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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윤지영 Mar 15. 2018

지금, 사랑할 준비가 되었나요

<지금 만나러 갑니다> 연약한 너와 내가 만나 사랑을 하기까지



영화는 애니메이션으로 시작된다. 아기 펭귄을 두고 이 세상을 떠나 구름나라로 가게 된 엄마 펭귄. 아기 펭귄을 그리워하며 밤낮 울기만 하던 엄마 펭귄은 장마가 시작되던 날 몰래 열차를 타고 아기 펭귄을 만나러 온다. 엄마를 기다리던 아기 펭귄과 만난 엄마 펭귄은 같이 추억을 만들고 물고기를 잡는 방법도 알려주며 마지막까지 행복한 시간을 보낸다. 장마가 그치는 날, 엄마 펭귄은 아기 펭귄과 영원한 안녕을 하며 다시 구름나라로 올라간다. 마지막 시간을 함께 보낸 엄마 펭귄과 아기 펭귄은 그 후로 다시는 울지 않았다는 그런 이야기.


영화는 친절하다. 시작부터 관객에게 결말을 알려준다. 기억을 잃고 이 땅에 다시 내려온 수아(손예진)는 장마가 그치면 다시 구름나라로 올라가야 한다. 그들에게 허락된 시간은 딱 '장마기간까지만'이다. 너무 판타지하고 뻔한 이야기라고? 응, 사실 이건 내가 영화를 보기 전 들었던 생각이다. '지금 만나러 갑니다'는 초반부터 결말을 공지하고 이건 슬픈 얘기니까 울 준비하라고 관객을 설득시킨다. 그리고 그런 전형적인 스토리를 너무 싫어하는 나는 비판적인 눈빛으로 영화를 보다 중반부터 포획 당해 아예 눈물이 목을 타고 흐르는 지경까지 갔다는 이야기.




사랑하기 부족한

우진(소지섭)과 지호(김지환)는 부자지간이다. 둘 다 약간 모자라 보이는데 심지어 닮았다. 이 험한 세상 어떻게 살아가려나, 동정심이 생긴다. 지호는 귀엽고 어리니까 그렇다 치자. 우진은? 허우대 멀쩡하다. 소지섭이다. 그런데 뇌의 호르몬이 심장을 제어하는 뭐 그런 불치병이 있다. 남들이 뛸 때 걸어야 하고, 국가대표 선발전에 나갈 정도로 재능이 있었던 수영을 다시는 하지 못한다. 그럴 수 있다 치자. 근데 계란 후라이 하나 만드는데 요란법석이고, 셔츠의 단추도 똑바로 잠글 줄 모른다. 그치만 그가 매일같이 빼먹지 않고 하는 것이 있다면 현관에 붙어있는 수아의 사진에 입을 맞추는 것. 참~ 착해빠진 뻔한 캐릭터다. 결말이 다 보이는 스토리, 단면적인 캐릭터에서 나는 영화를 포기했었다. 재미없는 영화를 보는 2시간은 탈출구 없는 지하 6F 감옥에 갇힌 것과 다름없기 때문이다. 나는 감금당했다.라고 생각했다.




그들을 이해하고 사랑하는

수아가 등장한다. 영화가 활력을 가지기 시작했다. 예전의 기억이 지워진 채로 땅에 내려온 수아는 자신이 아내이며, 엄마라는 인식이 없다. 집안 가득 물증은 가득한데 심증이 없으니 모성애 또한 생길 리 만무하다. 지호와 게임을 하면서 져주기란 절대 없다. 백전백승이다. 그리고 그건 우진에게도 마찬가지다. 이 상황이 납득되어야만 하는 수아는 우진에게 '내가 당신을 왜 사랑했었는지' 묻는다. 우진이 들려주는 이야기를 통해 그들은 과거와 현재를 넘나들며 관객을 설득시킨다. 단면만 있던 캐릭터는 점점 입체성을 띤다. 마치, 한 개인이 사랑을 시작하면 보이게 되는 무한함과도 같이. 나도 그들을 이해할 준비를 시작했다. 소지섭 근육을 가진 우진이 달릴 수 없는 이유. 부족함 없는 수아가 그런 우진을 사랑하는 이유에 대해서.




그것이 바로 사랑이 가진 힘.

모성애가 회복되고 우진과의 두 번째 사랑에 빠지게 된 지 얼마 되지 않아 수아는 자신의 운명을 알게 된다. 그와 동시에 침착하게 미래를 준비하기 시작한다. 엄마 펭귄이 아기 펭귄에게 물고기 잡는 법을 알려준 것처럼 지호에게 집안일을 가르친다. 계란후라이를 만드는 법, 손끝을 사용해 머리를 감는 법, 소파 끝까지 청소기를 넣어서 청소하는 법. 사랑 말고는 완벽하게 할 수 있는 게 없는 우진을 위해서 수아는 지호를 성장시킨다. 사랑은 뭘까. 다시 가족을 남겨두고 떠나야 하는 절망적인 상황에서도 사랑은 어떻게 더 나은 미래를 예비할 수 있게 하는가.


감히 말하건대, 진정한 사랑은 상대방을 성장시키는 것이기 때문이다. 수아는 과거에 갇혀 사는 우진과 지호를 자유하게 해야 그들이 성장할 수 있음을 알았다. 그래서 두려운 물속으로 다시 들어갈 수 있도록 우진을 구원했고, 학예회 때 용기 내어 앞을 보고 말할 수 있도록 지호를 응원했다. 그래서 누가 봐도 부족한 우진과 지호는, 수아에게 받은 사랑을, 관객에게 전달한다. 그 순간 그들은 사랑으로 넘쳐 보였다.





사랑은 쉽지 않다. 배워야 하며 예비해야 한다. 운명론 같아 보이는 영화 속 사랑은 서로를 향해 치열하게 달린 결과였다. 눈물범벅이 된 얼굴로 영화관을 나오며 반성했다. 사랑을 주고받는 순간 영화 속 캐릭터는 결코 뻔하지 않았다. 사랑하길 원하는 자는 이 영화를 보기. 실컷 울고, 스크린을 통해 전달되는 사랑을 마음속 깊이 담아오기. 그래서 충분히 사랑하고 결국은 먼 훗날 만나게 될 누군가를 성장시키기.



* 꼭 휴지 챙겨서 가세요. 그냥 자연스럽게 눈물이 주르륵 흐르게 됩니다.

* 영화 초반에 소지섭이 너무 잘생겨서 혹은 소간지가 떠올라 몰입이 안될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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