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외모를 볼 나이

20대 초반 여자의 보편적 호감

by 윤지영


성수동에 위치한 카페. 하얀 벽에 빔 프로젝트로 영화를 틀어주는 낭만적인 공간에 자리를 잡았다. 주문한 음료가 나오고 금세 시시콜콜 쏟아지는 이야기. 여자끼리 모이던, 남녀가 모이던, 솔로이던 커플이던, 두 사람 이상이 모이면 연애 이야기는 꼭 나온다. 오늘도 그러하다.



"내가 최근에 만났던 애가-사귄 건 아니고- 완전 내 이상형이란 말이야."


"너 이상형은 어떤 사람인데?"


"대화가 잘 통하고 성격이 너무 좋고 이런 게 아니라. 외모가 내 이상형이었어. 그래서 걔를 몇 번 만났는데 잘 안된 거지. 그 이후로 아무도 내 눈에 차지 않는 거야. 일단 소개를 받아도 이 사람이 원래 알던 사람이 아니니까 성격까지는 모르고, 처음에는 외모만 보이니까.

그 애는 어떤 애였냐면 얼굴이 막 잘생기고 그런 건 아니고 키 크고, 걔가 주말마다 축구를 해. 축구를 너무 적극적으로 좋아하는 거지. 내 눈엔 남자다운 모습들이 매력으로 다가왔어. 근데 중요한 건 삶의 패턴이 안 맞는 거야 나랑. 대화가 잘 안 통하기도 하고. 단적으로, 애가 연락을 정-말 안 해. 그니까 누구를 만나고 있으면 그 사람한테 집중을 하고, 집에 가면 핸드폰 손에서 놓고 그냥 집의 생활을 하고."


"나랑 비슷하네. 대신에 너를 만났을 땐 너에게 최선을 다할 거 아니야."


"그렇지. 나를 만났을 땐 나한테 정말 잘해줘. 자기도 그렇게 얘기해. 만날 땐 정말 잘해준다고. 근데 걔도 여자를 많이 만나진 않았던 거 같은데, 외모만 봤을 땐 여자들이 좋아할 스타일이야. 장난도 많이 치고 키 크고, 어깨 되게 넓거든."


"오~ 어깨 중요하지. 전체적인 분위기가 좋은 애구나."


"응 그치, 머리 있잖아. 머리 포마드 하고."


"응 뭔지 알겠다."


"근데 자기는 여자를 만나면 오래 만난 적이 없대. 거의 차였대. 연락도 안 하고, 뭐 연락 문제에서 상대랑 많이 의견차가 있고 그랬나 봐. 딱 봐도 알겠는 거야. 나랑도 그렇거든. 그래서 걔랑 잘 안된 거겠지만. 연락은 안 하더라도 나는 자주 만나면 이 관계를 이어갈 수도 있을 거 같았는데 아예 만나자는 얘기 자체를 안 하더라고."


순간적으로 나보다 더 심한 인간이 있구나 하는 생각이 들었다.


"야. 걔는 너무 극단적인데?"


"얘는 절대 만나잔 얘기를 먼저 안 해. 그냥 그렇게 서로 연락 안 하다가 헤어졌지."


"음. 그래. 걔는 순간순간이 충실한 애고, 별로 아쉬운 게 없나 보다."


"굳이 내가 아니어도 되는 거지. 지 좋다는 여자들 많으니까. 근데 나는 그냥 얘가 기준이 되어버린 거 같아."


"기준까지? 근데 모순이지 않냐. 걔랑 몇 번 안 만났는데 걔가 기준이 되어버리는 건. 대화도 안 통한다면서. 대화가 안 통하면 곧 성격이 맞지 않다는 거잖아."


"그치. 모순이지."


"너무 쉽게 이성의 기준이 설정됐는데? 외모와 매력 만으로."


"그래서 요즘 생각 중이야. 내가 왜. 나 좋다는 사람 만나야 하는데. 그 이후로는 연애도 뭐 심드렁하고."


"연애 결혼해도 헤어지는 사람들의 이혼사유 1위가 성격차이래. 그니까 외모는 언젠간 콩깍지가 벗겨지는데 그때부터는 서로의 성격으로 관계가 유지된다는 거지. 그니까 너도 성격을 보고 만나봐. 여러 사람 만나봐. 만나보는 거 자체야 뭐. 그러면서 너가 좋아하는 사람 찾아가는 거지. 우리가 아직 어리고 인간 관계의 경험도 얼마 없는데 어떻게 처음부터 잘 맞는 사람 만나겠어. 그냥 이 사람, 저 사람 만나보면서 아 이런 부분은 나랑 안 맞고, 이 부분은 내가 감당하고 안고 갈 수도 있는 문제겠다. 그렇게 느끼면서 좋은 사람 만나고 그렇게 결혼까지 하는 거겠지. 대신에 나는 너가 외모만 보고 사람을 만나지는 않았으면 싶어. 외모는 영원하지 않잖아."


침묵. 문장이 긴 대화 끝에 이어지는 침묵을 나는 좋아한다. 지금 막 끝난 이 대화를 서로가 다시금 곱씹을 수 있기 때문이리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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