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러 곳에서 일을 했다
그러다 보면 사람들을 많이 만나게 되고,
우리 사회의 색깔이 정말 다채로운 걸 종종 느낀다
이것 또한 서울에서 몇 년 넘게 있으며 경험한 바라,
처음 상경하던 때를 떠올릴 수밖에 없다
...
나는 지방에서 나고 자랐기에
20대 초반에 처음 접한 서울 생활은
여간 쉽지 않았던 것이다
우선 머물 곳이 필요했다
강남 한복판에 위치한 어느 좁은 방에 터를 잡았다
4층짜리 건물이었는데, 도착해서 본 모습 자체도
단촐한 고시원이었다
...
고등학교 2학년 올라가던 겨울 방학 어느 날,
큰일을 겪었다
펑펑 울며 몇 주를 보내다
새로운 꿈을 위해 도전하기로 선회했다
기존에 공부를 하며 가졌던 목표부터
앞으로의 계획까지 갈아엎었고
정신을 차려보니, 계절은 바뀌어 있었다
약 2년 뒤, 시험을 마치고 나서 몇 주 뒤부터
주변에서는 위로의 말을 건넸다
방에 틀어박혀 오랜 시간을 울며 보냈다
그 해 겨울은 너무 차가웠다
사실 그 전부터 때때로 위기가 있었다
극심한 흉통으로 대학병원 응급실까지 전전해야만 했고,
의무적으로 부과되던 야간자율학습도
조퇴로 자주 마무리되었다
그러다 보니 담임은 자주 병원에 가는 나를 보며
못마땅해 하고 각종 언사로 모욕까지 했던 것이다
그러나 그런 상황에서도,
그때의 나는 펜만큼은 놓지 않고 싶었나 보다
진통제를 달고 살면서도
한 글자씩 더 읽어내려 갔다
...
서울에 첫발을 내딛고 몇 달 지나지 않아
방문한 병원에서 의사가 충격적인 말을 했다
안압 등 안구 상태의 문제로 공부를 쉬는 게 어떻냐는 얘기였다
원없이 공부하고 싶었지만
그것조차 뜻대로 하기 힘들었던 상황에 맞닥뜨리니
정신이 없었다
마치 고등학교 시절의 데자뷰를 보는 것 같았다
고시원으로 돌아가기 전
내 발걸음은 자연스레 인근 PC방으로 향했다
인터넷 게임을 그렇게 즐긴 적도 없는 나지만,
큰일을 겪었던 겨울부터는
PC방에 100원도 들인 적 없던 나였다
그런 나는 홀린듯이 PC방 입구 앞에 도착했다
카운터에 결제를 하고 앉아서 검색하기 시작했다
'녹내장'
백내장, 녹내장 다 들어본 적 있는 질병이었지만
20대 초반의 나한테는 생소했던 단어였다
의사 말대로 실명까지 갈 수 있다는 무서운 병이었다
몇 시간 전에 일단 병원을 다니고
공부를 쉬는 게 어떻겠냐는 말이
분명 농담처럼 들렸는데,
차가운 현실로 다가와
새하얀 게임용 모니터의 벽을 두드렸다
컴퓨터 전원을 끄고
터덜터덜 집으로 향했다
너무 속상했다
힘을 내보려 했지만
또 맛있는 것도 일부러 사먹고 했지만
기분은 오락가락할 뿐이었다
'일단 좀 쉬어야 겠다'
그 날 밤, 나는
다리를 쭉 펴기도 힘든 좁고 짧은 침대에
정신을 잃은 것 마냥 순식간에 잠들어 버렸다
겨우 나 있는 창 안으로
각종 네온사인과 조명들이
혼탁하게 스며들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