젊은 사람이 떠나는 회사에서 일해보니

떠나는 데에는 다 이유가 있다

by 열닷새

그렇게 바라 마지않던 외국계 대기업에 입사했지만 곧 1년이 될 12월 말 퇴사를 통보할 예정이다. 과거의 기억은 미화된다고, 이전 회사의 좋은 점이 계속 떠오르는 지경에 이르렀다. 현직장은 그야말로 '고인 물' 파티다. 직원이 많은 편임에도 불구하고 85% 이상이 40대 이상인 것 같다. 30년 이상 근속자가 흔한 정도이고 젊은 사람은 이미 많은 입사와 퇴사를 반복했다고 한다. 처음에는 '정말 안정적인 직장이구나!'라고 생각했으나 1년 정도 다녀 보니 왜 젊은 사람은 없고 고인 물만 남았는지 알 것 같다.


고인 물 회사의 문제점과 특징은 정말 많지만 이번 글에서는 그중에서도 신입에게 호의적이지 않은 문화를 말하고자 한다.




우리나라 회사들의 전반적 특징일 수 있지만, 기존 직원들이 신규 직원에게 호의적이지 않다. 나는 아무리 경력이 많은 사람이라 할지라도 이직을 하면 그 회사에서는 신입이라 생각한다. 최소한 6개월, 그리고 업무의 한 사이클이 도는 1년까지는 주위에서 잘 가르쳐주어야 한다고 생각한다.

그런데 내가 입사 후 한 2개월 내지는 3개월 되었을 때였나 팀장님에게 들었던 얘기는 "경력으로 들어왔으니 다들 어느 정도의 기대가 있고 그 기대를 채워주어야 합니다."였다. 3개월 차 신입에게 대체 무슨 기대를 한다는 것인지 기가 찰 노릇이었다. 그래도 꼼꼼한 일 처리와 의사소통 능력을 발휘해서 좋은 평가를 받고 있지만 만약 실수를 자주 했다면 얼마나 까였(?) 을지, 지금 생각해도 고개가 갸우뚱해지는 말씀이다.


실제로 유관 부서의 사람들이 우리 팀 팀장님에게 개인적으로 '00 씨 때문에 업무가 힘들다'는 내용의 메일을 자주 쓴다고 한다. 나 역시 입사 6개월 차 즈음에 당했다. 제대로 알려준 적 없고 이해하기도 어려운 개념을 가지고 팀장님에게 '닷새씨가 지금 너무 잘해주고 있지만, 어떠어떠한 부분에서 이해가 부족한 것 같다'는 메일을 썼다. 나 몰래 보냈지만 팀장님이 회신에 나를 참조하면서 알게 되었던 참 기분 나쁜 경험이었다.


문제는 우리 팀 사람들 중 나를 포함한 어린 여자 직원 세 명에게 저런 행동을 한다는 것이다. 나보다 두 달 늦게 들어온 팀원에게는 모든 유관 부서의 사람들과 팀장님을 참조에 넣어 '이런 식으로 업무를 진행하면 안 된다'는 내용의 메일을 보냈다. 심지어 그 팀원의 잘못이 아닌 일이었는데도 말이다. 내 잘못이 아니라는 회신을 쓰기에도 짬에서 밀리고 이미 목소리가 큰 사람이 이기는 싸움인 터라 무용지물이다.


이런 일을 겪으니 뭘 물어보기도 주눅 들고 실제로 직접 찾아가서 최대한 예의 바르게 문의해도 돌아오는 건 냉랭한 목소리로 "나는 이 일과 상관이 없다"내지는 "나는 이 일을 몰라"라는 대답이다. 내가 그들의 일을 발 벗고 도와줘도 상부상조가 되지 않는다. 얼마 전엔 뭐 하나 물어봤다가 정말 귀찮다는 듯이 기분 나쁜 티를 팍팍 내며 설명하고는 마지막에 "저번에 알려줬을 텐데."라는 화룡점정의 말까지 들었다. 설령 알려줬을지라도 한 번, 그것도 몇 달 전에 스치듯 들은 걸로 내가 궁금했던 부분까지 연결 지을 정도의 재능이라면 왜 이 회사에 다니겠는가.


업무 특성상 많은 유관 부서와 협업을 해야 하는데 호의적이지를 않으니 도무지 협업의 의지가 생기지 않는다. 이전 회사에서는 궁극의 빌런 몇 명이 물을 흐려놨다면, 이 회사는 모두가 빌런인데 궁극 몇 명과 졸개들로 가득 찬 느낌이다. 물어볼 게 있어도 심장부터 두근거려 최대한 미루는 것도 더 이상 하기 싫고 내 잘못 아닌데도 꼭 내가 죄송해야 하는 것처럼 몰아가는 분위기도 지긋지긋하다. 이미 몇 십 년을 이런 분위기 속에서 지내 온 사람들인데 팀장님이나 HR에 이야기해서 바뀔 것이라는 기대도 없고 팀장님 역시 적극적으로 도와주지 않는다.




웃으면서 일하자며 장난도 많이 치고 잘 챙겨주던 이전 회사 사람들이 그립다. 이왕 같이 일할 거 얼굴 붉히면서 일하는 이유가 뭔지. 서로 물어뜯기 바쁜 회사의 분위기가 도통 익숙해지지 않는다. 매일 기복이 있는 회사 생활과 점점 더 짙어지는 정기적 녹봉의 맛에 당장 다음 달에 퇴사를 통보할 수 있을지 의문이지만 한 가지 확실한 건 오래 다닐만한 곳은 아니다. 그들만의 세상에서 그들만의 문화를 구축하여 젊은 사람을 배척하는 지금의 시스템으로는 아마 오랜 기간 새로운 사람이 적응하기 힘들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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