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너는 너의 슬픔의 깊이에 대해 알고 있어야 해. 슬픔이 네 삶의 전부가 되면 안 되니까.
지금 겪고 있는 이 슬픔은 며칠짜리 슬픔인지 생각해봐. 하루 정도만 힘들어하고 다음날엔 비교적 툭툭 털고 일어날 수 있다면 그 슬픔은 하루짜리 슬픔인 거야. 반면에 아무리 노력을 해도 두어 달 정도 여전히 마음에 어떤 덩어리가 가득 차 있다면 그건 두어 달짜리 슬픔.
어떤 슬픔은 평소에 밥도 꾸역꾸역 먹고 친구들도 잘 만나지만 불현듯 네 마음의 주인이 되어 해 뜰 때까지 눈을 못 붙이게 만들고, 빨래를 널다가도 마음을 점령해버리겠지. 일상생활 중에 예고 없이 찾아와서 손쓸 틈도 없이 당했다면 그 슬픔은 너를 통치하는 슬픔일 거야. 넌 알아야 해. 네가 삶의 어떤 영역에서 유난히 깊게 슬퍼하는지, 어떤 슬픔에 잠식당하는지.
남들에게는 하루짜리 슬픔 밖에 안 되는 일이 네게는 보름을 꼬박 마음에 덩어리 져 있을지도 모르잖아. 사람마다 마음밭은 제각각이거든. 질은 마음도 있고, 건조한 마음도 있기 마련이라서 슬픔의 깊이도 다들 달라. 남들은 별로 신경 쓰지 않는 일인데 너는 마음 놓아 운다면, 그냥 너는 그런 일을 힘들어하는 사람이겠지. 약해서 이 세상을 살아가기 힘든 사람이 아니라.
그러니까 알아두라고. 너만의 슬픔의 기준을. 남들은 이런 일에 얼마나 슬퍼할까, 나만 과민 반응하는 거 아닐까 눈치 보지 말고 슬퍼할 땐 마음 놓아 슬퍼해도 돼. 이 세상에 마음에 대한 매뉴얼은 하나도 없거든. 그때까지 타인의 기준에 맞춰서 살면 그게 제일 슬픈 일 아닐까.
슬픔을 극복할 수 있는 방법을 말해줄까? 단순해. 때론 잔인하기도 하지만. 그저, 슬픔을 가만히 들여다보는 거야. 네 마음을 꺼내 가만히 지켜보는 거지. 제 3자가 된 것처럼.
그건 차가운 호수에 잠수를 해서 깊은 바닥까지 내려가 보는 것과도 같아. 세상에 나 혼자 덩그러니 남겨져 가라앉는 거 같지. 호흡도 딸리고 고통스러워서 몇 번이고 올라오고 싶을 거야. 네가 울고 있는 방이 왜 눈물로 잠기지 않는지 의심될 만큼 세상의 모든 눈물이 볼을 타고 흘러내리더라도 넌 그 바닥을 봐야 해. 그게 슬픔을 온전히 겪는 방법인 거야.
네 슬픔의 깊이를 알아야 그걸 견딜 힘도, 계획도 세울 수가 있잖아. 그래서 난 슬픔을 직면하는 사람들을 존경해. 그건 용기 있는 자만이 할 수 있거든.
그런데 세상의 바닥까지 떨어져서 목놓아 울어보면, 조금 개운해지는 게 있을 거야. 가장 어두울 때는 해가 뜨기 바로 직전이라고 하잖아. 난 그 말을 믿어. 슬픔의 바닥을 보고 나면 그 실체를 발판 삼아 올라올 수 있게 돼. 정말이야. 퉁퉁 부은 두 눈을 응시하다 어쩌면 이건 그렇게 슬퍼할 일이 아니었다고 훌훌 털고 일어날 수도 있어. 혹여, 바닥이 저만치 깊은 슬픔이었다 해도 내 발아래가 1미터인지 5미터인지 아는 것과 모르는 것은 천지차이니까.
슬퍼서 슬퍼하지 말고, 슬픔의 이유를 찾아. 내가 여기서 응원할게. 그리고 그 이유를 찾으면 얘기해줘. 같이 울어주고, 안아줄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