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장 듣고싶지 않았던 마침표의 한 마디
<연인이 시간을 갖자고 했고, 나는 무너졌다> https://brunch.co.kr/@snr0615/57
<마지막일지도 모를 대화를 앞두고> https://brunch.co.kr/@snr0615/59
우리는 대화를 하기 위해 마주 앉았다.
그날 나는 남자친구를 한 시간 가까이 기다린 터라 화가 잔뜩 나 있었고 귀국하자마자 만나자고 한 사람이 이별을 말할 리 없다는 자신감에 고개를 뻣뻣하게 들고 있었다. 카페로 가자는 그의 말에 어떤 결말이 있을지 모르니 그냥 집 주차장에 차를 대놓고 이야기하자고 했다. 굉장히 긴 정적이 흘렀다. 남자친구는 먼저 하고 싶은 말이 없냐고 했고 한참을 고민하다 입을 열었다. 먼저, 상대의 힘든 상황을 고려하지 못하고 심각한 내용의 카톡을 보낸 것에 사과하였고 그 해결 방법에 대한 서운함을 토로했다. 이런 식으로 단절을 하는 것은 회피일 뿐이고 앞으로 외롭게 하는 사람과는 조금 힘들 것 같다고 말했다.
남자친구는 내 말을 듣고 미안하다는 말밖에 할 수 있는 말이 없다고 했다. 회피도 맞다고 했다. 이어 그는 아직 결정을 내리지 못했지만 나는 어떻게 하고 싶은지 물어보았다. 나는 “한 번 더 맞춰보고 싶다”라고 했다. 꽤 긴 시간 생각하던 그는 헤어짐을 고했다. 앞으로 같은 상처를 주지 않을 것이라는 자신이 없고 본인의 상황이 더 나아질 것이라는 확신도 없다고 했다. 내 카톡을 받고 상처를 많이 받았고 배신감까지 느꼈다며 본인은 이번을 통해 스스로를 더 소중하게 생각하는 사람인 걸 깨달았다고 했다.
순간적으로 심장이 바닥에 떨어지는 느낌을 받았다. 눈앞이 캄캄해졌다. 이런 상황을 예상하지 못한 것은 아니나, 직접 들으니 붙잡아야겠다는 생각 말고는 아무것도 떠오르지 않았다. 담담하게 받아들이기? 차였을 때의 시뮬레이션? 그런 건 하나도 소용이 없었다. 그때부터 빳빳했던 내 태도가 우스워질 정도로 몸을 돌려 상대를 바라보고 미친 듯이 설득했다.
그는 굉장히 단호했다. 내 이름을 부르며 나를 다독이려고 했고 나는 그 말을 듣지 않았다. 제발 한 번만 기회를 달라고 많이도 바라지 않는다고 매달렸다. 울면서 말하는 나에게 그는 “아무 감정이 생기지 않는다”, “마음이 움직이지 않는다”는 아프고 아픈 이야기를 했다. 손을 잡아도 아무렇지 않다고 했다. 계속해서 상처를 받았지만 일단 설득하고 보자는 생각이었다.
우리는 1년 넘는 시간 동안 만나면서 이렇게 싸워본 적이 없고 이번이 처음인데 바로 포기하는 거냐고, 나는 이제 어떻게 맞춰갈지 어떻게 바뀌어야 할지 알겠는데 너무 아쉽지 않으냐고 했다. 지금 건강도 회복이 필요하고 개인적인 사정도 있는 만큼 그게 다 나아지고 다시 생각해 보면 안 되냐고 물었다. 상대는 내 말이 다 맞고 논리적으로도 이해가 되지만 그래도 아니라고 계속해서 고개를 저었다. 그러더니 대뜸 뒷좌석에서 나를 위해 사온 출장 기념품을 꺼내서 하나씩 설명해 주는데 정말 잔인하다 느꼈다. 헤어지자고 하는 사람이 한국으로 돌아오는 날까지 날 생각해서 선물을 사 왔다는 게, 그리고 그 선물을 하나하나 설명하는 게.
선물을 확 가로채며 이런 건 다 필요 없고 내 말에 대답을 좀 해보라고 했다. 그렇게 같은 이야기를 도돌이표처럼 30분 간 더 했을 때였을까. 정말 설득을 당한 건지 피곤해서인지 힘없는 목소리로 알았다는 대답이 돌아왔다. 그는 서로 상처만 줄 것 같고 상처로 끝날 게 보인다고 이런 마음으로 나를 만나는 게 맞는지 미안하다고 했는데 귀에 들어오지 않았다. 한숨 돌린 나는 이해해 줘서 고맙다는 말밖에 할 수 없었다.
사실 나 역시 이 연애의 끝이 어떤지 잘 알고 있다. 좋지 못할 것이라는 것을 안다. 예전만큼 못해주고 조금 더 이기적으로 행동할 것 같다고 하는 그를 내가 감당할 수 있을지, 이미 나에게 아무 마음이 들지 않는다고 선언한 사람을 내가 과연 조건 없이 사랑할 수 있을지 답은 정해져 있다.
약 일주일 동안 남자친구를 격려하고 응원해 주면서도 계속 눈치가 보였다. 마음이 없는데 억지로 만나는 건지, 마음이 없어서 애정표현도 없고 안아주지도 않는 건지 점점 지쳐갔다. 며칠 전에는 도무지 못 참겠어서 전화로 물어보았다. 원래 개인적인 일이 조금 정리된 후 만나서 다시 이야기하려 했으나 나도 모르게 말이 왁! 나가버렸다. 이 이야기도 점점 길어질 것 같으니 다음 글에 자세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