반적으로 사용하는 '당신'이라는 표현도 마찬가지다.


결혼한 지 스무 해가 다 되어가는 나는 남편에게 단 한 번도 ‘여보’라고 불러본 적이 없다. 그냥 ‘~~ 씨’ 하며 이름을 부른다. 연애 시절부터 쓴  ‘~~ 씨’란 호칭이 완전히 입에 붙어버린 데다가 ‘여보’라는 말은 왠지 닭살스럽고 올드해서. ;;

그런데 저 설명을 읽고 나니 ‘여보’라는 말이 왠지 은근하고 다정하고 느껴진다. 여기 보시오… 라니. 남녀유별하고 부부유별하던 그 옛날, 한 지붕 아래 살 맞대고 사는 부부임에도 애정 표현조차 마음껏 못했던 부부가 ‘여기 보시오’ 하고 부끄러이 서로를 부르는 모습이 상상되면서…. ㅎㅎ



그나저나 나는 ‘여보’라는 말만큼이나 ‘OO아빠’라는 말도 입에서 안 나온다. 어른들 앞에서는 ‘~~ 씨’보다 ‘OO아범(OO아빠)’이라고 부르는 게 맞다고들 하는데도 말이다. 그건 아무래도 내가 ‘OO엄마’라고 불리는 것보다 내 이름으로 불리는 게 더 좋아서 나도 계속 남편의 이름을 불러주는 걸지도 모르겠다. 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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