생초보에서 근수저 러너가 되기까지

두둥! 인간 승리라고 할 수 있을까

by 열닷새

1분씩 뛰기도 벅찼는데, 지금은


첫 남자친구와의 이별 후, 처음 겪는 아픔에 우울해하던 내가 가장 많이 들은 이야기 중 하나는 "운동하자"였다. 머릿속이 온통 전 남자친구로 가득 차 있을 텐데 그때 미친 듯이 운동을 하고 기운이 쫙 빠지면 다른 생각이 하나도 나지 않는다는 것이었다. 마침 연애를 하면서 살도 감당이 안 될 정도로 쪘겠다, "보여줄게! 완전히 달라진 나~"가 되기 위해서라도 더 이상 미룰 수 없었다.


돈 안 드는 운동이 최고라고, 일단 운동화도 있고 운동복도 있으니 무작정 입고 나가서 뛰었다. 한 7년 전쯤 잠깐 러닝과 마라톤을 찍먹 했을 때 너무 지루하고 재미가 없던 터라 그 이후로는 거들떠보지도 않았었다. 그러다 요즘 러닝이 하도 대세길래 얼마나 좋아서 다들 그렇게 미쳐있는 건지 다시 궁금해졌다.


첫 날의 기록이 없어 두 번째 기록으로...

나는 런데이라는 어플의 30분 달리기를 목표로 하는 초보자 코스로 시작했는데 그때가 헤어진 지 2주 되었을 때였다. 지금 이 첫 기록을 보면 아주 가관이다. 1분 뛰고 2분 쉬는 걸 다섯 번 반복하는 데다가 페이스도 8분 7초로 이마를 짚게 하는 수준이다. 이 정도로 체력이 약했고 더 나아질 거라는 기대도 딱히 하지 않았다. 지금은 30분 동안 4.46km를 약 6분 43초의 페이스로 뛴다. 몇 달 전을 생각하면 정말 장족의 발전이다.




노잼 러닝


내 기록중 최고의 페이스

러닝은 여전히 재미가 없다. 무슨 재미로 하는지 아직도 모르겠다. 너무 지루하고 지루하고 지루하다. 25분 코스까지는 꾸역꾸역 했지만 30분 코스로 넘어가면서부터 '그만할까? 이 정도도 잘한 거지. 너무 재미없는데 다른 운동을 할까. 지금 몇 분 지났지? 고작 5분?' 나와의 싸움을 끊임없이 한다.


나에게는 딱히 재미없는 운동이라 치고, 이별 극복에는 도움이 됐는지 묻는다면 이것도 "글쎄..."다. 멀티가 너무 잘 되는 머리라 그런지 뛰면서도 계속 전 남자친구 생각을 했다. 준비 운동을 할 때도, 뛸 때도, 쿨 다운을 할 때도, 씻을 때도. 그래도 그냥 꾸준히 뛰었다. 지금은 주 3회 뛰기로 한 스스로와의 약속을 슬슬 깨고 주 2회 정도만 뛰는데 10월까지는 몸이 무거운 시기를 제외하고 주 3회를 꼭 지켰다. 그냥 그렇게 전 남자친구가 생각날 땐 마음껏 생각하면서 내 일상을 살아가니 이별에도 점점 무뎌지게 되었다.




내가 근수저라니!


살은 많이 빠졌나 보다. 식이요법은 따로 하지 않았는데 보는 사람마다 살 빠졌다는 이야기를 해서 기분이 무척 좋다. 다만 내가 느끼기에 옷 핏이나 사이즈는 그대로라 좀 의문이었다. 그러다 지난주 도수 치료를 받는데 선생님이 살이 많이 빠진 것 같다고 하길래 이 의문을 이야기했다. 그러자 치료를 하다 말고 "살이 아닌데요? 지금 등이랑 다리가 다 근육이에요. 기립근도 잘 쓰고 계시고. 근육도 부피가 있어서 옷 핏으로 잘 못 느끼셨나 봐요. 러닝으로 이렇게까지 근육이 붙기 쉽지 않은데..."라고 했다. 순간 아주 설레는 마음으로 "그럼 저... 근수저인가요?" 했더니 선생님이 빵 터지면서 맞다고 했다.


내가 근수저라니. 우스갯소리로 요즘 금수저보다 근수저가 좋다던데 내가 그 근수저라니. 기분이 날아갈 듯이 좋았다. 이 말을 들으니 러닝을 좀 더 해봐야겠다는 생각과 함께 헬스를 다녀볼까 욕심이 생겼다. 근력 운동을 제대로 해서 근육 빵빵의 몸짱맨으로 거듭나고 싶다는 야망을 품었다.


한 가지 확실한 건 러닝은 재미는 없을지라도 가장 쉽게 접근할 수 있는 전신 유산소와 근력 운동이 혼합된 운동이라는 점이다. 나 역시 30분 코스를 계속 채울 수 있을지 의문이라 목표보다 좀 줄여서 3킬로, 20분대를 뛰더라도 당분간은 꾸준히 해볼 예정이다. 파이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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