떴다 떴다 비행기

좌충우돌 생애 첫 비행의 기록

by 흰눈썹
처음으로 비행기를 탔던 날을 기억하나요?


서울은 시내 여기저기에 공항버스 정류장이 있지만, 대구에서 공항 가는 버스를 탈 수 있는 곳은 고속버스 터미널뿐입니다. 상경한 지 얼마 안 됐을 땐 길에서 공항버스 정류장만 봐도 가슴이 두근거렸죠. 언제라도 떠날 수 있을 것 같았거든요. 길에서 공항버스가 보이면 당장에라도 올라타고 싶은 마음을 달래느라 혼이 났습니다. 미얀마로 떠나는 날이자 처음 비행기를 탔던 날, 나는 새벽 버스를 타고 터미널을 출발해 해 뜰 무렵 인천공항에 도착했습니다.


비행기를 타기 전까지 나는 내내 아무렇지 않은 척 연기해야 했습니다. 공항을 오가는 사람들은 하나같이 예쁘고 멋있고, 내 몰골은 아픈 사람 같았지만 동요하지 않았습니다. 공항 검색대를 지날 땐 약이라도 숨긴 사람처럼 심장이 쫄깃했지만 결백한 얼굴로 통과했습니다. 탑승동으로 가는 셔틀트레인에서는 연예인이 바로 옆에 서 있어서 깜짝 놀랐지만 티내면 촌스러운 사람이 될 것 같아 조용히 있었습니다. 그다지 팬은 아니지만 연예인이 바로 옆에 있는데 다들 조용해서, 서울 사람들은 이럴 때도 침착하구나 싶었습니다. 아니면 다들 나처럼 아무렇지 않은 척 연기한 것일지도 모릅니다.


빼먹은 건 없나? 내가 탈 비행기가 뜨긴 할까? 스물여섯 먹고 처음 타는 비행기라 공항에 들어서면서부터 바짝 긴장됐습니다. 드디어 '이륙'이라는 걸 처음 경험하는 순간, 가슴이 붕 뜨는 그 느낌에는 설렘도 섞여 있었습니다. 창문에 얼굴을 붙이고 점점 작아지는 육지를 내려다보며 내가 땅에서 올려다보기만 하던 비행기를 탔다는 걸 실감했습니다. 이렇게 크고 무거운 비행기를 날게 하다니 대단해. 사람은 마음만 먹으면 뭐든 할 수 있구나. 그런 경외심 비슷한 감정도 일었습니다.



내 이럴 줄 알았다

지금은 직항 노선이 있지만 2010년 당시에는 미얀마로 가려면 중국이나 태국을 거쳐야 했습니다. 비교적 대기시간이 짧은 타이항공을 탔는데, 승무원들이 자꾸 내게 태국어로 말을 걸어서 슬펐습니다. 옆에 앉은 아저씨한테는 한국어로 "돼지고기 밥? 소고기 밥?" 했으면서... 하늘을 나는 여섯시간 동안 두 명의 승무원에게 '나도 한국인'이라는 말을 한 번씩 하고, 기내식을 먹고 한숨 자고 나니 방콕 수완나품 국제공항에 도착했습니다.



첫 비행은 무사히 마쳤지만 두 번째 고비가 남아있었습니다. 환승. 분명 버스나 지하철 환승보다 어려울 것이었습니다. 대기 시간이 넉넉해서 공항 구석구석을 정성스레 어슬렁거리다 전광판에서 확인한 환승 게이트로 갔습니다. 탑승 시간이 다 됐는데 아무런 움직임이 없었습니다. 상황 파악이 안 되어 멀뚱멀뚱 앉아있다가 뒤늦게 확인해보니 게이트가 바뀌었다고 합니다. 내가 타야 할 비행기는 벌써 떠난 뒤였습니다.


타이항공 데스크로 달려가 안되는 영어로 급하게 설명합니다. 게이트 바뀐 걸 몰랐고 다음 비행기라도 타게 해달라고. 적당한 조치를 취해주지 않으면 따질 생각도 하고 있었지만, 직원은 아무렇지도 않은 얼굴로 다음 비행기 티켓을 주겠다고 합니다. 가장 빠른 다음 비행기는 내일 아침 8시 출발. 이렇게 된 이상 밖으로 나가서 방콕 구경을 할 수도 있었지만, 또 뭔가 잘못될까 덜컥 겁이 나서 공항 안에 머물러 있기로 합니다. 그렇게 여행 첫날부터 공항 노숙으로 하루를 날린 나에게 화가 나면서도 한편으로는 그래, 무사히 넘어갈 리가 없지. 내 이럴 줄 알았다며 헛웃음이 났습니다.

다음날 드디어 미얀마 양곤으로 가는 비행기에 올랐습니다. 동양인이 한 명도 보이지 않아 조금 외로웠는데 옆에 앉은 아저씨의 체취에 현기증까지 났습니다. 탑승부터 환승까지 화려했던 첫 비행의 기록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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