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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눈큰 Jan 22. 2022

어떤 세트로 드시겠습니까


겨울방학 중인 두 아이가 추운 날씨에 집에서만 내내 뒹굴뒹굴하고 있다. 뒹굴뒹굴하는 거야 그냥 가만히 내버려 두면 되지만, 뒹굴뒹굴하다가 배고프다고 아우성이니 문제. 꼬박꼬박 그들의 밥을 챙겨주는 일은 아이들의 방학숙제만큼이나 내게 귀찮은 일이 아닐 수 없다. 아, 하루 한 끼라도 학교에서 급식으로 해결하고 오는 학기 중이 너어어어무 그립군.


아무튼 요리 솜씨가 그다지 없는 나는 끼니 때마다 아이디어 부족, 실력 부족, 의욕 부족으로 허덕인다. 고민 끝에 아이들에게 “뭐 먹을래?” 하고 물어보면 “뭐 되는데요?” 하고 오히려 되묻는 아이들. 어흑.ㅜ 결국 나는 몇 가지 뻔한 집밥과 자주 먹는 메뉴들에 이름 붙여 마치 뭔가 그럴싸한 걸 먹는 듯 착각을 주기에 이르렀다. 예를 들어…

계란 프라이와 베이컨, 혹은 잼 바른 식빵과 우유를 제공하는 펜션 조식 세트,

튀김우동과 유부초밥의 고속도로 휴게소 세트,

떡볶이와 군만두에 어묵탕까지 총출동하는 분식집 세트,

계란에 묻혀 부친 분홍 소시지, 멸치볶음, 도시락김, 그리고 밥에 계란 프라이 하나 올려 주는 추억의 도시락 세트 등등.

이것저것 다 귀찮으면 냉장고에 남아있는 밑반찬 두서너 개를 꺼내고 1인분 찌개(주로 김치찌개나 된장찌개)만 간단히 끓여낸 ‘그냥 집밥 세트’도 있다.


급기야 오늘 낮엔 이런 세트도 추가했다. 국은 비비고 육개장, 반찬은 비비고 물만두, 비비고 잡채, 비비고 구이김, 이렇게 밥상에 오로지 비비고만 올리는, 이른바 비비고 특선 세트다. 여기에 비비고 김치, 비비고 고등어구이, 비비고 소고기장조림 등 몇 가지만 더하면 비비고 9첩 반상 세트도 충분히 가능하겠군. 아하하하아아아으흑...


에효… 급식으로 날마다 새로운 반찬을 먹는 데 길든 아이들에게 언제까지 돌려 막기 할 수 있을지…. 개학일은 멀고도 멀다. 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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