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누군가를 좋아한다는 것은

서러움. 원망. 때로는 애타는 마음.

by 윤지영



누군가를 좋아할 때 대면하게 되는 낯선 감정이 있다. 보통 혼자 있을 때는 건드려질 일 없는 감정들이다. 내 마음에 있는지도 몰랐던 그런 것들. 서러움, 원망, 애타는 마음. 누군가를 좋아하면 이들이 슬며시 감정선 위로 고개를 내민다. 당황스럽다. 그렇게 나는 혼돈의 세계에 빠진다.






며칠 전 몸이 아팠다. 면역력이 떨어져 급성 두드러기가 오른쪽 얼굴에 포진한 상태였다. 겨울이 정말 싫다. 겨울 때문인 거 같다. 괜한 겨울 탓을 하다가 집으로 기어 들어와 쓰라린 몸을 이불에 담그고 잠이 들었다. 얼마나 잤을까. 좋아하는 사람에게서 뭐 하냐는 연락이 왔다.



그 순간 서러움이 수직 상승했다. 이상하다. 이 감정은 어느 타이밍에 나온 걸까. 아파서 서러운 건 아닌 거 같은데. 눈물까지 났다. 이해할 수 없다. 울면서도 생각했다. 나는 왜 울까? 아파서 시름시름하는데 그 애가 그것을 몰라줘서 우는 거 같다. 상식적이지 않다. 나는 그에게 아프다고 말하지 않았다. 그런데 그가 나의 아픔을 몰라줘서 운다니?



그니까 나는 그랬던 거 같다. 퉁퉁 부은 얼굴 때문에 운 것이 아니라, 나의 아픔을 모르는 상대의 전지전능하지 못함에 서러웠던 것이 아니라, 그 사람이 내 상태를 알길 바랬으나 그 바람의 좌절이 선물하는 외로움을 느껴서 울었을 것이다.



또 평소에 잘 울지 않는 내가 사랑 때문에 나약해진 거 같아 울었다. 원래 나는 혼자 밥도 잘 먹고 혼자 영화도 잘 보는데. 그리고 나름 강인한 면이 있다고 생각했는데, 사랑은 이십 대 후반의 나를 다시 아기로 만들었다. 상대는 잘못이 없다. 내가 건강 부주의로 아팠고, 아프다고 그 애에게 투정 부리지 않았으며, 그럼에도 나는 이 모든 것을 그 사람이 알아주기를 바란다.



사랑은 이렇게 불쑥 나에게 찾아와 눈물 고이게 하고, 서러움이 어떤 온도인지 알게 한다. 사랑은 좋아하는 사람과도 온전히 하나가 될 수 없는 인간 특유의 절대 고독감을 선물한다.






그 애는 갑자기 내가 울어서 영문도 모른 채 미안하다고 했다. 나도 이런 복잡한 감정을 설명하기가 어려워 조금 칭얼거리다 괜찮다고 답변했다. 이런저런 이야기를 주고받다가 푹 쉬라고, 그리고 네가 아프지 않았으면 좋겠다는 말에 난 또 서러움이 가시고 아픈 것도 갑자기 괜찮아진 느낌이다.



혼자 조용히 생각해본다. 겸연쩍다. 감정의 롤러코스터가 장난 아니다. 그나저나 나도 서러울 수 있는 사람이구나. 서러우면 지는 기분이 들었는데 이번엔 져도 이긴 거 같은 기분이다.



사랑은 평온했던 내면을 송두리째 흔들고 깊숙이 묵혀있던 감정들을 꺼낸다. 차곡차곡 쌓아서 문을 닫아두었던 감정의 장에서 서러움과 원망을 골라 바깥으로 던진다. 비이성적이며 제멋대로다. 이런 게 사랑이라면 사실 달갑지 않다. 그러나 사랑을 하고 싶다고 해서 할 수 있는 것이 아니듯, 사랑하고 싶지 않다고 해서 사랑이 멈춰지는 것이 아니기에. 오늘도 낯선 내 모습을 사랑을 통해 알아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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