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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눈큰 Jan 04. 2022

나는 내 필명과 어울리는 사람일까


전자책 출간이 결정된 후, 편집자는 내게 몇 가지 결정사항을 물어왔었다. 그중에는 책에 기재될 저자의 이름을 본명으로 할 것인지, 아니면 필명으로 할 것인지에 대한 질문도 있었다. 나는 아주 오래전부터 써왔던 내 두 번째 이름인 ‘눈큰’에 대해 곰곰이 생각해 보았다.


어릴 때부터 별명은 죄다 큰 눈에 관한 것들 뿐이었고 눈 크고 예쁜 연예인들을 닮았다는 소리를 제법 들었던 나는 (그 연예인들이 누구누구였는지는 말하지 않겠습니다. 욕먹을 것 같아서요. ;;;) 인터넷이 생기고 아이디, 닉네임 같은 게 필요한 세상이 왔을 때 당연히 큰 눈에 관한 단어부터 떠올렸다. 하지만 눈과 관련된 예쁜 우리말이나 영어 단어는 인기가 많아 진작에 팔려나간 상태. ㅜ 이것저것 쓰다가 마침내 정착하게 된 이름은 세상 단순한 두 글자인 ‘눈큰’이었다. 일단 눈이 큰 나랑 어울리는 데다가, 딱 떨어지는 명사가 아닌 ‘눈큰’이라는 말이 왠지 ‘열린 결말’ 같아 좋아서였다. ‘눈큰’이라는 말 뒤에 그 어떤 단어를 갖다 붙여도 되니까, 무엇이든 될 수 있으니까. 예컨대 눈큰 작가, 눈큰 할머니, 눈큰 댄서 등등…. (“왜 ‘눈큰’이에요? ‘큰 눈’이 아니고?”라고 묻는 사람이 종종 있긴 함. ㅎㅎ)


무엇보다도 나는 정말로 ‘눈 큰’ 사람이 되고 싶었다. 얼굴에 있는 눈 말고 세상을 보는 눈이 큰 사람. 그래서 세상을 넓게 보고 사람을 깊이 들여다볼 줄 아는 현명하고 따뜻한 사람, 마음이 큰 사람이 되고 싶었다. 나름 그런 의미를 부여하며 만든 이름이건만….


요즘은 그 이름이 과연 나랑 어울리나 싶은 생각이 종종 든다.

삶이 바쁘다는 핑계로 멀리는커녕 내 주변조차 들여다보지 못할 때가 많기 때문이다. 또 나이가 들수록 새로운 것에 도전하기보다는 내 상황에 그저 안주하려고 한다. 갈수록 시야는 좁아지고, 생각은 편협해지고, 고집은 세지고….


심지어 이제는 얼굴에 있는 눈까지 별로 크지 않은 기분. ㅜ 안 그래도 예전에 비해 쌍꺼풀이 조금 처진 내 눈은 나잇살이 붙은 내 얼굴에서 그리 큰 비중을 차지하지 못한다고 느끼고 있는데, 어쩌다 TV에서 정말 눈이 큰 연예인을 보기라도 하면 ‘어이쿠야, 난 저 사람에 비하면 정말 평범한 눈인걸?’ 하게 된다. 그나마 큰아이가 나와 대화를 하다가, 혹은 책장을 뚫을 기세로 독서에 몰입하고 있는 나를 보고는 느닷없이 “우와, 엄마 눈 진짜 크네요!”라고 말해주니 아직은 이름값을 하나보다 그럴 뿐이다.


그럼에도 내 전자책에는 기어코 내 필명을 넣었다.

비록 얼굴의 눈이야 어쩔 수 없다 해도 마음의 눈은 절대 작아지지 말자, 나이가 들수록 눈 더 크게 뜨고 똑바르게 뜨고 살자, 그래서 끝까지 이름값은 하고 살자 싶어서. 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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