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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재원 May 02. 2020

엄마와 피아노

"아들 뭐해?"


엄마는 주말 오후가 되면 전화를 해서 내 안부를 묻곤 한다.

"아직 침대에 누워있지-" 대체로 나는 엄마의 전화에 잠에서 깨어나 잠이 뚝뚝 묻어나는 목소리로 아직도 이불 속이라고 답하곤 한다. 그러면 엄마는 점심시간이 되어서도 잠을 자고 있다며 어이구-이다. "일이 조금 많아서 일찍 일어나서 일해-"라고 대답하기라도 하는 날이면, 또 엄마는 무슨 일이 그렇게나 많아서 주말에도 일을 하고 있냐며, 왜 넌 혼자서만 일하는 것 같냐며 어이구-이다. 혼자 밥을 먹고 있다고 해도 어이구-, 주저앉아 책을 읽고 있다고 말해도 어이구-.

엄마와 전화 한 통화하고 나면 우리 엄마에게 100점짜리 정답지는 뭘까 고민하게 된다. 



받아 든 수화기에 엄마 목소리가 들리는 하루가 있었다. "아들 뭐해?"

햇볕을 받으며 피아노 앞에 앉아 시간을 즐기던 나는 전화 넘어 엄마 들으라며 피아노를 연주했다. 평소 내가 피아노를 치고 앉아 있으면 '베짱이 아들'이라며 놀리던 엄마는 그 날은 웬일인지 가만히 피아노를 듣고 있다가, "나도 피아노나 배워볼까." 한 마디 했다.


생각해보니, 나는 피아노 치고 있을 때 연락을 받을 때면, 음성메시지로 피아노곡을 연주해서 보내주던 꽤 낭만적인 사람이었던 때가 있었다



어렸을 때 일은 잘 기억이 나지 않지만, 내가 어렸을 때는 가정형편이 좋지 않았다. 지금 내 나이 즈음이었던 엄마는 돈을 벌러 나가야 했고, 나와 동생이 집에 덩그러니 남겨져있는 것이 걱정된다는 이유로 방과 후에 피아노며 학원을 보냈었단다. 나는 그것도 모르고, 학교가 끝나면 피아노 학원을 땡땡이치는 방법을 먼저 배웠더란다. 학교가 파하고 선생님이 내가 피아노 학원에 오지 않았다며 전화를 할 때면, 나는 오락실에 가서 앉아 있었다고 했다. 엄마는 내가 초등학교를 입학하고 졸업하기까지 내내 피아노 학원 강습비를 냈지만, 어렸던 내가 피아노를 치는 모습은 통 보지 못했다고 했다. 똑같이 6년 동안 피아노를 배운 동생은 제법 열심히 연습하여 학교 콩쿠르까지 나갔다 왔지만, 내가 집에서 피아노 연습하는 모습은 한 번도 보지 못했다고.


그랬던 동생이 이제 도레미 눌러놓고, 악보 읽는 법은 다 까먹었단다. 그랬던 내가 서른 살이 훌쩍 넘은 지금 엄마 들으라며 피아노를 연주한다. 삶은 참 모를 일이다. 내 나이를 살던 엄마는, 언젠가 동생이 아닌 내가 엄마에게 피아노 연주를 들려주게 될 것이라는 것을 알고 있었을까?



어렸을 때 학교를 다니며 피아노를 배웠었다며, 집에 있었던 업라이트 피아노가 엄마가 치던 것이었다며, 이제 와서 다시 피아노를 칠 수 있을까 말하는 엄마의 말에, 환갑의 나이에 다시 피아노를 배워보고 싶다는 엄마의 말에, 엄마가 뭘 배우고 싶다고 해도 이제 내가 다 지원해줘야지 생각했던 날이었다. 엄마가 칠만한 피아노를 사줘야지. 도레미를 연습할 수 있는 교재를 사줘야지. 집 근처에서 레슨 받을 수 있는 학원을 등록해줘야지. 집에서 혼자 보내는 시간이 많은 엄마가 즐겁게 피아노를 배울 수 있으면 좋겠다.


이게 엄마가 바라는 100점짜리 정답지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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